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상이 반갑지 않은 이유
중국의 부상이 반갑지 않은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2.09.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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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드라마 <무신>의 스토리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최근 내용은 김준(김주혁)이 정적인 최양백(박상민)과 실권자 최의(최충헌의 증손자)를 제거한 후 정권을 장악한 대목이다. 올해 2월 방송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1201년 이의민에 이어 권력을 잡은 최충헌(주현)이 이룩한 60년간의 최씨 정권이 배경이다.

이제껏 최충헌의 아들 최우(정보석)에게 발탁된, 노비 출신의 무신 김준이 최항(최충헌의 손자), 최의에 이어 1인자가 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무신 정권은 이후 김준이 1259년부터 1268년까지 집권하고, 임연(안재모)이 그를 살해하고 잠시 실권을 잡는 것을 끝으로 1270년 마무리된다. 김준을 죽인 임연은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따르던 심복이었다.

<무신>, 그리고 중국

드라마 <무신>은 KBS TV에서 방송했던 <대조영>이나 <광개토대왕>과 비슷한 선 굵은 정통 사극이다. 주인공 김준은 몽고와의 전쟁에 여러 차례 출전해 전공을 세우는가 하면, 몽고군에 소실된 팔만대장경을 다시 만들어 민심의 단합을 꾀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고려 무신 정권이 벌이는 몽고와의 치열한 항전, 그리고 권력 내부 목숨을 건 암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드라마의 이환경 작가는 전작 <용의 눈물>(1996) <야인시대>(2002)에서 조선 3대 왕 이방원과 일제시대 건달 김두한을 영웅으로 만들었듯이, 주인공 김준을 “고려 사직을 위해 몽고와의 화친은 불가하다”고 말하는 애국자로 설정하고 있다. 정작 김준 본인이 고려 황실을 위협하면서 폭정을 일삼은 무신 정권의 주체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신 정권도 40년간 몽고와의 전쟁을 이어간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강화도로 천도해 정권의 안정을 꾀하는 사이 전 국토와 국민이 황폐화된 점도 면죄부가 주어졌다. 외세와의 전쟁에서 국가의 기상을 높였다는 정당성을 준 셈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차별화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몽고, 중국 원 왕조다. 그리고 그들에게 처참하게 피폐화되는 고려의 모습이다. <무신>의 최근 방송을 보면 몽고 장수 자랄타이가 고려를 유린하며 고려인 20만여명을 노예로 끌고 가는 내용이 나온다. 고려 황제의 태자도 볼모로서 몽고로 끌려 간다. 실제로 몽고는 1231년부터 1259년까지 무려 29년 간 6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며 주권을 위협한다. 이 기간 동안 고려 국민의 피해는 드라마에서 보는 바 이상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방영 중인 SBS TV <신의>라는 드라마도 원 왕조에 종속된 고려를 배경으로 한다.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 왕이 돼 돌아온 공민왕(유덕환)의 이야기다. 부인 노국공주는 원의 공주 출신. 앞으로 원의 속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민왕의 노력이 그려질 예정인데, 이 말은 고려 무신 정권이 끝난 뒤부터 고려는 원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수, 당, 원, 청 등 중국 역대 왕조는 강성할 때마다 우리 왕조에는 실체적 위협이었다. 기간이나 강도를 봐서도 결코 우리 대중문화 속의 영원한 ‘침략자’인 일본보다 전혀 약하지 않은 상대다. 그러니 우리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중국 왕조를 ‘악역’으로 등장 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대륙의 신흥 강대국은 자애롭지 않았다

SBS TV 드라마 <연개소문>(2006)의 당, 영화 <최종병기 활>(2011)에서의 청 왕조가 좋은 예다. 특히 <최종병기 활>에서는 자인(문채원)처럼 청에 끌려가는 수십만 명의 포로가 영화의 핵심 모티브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우리 대중문화에서 가해자 중국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최종병기 활> <무신> 등이 이례적일 정도다. 일본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 비교해서도 그렇다.

KBS TV 드라마 <각시탈>처럼 일본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더라도, <야인시대>(2002) 등의 건달 소재 드라마는 물론이고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2006)처럼 대통령이 주인공인 영화도 일본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않는다. 조재현, 안성기, 문성근 주연의 영화 <한반도>(2006)에선 일본이 남과 북의 통일 반대 세력으로 등장한다.

현실에서 중국과의 이어도 분쟁 문제가 독도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가해자 중국이 없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중국은 ‘열외’인 분위기란 의미다. 중국 정부가 공공연히 이어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해군기지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여전한 게 그런 예다.

다만 최근 달라진 양상이 있다면, 일본이 우리 대중문화의 주요 시장이 되면서 그들을 더 이상 가해자로 등장시키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붐을 이뤘던 대중 문화계의 반일 분위기가 한풀 꺾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중문화에서 주적으로 뒤바뀐 미국

재미 있는 점은 언제부턴가 이 자리를 미국이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우리 드라마나 영화의 ‘주적’처럼 됐다는 의미. 개봉중인 영화 <R2B:리턴투베이스>가 그렇고, 드라마 <아이리스>(2009) <아테나:전쟁의 여신>(2010)이 그런 식이었다. 모두 실체적이고 눈앞에 있는 위협을 놔두고, 동맹국인 미국을 방해 세력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있지도 않은 북한의 반정부 세력을 가상으로 만들어 낸다.

다시 <무신>으로 돌아가자. 비단 드라마로 과장한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 옆에 있는 중국은 그리 ‘자애로운’ 강대국이었던 적이 없다. 20만명의 고려 포로를 중국으로 끌고 가는 몽고 장수 자랄타이처럼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관객이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우성, 수애 등의 톱스타가 나온 드라마 <아테나>도 그렇고, 가수 비가 주연한 영화 <R2B>에 대한 관객 반응은 미지근하다. 현실에서 벗어난 스토리는 관객이 가장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미래한국)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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