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이념이라는 잉크로 쓰여진다
역사는 이념이라는 잉크로 쓰여진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9.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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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말이 있다. 옛 중국의 초(楚)나라 사람이 뱃머리에서 칼을 빠트리고는 칼을 되찾기 위해 뱃머리에 그 지점을 표시 해두었다는 이야기다. 어리석고 우둔한 자의 행동을 비웃는 고사성어다.

지금 야권이 제기하는 과거사 문제는 바로 이 각주구검에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시대의 강물을 타고 나아가는 배라는 한 체제에서 그 강에 빠트린 민주주의라는 칼을 찾으려면 그 시점의 강바닥(역사)을 뒤져야지 어떻게 지금의 배(체제)를 수색하겠다는 것일까. 그러한 생각은 뱃머리를 흔들어 차고 있던 칼을 뺏앗아 간 자는 강의 파도가 아니라 그 때 노젓던 사공이었다고 우기고 싶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역사적 평가는 무엇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 과거의 체제를 지금의 정치체제와 헌법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은 정당할까. 도도히 흐르는 역사라는 강물을 타고 나아가는 한 체제는 마치 그 역사의 강물에 뜬 배와 같다.

바람과 강물의 유속에 변화가 생기면 배는 때로 돛을 더 높이 올리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한다. 그런 배는 때때로 수리되고 엔진도 교체된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서다. 때로 항해의 규칙이 변경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은 이렇게 말했다.

“같은 바람을 받고서도 두 배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돛을 어떻게 바꾸어 다느냐에 달린 것이지 바람의 문제가 아니다.”

대처 수상의 이 성찰에서 우리는‘귀결주의’라고 불리는 자유주의 이념의 한 단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제도나 역사를‘결과로 평가하라’라는 메시지다.

배에 승선한 자들에게는 배가 안전하고 신속하게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지점으로 항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대한 불변의 항해규칙이란 없다.

다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항해술과 규칙을 신뢰할 뿐이다. 만일 폭풍우 속에서 선장이 이러한 항해술에서 벗어나 배를 운항하면 승선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논쟁은 배가 폭풍우를 뚫고 목적지에 올바로 나아가고 있다면 더 필요하지 않다. 논쟁이 필요하다면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가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념이 필요하다. 이념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은 시대논쟁

우리는 흔히 이념(理念)을‘편향된 관념’,즉 편견(bias)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이념을 넘어서’,‘이념에 휘둘리지 않는’과 같은 정치적 표현이 단골로 등장한다. 대개 중도를 표방하는 세력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기회주의적이다. 이념이란 세상에 대한 철학이자 해석이고 추구해야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념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비판적 인지(Critical cognition)능력 때문이다. 이를 성찰(省察)이라고 한다. 이 성찰의 결과, 플리톤은 우리가 삼각형이 둥근 원과 다르다는 걸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념이 없는 자는 세상에‘둥근 삼각형’의 모순을 알지 못한다.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이겠으나 그 ‘둥근 삼각형’을 찾으려 권력을 사용하게 되면 모두에게 비극이 온다. 우리가 올바른 이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념이 없다면 세상에 대한 비판과 성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주구검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이 등장한다. 민주주의라는 칼을 뺏어간 주체가 강물의 파도인지, 뱃사공의 의도였는지는 오로지 이념만이 판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념을 넘어서는 정치, 이념을 초월한 행정은 불가능하다.민주주의가 바로 이념이고 복지행정이 바로 이념이다. 정치와 행정 그 자체가 이념의 결과로 등장하는 것임에도 어떻게 이념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이념과 이념이 부딪히는 갈등이 싫어서 그러한‘이념 초월’의 프로파겐다를 표면적으로는 인정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호응하는 이념에 추종해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라는 파노라마가 전개된다.

민주주의라는 칼을 뺏어간 자가 뱃머리를 흔들었던 강물의 파도가 아니라 뱃사공이었다는 야권의 주장을 인정하면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마저 송두리째 내다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건국은 분단이고 그 분단은 이승만의 권력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5.16도 박정희의 권력욕이 빚어낸 헌정파괴에 지나지 않는다.

새누리당이 대한민국 현대사에 어떤 이념을 가지고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는가 하는 문제는 이번 대선에 중요한 판가름의 기준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5.16과와 10월유신, 인혁당 사건이 반헌법적, 반민주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비판적 성찰, 즉 이념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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