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 누가 승자인가?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 누가 승자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12.09.12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세계는 지금 특허전쟁 중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애플과 삼성 두 라이벌 기업이 사활을 건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다. 2011년 4월에 애플이 삼성의 제품이 자사의 디자인과 특허를 침해했다고 제소하면서 시작된 소송은 9개 나라에서 30여건의 글로벌 특허 소송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기의 대결로 불릴 만하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내려진 판결 결과가 팽팽하게 전개됐던 것과는 달리 미국 법원 배심원단이 내린 평결 결과는 애플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배심원단은 삼성에게 10억5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애플에 지불하라고 평결했다. 배심원 평결에 이어 판사의 최종판결이 남아 있어 아직 재판이 끝난 것은 아니다. 미국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캘리포니아 연방 북부지방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는 앞으로 두 기업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준다.

배심원단의 자국 이기주의

실리콘밸리가 미국 IT의 산실이고, 애플은 미국 IT기업을 상징하는 혁신의 아이콘인 점을 고려한다면, 애플에 어느 정도 유리한 평결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평결 내용은 자국의 기업 이익만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일 만큼 치우친 것이었다. 배심원 대표인 벨빈 호건은 “삼성에 큰 고통을 주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배심원단은 애플이 제기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기술과 디자인 특허 대부분을 삼성이 침해한 것으로 판단한 반면, 삼성이 제기한 특허를 애플이 침해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과연 ‘둥근 모서리 사각형’은 애플만이 특허를 가질 수 있는 고유의 디자인인가? 미국 배심원단은 이를 애플 고유의 디자인으로 판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여러 나라의 판결을 비교해 보면 미국 배심원단의 평결은 국제적인 시각과 차이가 있다.

지난해 8월 네덜란드 법원은 갤럭시S 등 제품이 애플의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둥근 모서리 사각형’은 휴대전화의 일반적 특성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달 한국 법원도 애플의 디자인 특허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과 일본 법원 역시 애플 디자인의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럽과 한국, 일본 법원은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의 적용 범위를 좁게 봤지만, 미국만이 이를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사실 ‘둥근 모서리 사각형’은 한 기업이 독점을 주장할 수 있는 모양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이번 평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정도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IT 웹진 엔가젯에는 대부분 애플을 비판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처음 차를 발명한 사람이 바퀴 네 개, 핸들로 회전하는 등의 자동차 디자인을 특허내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 “동그란 모양의 햄버거를 판다면서 버커킹이 맥도날드를 제소하겠네”처럼 우회적 비판을 하는 댓글이 있는가 하면, 애플 제품을 사지 않을 이유가 너무 많아졌다는 직설적 비판도 있었다.

미국 배심원 제도의 허점은 이번에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미국 내에서 배심원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사실 배심원 제도는 과거 역사 속에서 필요한 제도였지, 현대의 전문화되고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적합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특허는 그 내용이 복잡하고 워낙 전문적이라서 한국, 독일, 일본에서는 특허법원을 별도로 두고 특허만을 전담하는 변호사와 판사가 있을 정도이다.

지적 재산권은 중요

배심원단의 무리한 평결이 있었다고 해서 특허라는 지적 재산권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영국과 함께 특허제도를 통해 발달한 나라로 특허를 중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제품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포함한 트레이드 드레스를 중시하는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현상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감정과 느낌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한층 높인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소송 평결은 그렇게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은 미래를 바꾸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판결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바꾼다. 그런 면에서 이번 평결은 기업들의 혁신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IT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특허권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인정했다는 것이다.

특허는 독점권을 인정하는 것이라서 과도한 특허 인정은 미래의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 반면 특허를 과소하게 인정하면 누구도 특허를 얻기 위한 투자나 발명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특허제도를 적절히 운영하는 것은 혁신을 가져오고 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길이다.

과거 애플이 혁신의 화신이었다면, 지금은 삼성이 혁신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삼성에 의해 더 다양하고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지만, 애플은 자신들이 만든 것을 지키고 새로운 경쟁을 거부하는 인상을 준다. 애플의 이런 애플답지 않은 모습에 사람들은 실망하고 있다. 시장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 혁신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배심원의 판단과는 달리 그렇게 애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에 따르면, 삼성의 휴대폰은 5~7월에 1위로 올라섰다. 반면 애플은 LG전자에 이어 3위로 밀렸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지난 8월 삼성은 애플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시장에서 승리해야 진정한 승자

기업은 법원에서 배심원을 설득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경쟁에서 소비자 선택을 받아 승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번 특허소송의 결과는 그런 면에서 소비자의 이익을 외면한 보호무역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는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자국 산업과 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특히 올해는 전세계적으로 선거가 많다. 정치인들 입장에서 보후무역의 여론을 무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우리 기업의 제품들은 연이어 덤핑판정과 특허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보호무역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모두가 패자가 된다는 점은 역사의 교훈이다.

이번 특허전쟁이 혁신을 가로 막고 법의 보호에 안주하도록 한다면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손해를 주는 소모적인 싸움일 뿐이다. 특허소송이 기업간 경쟁을 위축시키는 보호무역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높이고, 보호무역의 폐해를 세계에 알리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미 법원의 합리적인 판결을 기대해 본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