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해진 안철수, 쟁점은 ‘역선택’ 저지?
온건해진 안철수, 쟁점은 ‘역선택’ 저지?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2.09.21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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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과 다른 스탠스..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겨냥한 듯

안철수 서울대학교 교수가 드디어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안 교수는 9월 19일 서울 구세군회관에서 열린 출마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계속하면, 서로를 증오하고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나아가서는 국민을 분열시킨다”며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다음 5년도 분열과 증오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어 그는 “누가 당선 되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서로 도울 수 있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통합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며 “그러한 정책 대결 속에서 제가 만약 당선된다면 다른 후보들의 더 나은 정책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또 경청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안철수 교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좌파진영 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경합 중이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안 교수가 출마 선언에서 박근혜 후보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 및 보수우파 전체와 일정 부분 대립각을 세우며 전선을 구축하리라는 관측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9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과 현 정부를 맹렬하게 비난하며 “현 집권세력(새누리당)의 정치적인 확장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야권 진영과의 단일화는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도 했다. 현 정권과 새누리당에 맞서 ‘정권교체’를 주장해 온 좌파 야권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년 전과는 180도 달랐던 안철수의 출마선언문

그러나 이날 안 교수의 출마선언 내용은 1년 전과는 180도 달랐다. 그의 연설에서 좌파세력이 새누리당 및 보수우파를 공격할 때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키워드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 교수는 ‘독재’, ‘냉전’, ‘민주화’, ‘통일’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재벌’이라는 단어를 딱 한차례 사용했는데, 한 언론사 기자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을 때 “재벌 경제 집중 폐해를 심화시켰다”고 답변한 부분에서 나왔다.

여기에 기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문재인 후보와의 야권단일화와 관련해서도 안 교수는 ‘아직 단일화 논의는 시기상조이며, 국민이 동의할 정도의 정치개혁이 이뤄져야만 단일화를 논의할 수 있다’며 다소 모호한 발언을 했다.

이튿날인 9월 20일의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대선주자들이 출마선언 직후 거의 의무적으로 방문하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은 안 교수는 故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에 모두 참배한 뒤 ‘역사에서 배우겠습니다’라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뿐만 아니라 그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묘소에도 들려서 추모비에 적힌 글귀를 한참 동안 읽기도 했다.

이 모습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사흘 전 행적과 대조적이었다. 문재인 후보는 경선 승리 직후인 지난 9월 17일에 국립현충원을 방문,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으나,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은 방문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논란이 제기되자 문 후보는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해자 측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나도 박 전 대통령 묘역에 언제든지 참배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통합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안철수, ‘역선택 저지’에 올인하나

안철수 교수의 이같은 ‘온건’ 행보는 조만간 성사될 야권 후보단일화 여론조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故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방문해 예를 갖추는 행위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 참가할 새누리당 지지자들 및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 교수는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한겨레신문과 KSOI가 지난 7일과 8일 양일간 공동으로 실시하고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 중 야권단일화 후보로 민주당 후보를 꼽은 비율은 54.1%로 나타났고, 안철수 원장은 22.6%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안 원장의 본선경쟁력을 우려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이는 민주당 후보를 역으로 선택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역선택은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 실행되는 일종의 편법으로,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노무현-정몽준 여론조사 단일화에서도 사용됐다. 2002년 11월 24일 실시된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46.8%의 지지를 얻어 42.2%에 그친 정몽준 후보를 누르고 단일후보로 결정됐다. 문제는 이 여론조사 당시 대구-경북의 지지율이다. 보수성향이 강한 이 지역에서 정몽준 후보는 조사대상자 400명 중 단 한명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좌파성향이 강한 노무현 후보가 100%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따라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상대라고 여겨졌던 노무현 후보를 역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교수가 출마선언 및 이후 행보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자극하며 자신의 적으로 돌리는 선택을 할 경우, 11월 중순 이후로 예정된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서의 승산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안 교수가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시 여론조사에서의 경쟁력을 감안해서 스탠스를 ‘중도’로 잡았다고 추측하더라도 무리는 아니다.

특히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지난 17일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그냥 지나친 데 대해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 교수의 이날 선택은 ‘내가 문재인 후보 보다는 합리적이고 온건하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실제로도 안철수 교수의 이같은 결정은 여론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JTBC와 리얼미터가 안 교수의 출마 직후인 지난 9월 19일과 20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안 교수는 전일(38.8%)대비 6.0%p 상승한 44.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34.8%로 전일(39.0%)대비 4.2%p 감소했다.(전국 1,500명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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