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스페인대사관 진입사건 지휘한 장본인
탈북민 스페인대사관 진입사건 지휘한 장본인
  • 미래한국
  • 승인 2002.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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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탈북민 인권보호활동 8년, 모습 드러낸 김상헌 씨
지난 8년 동안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탈북민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전념해온 김상헌씨(金常憲·70)가 마침내 가명을 버리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20여년간 세계식량계획(WFP)에서 일한 유엔베테랑이기도 한 그는 그동안 C.K Park 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사회에서 활발한 인권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금년 들어서는 3월14일 탈북자 25人 스페인대사관 진입사건 등 해외공관진입사건을 독일인의사 폴레첸 씨 등과 함께 지휘해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요약. - 탈북민 문제에 사명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난 94년 20여 년간 일하던 유엔 WFP에서 은퇴한 후 한국에서 여러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 1996년부터는 탈북자들의 피와 눈물과 원한이 하늘에 미치는 비극의 현장을 중국에서 직접 보게 됐다. 그들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참혹한 인권탄압이 아프리카 구석에서 일어났더라도 국제사회는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탈북자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실정이었다. - 국제사회가 탈북난민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이유는첫째,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북한이 접한 국경지역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적은 지역이다. 또한 중국은 문제를 과거 남북한간 이념대립의 정치선전의 연장으로 주장하며 남한이 북한을 흑색 선전한다고 몰고갔다. 셋째, 엄청난 규모의 비극에 대한 조사가 전무한 실정이었고 그나마 존재하는 인터뷰 등 대부분의 기록은 한국말이어서 국제사회에 알릴 수 없었다. 탈북자 지원단체와 개인들의 관심도 부족했다. 그때부터 많은 사회적 관심이 있었다면 6~7년 전에 이미 오늘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활동을 밝힌다면북한에서 갓 탈출해 헐벗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교회 등 인권단체는 더러 있었다. 나는 탈북자들이 보호받을 권리를 찾아 주는 일에 전념했다. 탈북자들이 국제법적 보호 대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의 증언을 확보했고 그들이 국제법적 난민이라는 자료와 문헌을 준비해 국제사회에 유포했다. 이러한 기초적 여건이 갖춰졌을 때 다음 단계로 대사관 진입을 통한 탈북자들의 망명을 도왔다. 금년 3월 14일 25명의 탈북자들이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것은 탈북자 문제해결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탈북자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시작한 몸무림이었던 것이다. ‘기획망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탈북자들의 노력을 국제사회 민간 활동가들이 도와준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국제사회가 탈북자들의 인권유린 현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인식하게 됐고 국제사회는 탈북자들의 편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됐다. 중국내 외국공관에서는 탈북자들을 인도주의 고려의 대상으로 보고 영내에 진입한 탈북자들에 대해 제3국 망명을 전원 허가했던 것이다. 탈북자 해외공관진입 사건으로 인해 더 많은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는 지적도 있는데 탈북자들의 비극은 이전부터 계속됐던 것이지 새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중국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아무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인권 운동가들의 활동의 결과로 국제사회가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탈북자들의 강제송환으로 여러모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급기야는 입장을 재고 해야 하게 될 것이다. 지난 10월말 일본의 카토 히로시씨가 탈북자 지원활동을 하다 중국당국에 연행됐다가 7일만에 풀려난 것은 일본정부의 단호한 입장 표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 사건이었다. - 세계식량계획(WFP)에서의 활동대학 졸업후 영국대사관에서 7년간 근무했다. 그 후 1년 동안 미국의 민간 원조단체 CARE에서 일했고 이어 1975년부터 당시 한국에서 식량원조 활동을 벌이고 있던 WFP서울 주재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자리가 귀하던 시기였고 관심보다는 우선 생계수단으로 시작했던 일이었다. 81년 까지 국내에서 활동했고 이후 태국, 캄보디아에서 난민구호 사업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난민구호 활동과 학교급식 사업, 남미에서는 자조사업 등의 일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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