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석오 이동녕과 백범 김구
[책소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석오 이동녕과 백범 김구
  • 미래한국
  • 승인 2002.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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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희 著 / 동방도서 刊, 2002
이 책은 임정27년(1919~1945)을 이끌어간 주석 이동녕(1869~1940)과 김구(1876~1949)를 비교 고찰한 비평적 인물평전이다. 1부 한민족 광복정책의 리더십, 2부 민주공화정부의 혁명정책 수행, 3부 통일국가 달성에의 집념 등 모두 3부작으로 구성돼 있다. 1905년 서울 상동교회의 종교집회에서 처음 만난 석오와 백범은 이후 석오가 서거하기까지 35년간 상호 협력·화합·보완 차원에서 민족독립운동을 정책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석오가 질서·화합·협력의식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백범은 혁명적이고 정의감 속에서 과격한 독립통일관의 리더십을 보였다.두 지도자는 임정에서만 22년간을 상해에서 기강까지 중국 대륙을 누비며 내정 외교 문화교육에 이르는 독립운동의 여러 방략을 정책차원에서 펼쳐나가되 헌법에 의거, 5번의 개헌을 통해 지도제를 변경하면서 국토수복작전을 폈다. 응징 투쟁 부문까지도 협력을 통해 법통성의 현주소를 마련한 두 사람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맥락짓게 했다. 석오는 72년간을, 백범은 74년간을 가족과 일신의 안위를 떠나 이역만리 중국 대륙에서 오직 조국의 광복을 위해 불철주야 애국투쟁에 몰두했다.그러나 석오는 오랜 기간 동안의 기록을 남겨 놓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는 취약점을 남겨 놓았다. 백범은 <백범일지>라는 생생한 임정 전후의 기록을 남겨놓아 우리측 자료로 1차적 신빙성 속에서 그의 역사의식을 점검해볼 수 있다.1940년 3월 석오가 중국 기강에서 서거한 이후 9년 만에(1949) 유명을 달리한 백범은 8·15 광복이후 통일국가 건설이라는 아집적 정치관에 따라 남침의도가 명백한 김일성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남북협상에 참가하는 등 해방정국의 해법을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UN 한국위원단의 입북을 저지한 김일성을 만났을 때 그때가 유일한 통일국가 달성의 호기였음에도 그를 면담한 평양에서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 점도 국제정치 감각의 미숙함을 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적 정서를 지적해 둔다. 석오도 성재 이시영과 같이 8·15 이후 환국했다면 백범의 처신을 조율했을 것이며 우남의 단독정부 구성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유추해 본다./조항래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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