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부통령 후보 폴 라이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공화당 부통령 후보 폴 라이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 이원우
  • 승인 2012.09.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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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의 자유주의

 

당신은 요즘 한국의 정세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딱 한 가지 질문만 던져보면 정답은 나오게 돼 있다.

질문: 당신은 한국의 2030세대가 ‘평등’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는 순간 현실을 보는 당신의 눈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인증된다. 특히나 당신이 대중들 앞에 나서서 이런저런 고상한 소리를 하는 걸로 돈과 명예, 영향력과 지위를 얻고 있는 ‘사회적 어른’이라면 하루 속히 콘택트렌즈라도 맞춰서 보는 눈의 격조를 높이시길 바란다.

2030은 평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할 수가 없다. 평등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평등하게 바라보겠는가?

평등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2030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대다수 2030이 말하는 평등 지향에는 한 가지 전제가 생략돼 있는 것이다. ‘나는 빼고.’

자기가 없으면 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는 게 현재 2030세대의 가장 큰 문제다. 어른들은 그런 2030의 눈에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달콤한 얘기들을 적당히 주워섬긴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 눈엔 어른이 점점 더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따끔한 소리로 꾸짖어 주는 어른은 사라진 지 오래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그들도 아직 청춘’이라 그런 거겠지만 결국엔 비겁한 것뿐이다.

일련의 현상은 2030이 정치를 혐오하는 증상과 매끈하게 연결된다. 정치란 본래 권력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그 주변에 불안과 부조리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속성이 그러하므로 유권자들은 자기 인생 열심히 살다가 투표일이 되면 ‘그나마 덜한 후보’한테 한 표 행사하고 깨끗이 잊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괜히 큰 기대 가졌다가 실망할 필요가 없다. 정치는 중요하지만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다.

미국 대선은 ‘가치관의 대결’

허나 정치가 밥 먹여준다고 착각하는 2030의 판단이 맞다고 이미 동의해 준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본인들이 깨끗하다는 것을, 깨끗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그렇지만 옷에 묻은 얼룩에 자꾸 손을 대 봤자 더욱 더러워질 뿐이다. 애잔한 풍경.

‘역시 정치는 믿을 게 못 돼’라고 2030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통에 엉뚱한 백신개발자만 신이 났다. 50년 후의 한국인들은 18대 대선을 반추하며 배가 아프도록 비웃는 건 아닐까? 반드시 2062년까지 살아남아서 “나는 그 흐름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변호하고픈 심정이다.

2012년은 미국도 대선을 앞두고 있어 좋은 대조군이 된다. 미국의 입지 역시 예전 같지 않아 백악관과 FRB 모두 포퓰리즘에 포획당한 지 오래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민중의 막무가내식 요구가 거대한 시대정신이라도 되는 양 잠시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국에 유학 오면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그저 듣기에만 좋은 말잔치를 얼마나 빨리 끝내느냐가 미국 ‘슈퍼 파워’의 생명줄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역할이 더욱 중차대해진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는 미트 롬니로 결정됐다.

헌데 그보다 더욱 이목을 끄는 인물이 하나 있다. 딱딱하고 경직돼 보이는 롬니의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 등장한 부통령 후보, 폴 라이언이다.

그의 나이 올해로 마흔 둘. 롬니의 장남과 동갑이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도 정계 입문 23년차인 그의 언행이 심상치 않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정치인으로, 공화당원으로 살아온 정황에서 우러나는 일관성이 그에게 탄탄한 느낌을 부여한다.

롬니와 라이언은 ‘두 번째 레이거노믹스’를 지향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FRB 전 의장 폴 볼커와 함께 사회를 구조 조정시킨 위대한 성공사례다. 그들 역시 정부가 지출을 감소하고 세금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믿고 있다.

태생이 정치인이라 전세계적으로 유행중인 국가주의 관점에서 자유롭진 못하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정향(定向)까지 숨겨 가며 정치생명을 이어가진 않으려는 것 같다.

미국 내의 반발은 당연히 심하다. 레이건과 폴 볼커가 재직 당시 엄청난 비난과 시위 앞에 직면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이러함에도 그들이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미국 대선이 가치관의 대결, 이념의 대결이 됐음은 오바마도 인정한 바다.

비난을 받는데도 긴 시간 동안 뜻을 굽히지 않으면 처음엔 거부하던 사람들도 조금씩 귀를 기울인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 선거는 패배할지도 모르지만 이념의 시스템은 붕괴되지 않는다.

당선이 힘들 것 같으면 본연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한국의 (자칭) 보수와는 딴판이다. 한국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정파의 현주소는 한심할 정도다.

새누리당은 ‘반값등록금’, ‘경제민주화’ 등 뒷일을 생각지 않는 이슈에 일찌감치 줄을 댄 상태다. 대중들은 애초에 보수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조차도 듣지 못한다.

본인들도 이념적 기반이 없기는 마찬가지니 차세대 리더가 배양될 리 없다. 그저 정치를 숫자놀음으로 생각하는 사이비 정치공학자들이 뛰어난 지능을 엉뚱한 곳에 허비할 뿐이다.

폴 라이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자기가 모시는 국회의원 뒤에서 주먹을 들고 반값등록금의 구호나 외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직무유기

보수의 집권을 원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요즘 2030들의 단순무지한 의사결정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젊은이들의 격렬한 비난과 악플에도 아랑곳 않고 묵묵히 펴 나갈 ‘뜻’이 있는가?

트위터의 팔로워나 페이스북의 ‘좋아요’ 숫자에 신경 쓸 시간에 하이에크와 미제스를 읽을 용기가 있는가? 주변의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를 말할 수 있는 배포가 있는가?

이 방면에선 차라리 통합진보당의 리더 배양 시스템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고대녀’ 김지윤이며 김재연은 오랫동안 첨예한 트레이닝을 받은 그 바닥의 ‘새싹’들이다.

껍데기 평등보다 개인의 자유가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 당신은 비슷한 관점을 지닌 이 나라의 ‘새싹’들에게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가? 자유주의의 가치를 믿는 소수의 2030에게 영감이 될 만한 행동을 얼마나 해 왔는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에 소홀한 것을 두고 직무유기라 말한다. 지금, 자유의 가치를 믿는다는 한국의 모두가 직무유기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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