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사체유기 사건'의 전말
'산부인과 사체유기 사건'의 전말
  • 이원우
  • 승인 2012.09.18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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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치정사건 넘어서는 의미 있어

지난 7월 30일 기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우유주사 살인사건’이다. 등장인물은 총 세 명이다.

A: 서울 강남 H산부인과 의사(45)
B: 최고급 룸살롱, 즉 ‘텐프로’ 종사 여성(30)
C: A의 아내

사건 당일 A와 B는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A: “오늘 한잔 할래요” (7월 30일 20시 28분 50초)
A: “언제 우유주사 맞을까요” (20:54:38)
B: “오늘요ㅋㅋ” (20:55:15)
A: “어디에 있는데요?” (20:56:55)
B: “아직 밖이에요” (20:58:08)
A: “10시정도 되면 전화주삼” (21:00:50)
B: “네” (21:01:44)
A: “11시반에오세요” (22:05:02)
B: “저는 이제 볼일 다 봤는데~ (22:05:18)
A: “병원으로요~” (22:05:37)
B: “그렇게 늦게요? (22:06:05)
A: “아님 제가 11시경 집으로 갈까요?” (22:05:58)
B: “집에 엄마가 계세요ㅋㅋ” (22:07:30)
A: “그럼 병원 11시에 올러요” (22:08:32)
B: “넹” (22:09:56)
B: “저 도착했어요” (23:01:25)

위의 메시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A와 B가 ‘우유주사’를 빌미로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내연의 관계. 그렇다면 우유주사는 뭘까?

항간에는 우유주사가 ‘성관계’를 지칭하는 은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설득력은 낮다. 문자 메시지를 보자. B의 집으로 가지 못하는 상황임이 확인되자 A는 병원으로 올 것을 제안하고, B는 “이렇게 늦게요?”라고 되묻는다.

일반적인 내연관계라면 B의 집 다음으로는 호텔과 같은 은밀한 장소가 알맞지 않았을까? 간호사와 CCTV가 있는 병원으로 부를 개연성은 낮지 않을까? 구속된 A 역시 우유주사는 ‘영양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대체 어떤 영양제인 걸까. 위의 문자메시지는 B가 우유주사를 위해 대단히 성실하게 움직이는 정황을 보여준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우유주사는 현재 암암리에 유행하면서 고질적인 중독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마취제 프로포폴(propofol)임을 특정할 수 있다.

한 눈에 봐도 우유처럼 생긴 프로포폴은 본래 마취 목적의 수면 유도제다. 특이한 점은 수면효과는 있으나 통증감소효과는 없다는 점, 그리고 잠드는 순간과 깨는 순간의 달콤함과 개운함을 실시간으로 느끼게 해 중독성 있는 쾌감을 준다는 점이다.

한 번 그 쾌감에 발을 들이면 더 많은 양을 투입 받고 싶어진다는데, 다량을 투약할 경우 호흡이 중단되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태가 쉽게 발생한다.

즉, 프로포폴은 ①일종의 환각상태를 경험케 하고 ②중독성이 매우 강한데 그 중독의 끝은 죽음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미 ‘마약’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역시 프로포폴에 중독되어 사망한 정황이 있으며 한국에서도 프로포폴은 마약류로 분류되고 있다.

사건을 좀 더 넓은 눈으로 바라보면 A와 B는 매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치정관계가 아니라 프로포폴을 매개로 한 거래관계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A가 B에게 프로포폴을 제공하면 B는 A에게 성관계를 허락하는 구도다. 쉽게 말해 A는 B의 ‘프로포폴 스폰서’였을 거라는 가설이 성립된다. 이 가설이 맞다면 더 이상 성관계가 사랑의 증표일 수 없으며 하나의 거래대상으로 전락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이 사건에도 숨어 있는 셈이다.

물론 사건 당일 A는 B에게 프로포폴을 주사하지는 않았다. A는 미다졸람과 베카론 등 13종의 마취제를 섞어서 주사했다고 진술했다. 이것은 A와 B의 거래관계 상에서는 일종의 ‘사기’이자 ‘공사’에 해당했을 것이나 정보가 부족하고 이미 수면마취에 중독됐을 확률이 높은 B로서는 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으로 인해 결국 B는 사망했다. 당황한 A가 아내인 C에게 연락하여 B의 사체를 함께 유기한 것이 본 사건의 전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과 여론의 깊이는 매우 얕다. 겉면만을 보고 있다. 사회 지도층에 해당하는 의사가 유흥업소 종사 여성과 내연관계였다는 사실, 우유주사에 대한 잘못된 해석 등이 이 사건의 심각성을 훼손하는 형국이다.

현실은 매우 엄중하게 돌아가고 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병원에 찾아와서 “수면마취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가 몇 년 전부터 알음알음 늘어났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중의 상당수는 연예인, 유흥업소 종사자 등을 포함한 ‘예쁜 여자’들이다. (이는 상당수의 중독자들이 성형수술을 계기로 프로포폴의 매력을 처음 감지한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부 극소수의 비양심적 의사들이 프로포폴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방에 40만원이라는 가격을 붙여 가며 프로포폴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다거나, 집으로까지 출장을 가서 주사를 놓아주는 식이다. (A도 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아무리 조사를 해 봐도 고의살인의 증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쯤 되면 의사가 아니라 아편장이나 다름없다. 세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충격적인 세태는 과연 언제까지 숨겨질 수 있을 것인가?

1건의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29건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이상 징후가 있었다는 것을 ‘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의 뒷면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중독자들의 위험천만한 거래가, 우리 시대의 추악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예외 없이 예쁜 여자에 대한 비틀린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저 하나의 사체유기사건으로 종결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윤리의식을 초월한 인간의 욕망, 그리고 수면마취의 덫에 사로잡혀서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중독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미래한국)

* 본 칼럼은 이원우 기자가 연재하는 ‘한경닷컴 직장人 칼럼‧커뮤니티’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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