불안한 대한민국, 사법부에 바란다
불안한 대한민국, 사법부에 바란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9.1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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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환 편집위원
전 서울지법 판사·변호사

최근 여자 어린이와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어 민심이 들끓고 있다. 2008년 등교길 여자 어린이(당시 8세)를 납치해 성폭행한 조두순, 2010년 가정집에 침입해 여중생을 납치해 강간 살인한 김길태, 2010년 초등학교에 침입해 여아(8세)를 납치 성폭행한 김수철, 2012년 가정집에 침입해 여아(8세)를 이불째 납치해 성폭행한 고종석 등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여자 아이들이나 젊은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 사건을 다 언급하려면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데 도대체 경찰, 검찰, 법원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길래 이 지경이 됐느냐는 비판이 비등하다. 어린 자녀는 물론이고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조차 자녀가 조금만 귀가가 늦어도 좌불안석이다.

경솔한 불구속재판 원칙

한국 사회에 이러한 성범죄가 만연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필자가 판사 및 변호사로 살아오다 보니 이런 현상에 대해 법조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법조인 특히 판사들의 구속영장 발부 및 양형에 있어 잘못된 업무 관행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불구속재판의 원칙을 내세워 형사재판제도를 ‘개혁(?)’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피의자가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없다면 과감하게 영장을 기각해 방어권을 보장하고, 재판 결과 인정되면 징역형으로 처벌하라고 했다.

그 후 일선 판사들이 ‘주거 일정’, ‘증거인멸 우려 없음’이라는 형식적 이유로 경솔하게 영장을 기각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미국 등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나 사실은 엉뚱하게 적용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범죄사실의 소명이 있으면 원칙적으로 영장을 발부하고 불구속 재판을 받으려면 보석금을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 증권사기, 지적재산권 등의 연방범죄의 경우는 수사기관이 범죄사실을 소명해 영장을 청구하면 거의 예외 없이 영장을 발부하고, 보석 불허하거나 보석을 허가해도 보석금이 매우 거액인 경우가 많다. 또 강간, 살인 등의 강력범죄나 연방범죄는 종신형과 다름없는 수십 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장 발부 단계에서부터 판사에게 지나친 재량이 허용돼 있다(판사에게 영장발부, 구속적부심, 보석, 집행유예 선고의 4단계로 석방 재량권이 부여돼 있어 지나친 감이 있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 판사가 이를 남용해 끔찍한 일도 발생했다.

판사의 과도한 영장발부 재량권

2012년 4월경 경찰이 피의자가 보복 범죄를 저지를 소지가 있다면서 영창을 신청했으나 주거가 일정하므로 피의자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판사가 영장을 기각했는데, 그 피의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보복 살인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 담당 판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법원장이나 대법원장도 사과 한마디 없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아니다. 수사 단계 특히 성폭행이나 기타 강력범죄, 화이트 칼라 경제범죄의 수사단계에서는 범죄사실의 소명이 있다면 영장을 발부하고, 방어권 보장은 보석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판사가 피고인을 석방하는 재량은 원칙적으로 기소후 보석이나 집행유예를 활용하는 것이 옳다.

또, 판사가 성범죄에 대해 선고하는 형량도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강간범죄를 저질러도 합의가 되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세상을 들끓게 했던 도가니 사건도 있었고 최근에는 대구고등법원이 한국 여성을 강간한 미군 사병을 합의가 됐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석방한 사례도 있다.

한국 언론은 잠잠한데 오히려 미군 신문인 성조지(Star and Stripes)는 ‘용서할 수 없는 성폭행범이 아무 일 없다는 듯 풀려난 것이 이상하다’, ‘장갑차 운전병의 실수에 대하여는 그렇게 온국민이 분노하더니 어린 여성을 폭행 강간한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미군 사병들의 반응을 보도했다.

외국의 경우 성폭행범, 특히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 합의했다고 석방하는 일은 없다. 심지어 피고인이나 그 변호인이 피해자에게 연락하거나 접근하는 것 자체를 2차 가해로 간주해 처벌하는 나라도 있다.

판사들이 피해자들의 감정이나 사회의 질서 유지에 대한 책임보다는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에만 치중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해가 가나, 현재 문제가 되는 사례들은 중형에 처해도 억울할 것이 전혀 없는 흉악범이다.

법원·검찰은 사회질서 유지 최종 보루

검찰 역시 사형이 선고된 흉악범에 대해 그 집행을 엄격하게 해서 사회적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모든 사형수들의 형을 집행할 이유는 없겠지만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10명을 살해한 강호순 등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진보 성향의 학자나 법조인들은 범죄에 대한 사회 책임을 주장하지만, 대처 영국 총리가 지적했듯이 이런 문제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개인과 가정이지 사회가 아니다.

법원과 검찰은 사회 질서를 유지할 책임을 지고 있는 최종적인 보루이다. 그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는 판사와 검사들이 자신들이 단순히 피고인, 피의자의 인권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질서 유지, 선량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이 이러한 이슈에 명확한 정책을 밝혀 선량한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차기환 편집위원
전 서울지법 판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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