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죄, 피해자 엄마의 심정으로 다스리겠습니다”
“흉악범죄, 피해자 엄마의 심정으로 다스리겠습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9.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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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이금형 광주지방경찰청장

최근 묻지마 살인, 성폭행 사건 등 강력사건이 잇따라 보도되며 사회가 불안하다.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국민은 물론 전문가들이나 정치권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관련법이 마련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이를 일선에서 집행할 경찰은 한숨짓는다.

인력 증원이나 예산 배정이 없이 업무만 가중돼 양질의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으로 근무하는 등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분야에서 전문영역을 개척해온 이금형 광주지방경찰청장으로부터 경찰의 입장을 <미래한국>이 들어보았다. 이 청장은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가 여성 최초로 치안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 최근 잇따른 강력사건으로 국민들이 불안해합니다. 우선, 이런 범죄가 예전보다 급격히 증가한 것인가요, 아니면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건가요.

과거에는 신고율이 3-5% 정도였는데 지금은 13-15%까지 올라갔습니다. 성범죄는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되고 가해자에게 협박당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또 피해자 책임이 더 크다는 등의 잘못된 사회 인식으로 신고율이 저조합니다.

2005년부터 성폭력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가 설치된 후 그래도 많이 신고되는 편입니다. 병원에 여경이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피해자가 올 경우 응급치료, 임신검사 등을 무료로 하고 피해자 조사 진술 등을 한 곳에서 하는 시스템입니다.

경찰력 만으로는 한계, 시민 신고 절실

- 많은 사건현장을 접하면서 범죄를 줄이거나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도시화로 대부분이 아파트, 연립주택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반상회도 잘 안합니다. 이런 상황에 인터넷 음란물 등 왜곡된 성문화가 10대 미만부터 노출돼 학습되고 있어요. 이들이 커가면서 가상현실에서 경험한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특히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 가해자의 얼굴을 아니까 성폭행 후 살해하는 범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3만7000명에 달하는 우범자가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것이죠. 이들이 소녀가장 주변이나 여중고교 인근에 있다가 마치 양의 가죽을 쓴 늑대같이 기회가 오면 맹수로 돌변하는 것입니다.

10만1000명의 경찰력으로 5000만 국민을 다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전 국민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합니다. 내 가족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 아이나 여성들의 위험을 보면 즉시 신고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 얼마 전 일간지 기고 칼럼에서 정치권이 범죄 대책을 위한 법제정에만 신경을 쓰지 이를 직접 집행할 경찰의 인력.예산의 뒷받침에는 무관심해 업무 추진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어떤 취지인가요.

2003년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강력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경찰을 1만5000명 증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고 실제 그렇게 해서 치안을 안정시켰습니다.

경찰청 여성청소년 과장 등으로 일할 때 여성·아동·청소년 관련 법률이 제·개정됐습니다. 가정폭력법, 학교폭력법은 범죄로 취급되지 않던 것이 범죄로 규정됐고 실종아동법은 범죄 연관 유무와 관계없이 신고가 들어오면 우선 찾아주게 됩니다.

이런 법이 사실은 각 부처별로 담당하는 것인데 모든 실무는 경찰이 주로 해야 합니다. 경찰 인력 증원이나 예산 배정이 없이 기존 인원으로 겸직형 전담반을 만들어 업무가 과중돼 효율적 치안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과학수사와 아동·여성범죄 전문가

- 광주지방경찰청장으로서 인화원 사건 재수사를 지휘하셨죠.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작년 5월 4일 부임해서 9월 도가니 영화가 사회 이슈화되면서 7년 전 무혐의로 종결된 인화원 사건을 재수사하게 됐습니다. 처벌을 하지 못하더라도 실체적 진실 규명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장애인 피해자들이지만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이들의 한을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신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의 협조를 얻어 피해자 6명을 10여일 동안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트라우마는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얘기해야 치료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얘기한 피해사실들이 증거가 될 수 있고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는 자체가 증거가 됩니다. 특히 가해자가 보호 감독자인 경우 가중처벌이 돼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 처벌이 가능했습니다.

- 마포경찰서장으로 재직하실 때는 연쇄 성폭행범 일명 ‘마포 발바리’를 검거하시기도 했죠.

마포경찰서장으로 부임할 때 연쇄 성폭행범죄가 14건이 발생한 상황이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또 발생했습니다. 부임 첫날부터 수사본부로 가서 매주 회의에 참석했어요. 오랜 수사로 형사들이 지쳐 있었어요.

경찰청 과학수사과와 협조해서 과학수사에 심혈을 기울였죠. 범인이 한 피해자에게서 훔쳐간 50만원 수표를 발견해 증거물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판명했습니다. 이 범인을 잡은 후 아동 대상 발바리가 또 범행을 했습니다. 5학년 어린이가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어요.

수사관들에게 피해자 보호를 잘하면 단서가 나온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그 어린이에게서 범행과정에서 차의 문이 드르륵 열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범행에 사용된 차량이 승합차라는 데 착안해 사건 시간대 전후 범행 현장을 수색했죠. 2시간 동안 배회한 차량을 찾아 범인을 잡았습니다.

이금형 청장은 경정이 되기까지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으로 일하는 등 17년 동안 과학수사에서 잔뼈가 굵었다. 미술 전공이 꿈이었던 소질을 살려 과학수사에서 몽타주를 맡아 그리고 몇 날 밤을 새우며 훼손된 시체 부검을 확인했다.

이 청장은 여성실장과 여성청소년과장으로 일하면서도 많은 성과를 올렸다. 여경 기동수사반 전국 지방청 확대 설치, 성매매피해여성긴급지원센터, 성폭력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 182 실종아동찾기센터 등을 설치했다.

그런가 하면 동국대에서 2002년 가정폭력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2008년 비행청소년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이론적인 면도 갖춰 경찰 내에서 아동.청소년, 학교폭력, 성폭력 분야의 1인자로 인정받고 있다.

 

여성경찰 역대 최고 지위, 행동하는 경찰 모범

- 부지런하고 창의적으로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 182 실종아동찾기센터 등을 만드신 것으로 압니다.

여성실장으로 일할 때 초등학교 5학년생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어요. 대학병원.종합병원 4곳을 돌아다녀도 진료를 거부해 4시간 동안 하혈하는 학생을 데리고 헤매다 한 곳에서 받아줘 겨우 살렸어요.

이 사건을 통해 성폭력문제가 문제의 종합세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폭력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를 2001년 경찰병원 내에 11평으로 시작했다가 2004년 12월 밀양 여중생 사건 이후 40평으로 늘렸습니다. 그래도 전국에서 올라오는 피해 대상자를 수용하기에는 부족해 광역시도 단위로 대학병원이나 시도립병원을 센터로 지정하게 됐죠. 지금은 전국적으로 21군데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청장은 경찰에서 치러야 하는 5번의 승진시험을 그것도 단번에 다 통과해 순탄하게 승진했다. 설거지 빨래 청소 요리를 하며 방송 강의를 듣고 냉장고 등에 메모지를 붙여놓고 틈틈이 외우는 등 자투리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가정과 일을 모두 무난히 해냈다.

- 경찰의 여성 근무 여건이 다른 분야에 비해 어떻다고 보십니까.

이제 파출소에 여성 화장실은 구비됐지만 휴게실은 아직 없습니다. 경정까지 승진시험은 남경 여경 구분 없이 개방돼 있습니다. 경위 이하에는 여러 보직을 맡고 있지만 경위 경감 등에서는 인사 정보 감찰 경비 등 중요 보직에 아직 배려가 안 되는 편입니다.

- 여성 경찰관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셨는데 후배 여성 경찰관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자녀들 키우고 40 넘어서 사회활동을 하며 “사회의 어떤 일도 엄마 역할의 확장에 불과하다”고 얘기한 것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역지사지로 저는 경찰 업무를 내 가족의 일로 체감하고 일하고 있어요.

공감치안, 감성치안이라는 말과 통하는 개념입니다. 여자라고 해서 특혜를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치안력만 약화시킵니다. 여경들이 오히려 궂은 일을 찾아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결재만 하지 않고 현장에 다가가는 청장이 되려는 이 청장은 자신은 물론 광주지방경찰청 전 과장과 산하 5개 경찰서장들이 지구대 등 야간 현장체험을 하게 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경찰이 돼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관내 306개 초중고를 찾아 인기 개그프로그램 ‘애정남’과 퀴즈골든벨 형식의 범죄예방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작년 11월 치안감 승진 축하 때 받은 난과 화분을 팔아 청각장애인시설에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을 받기도 했다.

- 끝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은

99%의 경찰이 청렴하고 자기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일부 비리사건이 일어나고 강력범죄사건을 제대로 처리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럴 때 따끔하게 질책하시더라도 양질의 치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인력과 예산의 뒷받침이 돼야 합니다. 선진경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미래한국) 

강시영 기자 ksiyeong@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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