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무거워진 이유
<무한도전>이 무거워진 이유
  • 이원우
  • 승인 2012.10.0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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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이 ‘국가대표 예능 프로그램’이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6년 5월 <무(모)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이 시작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재석을 위시한 멤버들은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한 주 한 주 방송을 찍어갔다. 이 과정에서 김태호PD의 빛나는 아이디어들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며 조금씩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무한도전’이라는 팀(team)이 대상을 수상한 것은 ‘밑바닥부터 시작된 성공’에 대한 일말의 보상이었다. 이미 <무한도전>의 전 멤버와 김태호PD는 한국 예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인물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한국의 연예계에서 <무한도전>만큼은 언제나 한 발 앞서 방향을 제시하는 ‘예능 연구소’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무한도전>의 성공은 한국 예능의 두 가지 성공 코드 - ‘재미’와 ‘감동’을 모두 포섭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들은 ‘무한상사’와 같은 패러디 콩트를 통해 배꼽 잡는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돌연 레슬링 특집이나 조정 특집과 같은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는 모습을 노출시키며 눈물을 쏙 빼놓기도 했다.

국민들은 그들을 가족처럼 여겼고 그들 역시 시청자들에 대한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달력을 만들어 팔았을 때에도, 음원으로 수익이 발생했을 때에도,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도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성금을 기부했다. 유쾌하고 감동적인데 착하기까지 한, 사람으로 비유하면 ‘엄마 친구 아들’같은 훈훈한 프로그램이었다.

‘무한도전’에서 ‘무거운 도전’으로

그런데 2012년, ‘MBC 파업’이라는 함수를 통과하고 난 <무한도전>은 조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얼마 전 발생한 ‘슈퍼세븐 콘서트’ 취소 파동은 이중나선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는 무한도전의 갖가지 문제점들이 일시에 노정된 사건이었다.

슈퍼세븐 콘서트라 함은 무한도전의 일곱 멤버들(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노홍철, 하하, 정형돈, 길)이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획한 공연을 의미한다. 새삼스레 콘서트까지 하며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이유는 2012년 MBC 파업으로 인해 무한도전이 6개월 간 결방했기 때문이다.

이 6개월은 매우 중요하다. 의미 없는 재방송이 6개월간 반복되는 동안 <무한도전>은 MBC 파업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파업에 찬성하는 대중들이 김재철 사장의 퇴임을 주장하면서 구호처럼 되풀이했던 말 중 하나는 “무한도전 좀 보자!”였다.

김태호PD가 파업에 찬성하는 취지를 거듭 밝혔기 때문에 <무한도전>이 방송되느냐 마느냐가 곧 MBC 파업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잣대처럼 각인된 부분도 있었다. 또한 대중들은 ‘무한도전도 찬성하는데 파업하는 쪽이 맞는 것 아니겠느냐’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

본래 목요일이 촬영일이었던 무한도전 멤버들은 파업기간 중에도 습관적으로 모임을 지속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공연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멤버 중 유일하게 본업이 가수인 길(리쌍컴퍼니)이 공연을 기획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연은 취소되고 말았다. 시청자(팬)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었다.

반발의 첫 번째 이유는 공연 티켓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10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금액은 언제나 무료로 방송을 즐기던 대중들의 기대치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는 ‘공연시간이 <무한도전> 방송시간과 겹친다’는 두 번째 이유와 맞물려 대중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결국 공연을 기획한 길은 트위터에 장문의 글을 남기며 공연 취소를 알린 뒤 무한도전에서 하차하겠다고 밝혔다.

허나 길의 하차의사에 대해서 <무한도전>은 ‘녹화 취소’라는 초강수를 두며 하차 철회를 권유했다. ‘어떻게 웃으면서 녹화를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결국 길은 하차하겠다던 의사를 번복, 다시금 녹화에 참여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일련의 사건은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시련을 겪으며 멤버십이 더욱 돈독해졌다’는 정도로 정리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콘서트 취소 파동의 함의

하지만 이번 파동의 의미가 과연 거기까지일까. 파업이라는 사건을 거치면서 <무한도전>이 내포하는 의미가 본질적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MBC 파업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이 매우 강했다.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것도 아닌 ‘사장을 교체’할 때까지 정상 방송을 할 수 없다는 초유의 협상조건을 내건 파업이었던 것이다.

김태호PD가 이 파업에 동참의사를 밝힌 것은 MBC 노동자 측에 커다란 명분과 대중장악력을 준 셈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한도전>에 정치색을 가미하는 효과를 내고 말았다. 김재철 사장으로 대표되는 MB정권에 반대하고 ‘약자’의 편에서 ‘진보’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쪽이 어울린다는 하나의 고정관념을 형성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기대보다 비싼 티켓 가격을 내걸자 대중들이 거부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무한도전>은 ‘모두’의 것이어야 하는데 티켓 가격만 놓고 보면 ‘그들’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게 아닐까?

물론 여기에는 공연을 기획한 것이 길의 리쌍컴퍼니였다는 점도 주효했다. 만약 공연 기획과 티켓가격 책정을 유재석 측에서 주도했다면 사건의 향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허나 길은 <무한도전> 합류 4년차에 이르러서도 스스로를 ‘길메오(길+카메오의 합성어)’라 칭할 정도로 기존의 <무한도전> 팬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길을 제외한 6인 멤버를 ‘원조’라고 생각하는 <무한도전>의 골수팬들은 상대가 길이었기 때문에 더욱 가혹했던 건 아닐까?

‘슈퍼세븐 콘서트’의 티켓 값은 결코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니었다. 토요일 저녁의 TV속에서 푸근하고 모자라고 사람 좋은 이미지를 내뿜고 있을 뿐 사실은 일곱 명 모두가 톱스타인 것이다. 아무리 직업가수가 아니라 해도 최고의 스타들 일곱이 모여서 하는 공연의 티켓 값이 무턱대고 저렴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무한도전>은 으레 모두의 것이어야 하고,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하고, 무료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건 결국 <무한도전>이 스스로 구축해 놓은 ‘착하고 낮은’ 이미지에 유폐되어버렸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언제나 올바른(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는) 말만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MBC가 공영방송이라면 <무한도전>은 ‘공영 버라이어티’이고 공공재(public goods)인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가벼운 마음으로 웃음을 만들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함정’이 될 수 있다. 웃음이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가벼운 마음에서 오갈 때 가장 순수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저 웃길 줄만 알았던 초기의 <무한도전>이 의미를 담아냈을 때 사람들은 감탄했다. 하지만 그 패턴이 반복되고 확장돼 공영성이 가미되면 ‘기부’도 ‘봉사’도 으레 하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 진정성의 감동은 소멸되고 만다. 이제 <무한도전>은 그 상태로 진입했다.

<무한도전>은 겉으로만 가벼워 보일 뿐 스스로 내포하는 의미가 너무 많아져버렸다. 당시로서는 옳은 길, 대중들이 원하는 길이라 믿었던 ‘파업 동참’의 선택이 무한도전에게 남긴 의미는 ‘무거움’이 아닐까. 이 무거움을 ‘즐거움’으로 완벽하게 바꿔내는 연금술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무한도전>은 <무한고전>이 돼 버릴지도 모른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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