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선언’의 실상과 허상
‘10·4선언’의 실상과 허상
  • 미래한국
  • 승인 2012.10.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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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10월 3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평양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합의 성과를 담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10·4선언’이다.

모두 8개항으로 구성된 선언은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협력과 불가침 의무 준수, 종전선언을 위한 당사국회의 개최, 경제협력 확대 발전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경의선(문산-개성) 화물철도 개통과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그리고 11월 중 서울에서 남북총리회담 개최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선언문은 비교적 폭넓고 구체적이었다. 하지만 경제협력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10·4선언은 처음부터 북측 요구사항만 대부분 수용됐지 우리 측 요구는 반영된 것이 별로 없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더구나 너무 많은 사항에 대해 포괄적인 합의가 이뤄짐으로써 이들 내용이 과연 다음 정부에서 제대로 이행될 수 있는 당위성을 갖는지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선언 내용 중 ‘서해평화협력지대’만 해도 국민들이 걱정하는 서해북방한계선(NLL)의 재조정과 연계돼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낳았다.

북한 요구사항만 대부분 수용

가장 문제시된 것은 선언의 핵심조항인 ‘제4항’(종전선언을 위한 당사국회의)이었다. 훗날 노 전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별 특별한 의미를 몰랐다”고 술회했을 때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선언문 제4항이 적시한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3, 4자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해 그 의미를 모른 채 북한 측이 제의한 문안 그대로 합의·서명했다고 털어놓았다.

“문안을 다듬는 데 보니까 3자, 4자, 이렇게 되어 있어 물어볼까 하다가 ‘이게 어느 쪽에서 나온 문안이냐’고 물었더니 북쪽에서 나온 문안이라고 했다.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보고 넘겼다…그래서 3자, 4자라는 것은 사실 나도 별 뚜렷한 의미를 모르고 있다”고 노 전 대통령은 말했다.

3자든 4자든 한반도 지역에 그들 정상을 모이게 하는, 그래서 국가의 장래가 걸린 중차대한 외교 문제와 관련해 선언문 합의 당사자인 최고 통치권자가 그 의미와 파장도 치밀하게 재지 않고 서명했다는 점에서 10·4선언은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일부 외신은 10·4선언의 의미를 낮게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남한이 정상회담을 위해 수천만 달러의 비용을 들였지만 남북 관계에 별다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3일 간에 걸친 정상회담에서 남북한 간 긴장 관계를 변화시킬 별다른 내용이 없었고 남한 측도 뚜렷한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남북 공동 경제 프로젝트의 경우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 프로젝트가 북한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가르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다음해 2월 끝나는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이 이런 경제적 제안들을 그대로 따를지는 불확실하다고 예상했다.

신문은 정곡을 찔렀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불과 석 달 남겨두고 평양을 방문했다. 누가 봐도 시기적으로 정상회담을 해서는 안 될 때였다. 그런 시점에서 무리하게 정상회담을 추진해 허겁지겁 생산해낸 것이 10·4선언이었다. 그 점에서 태생적으로 10·4선언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한마디로 10·4선언은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 보따리’였다. 선언을 이행하는 데 소요되는 재원을 통일부는 14조 원이라고 했지만 이는 정확한 액수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50조 원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행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10·4선언은 ‘부도수표’라는 말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도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전임자가 발행한 수표는 후임자가 결제해야 한다. 그런데 후임자가 결제를 안 했기 때문에 부도수표가 됐다.” 그러나 사실은 후임자가 결제를 안 해서 부도수표가 된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부도수표를 발행했기 때문에 결제가 안 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핵포기하면 대북지원"

2008년 2월 1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동아일보 등 3개 신문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10·4선언에서 합의된 걸 포함해 전 정권이 북한과 합의한 것을 한번 검토해봐야겠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지금 할 수 없고 나중에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아예 해선 안 될 것이 무엇인지를 나눠서 처리해야겠다”고 했다.

그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이 대북 ‘상생공영정책’으로, 이 정책은 ‘비핵개방 3000’ 구상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의 핵 폐기 진전에 따라 우리나라가 북한의 개방을 돕고, 단계적으로 3000달러 수준의 국민소득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이다.

이 구상은 북한의 핵무기 완전 포기가 최종 목표지만, 그 이전에도 북한에 경제협력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대화에 나오면 당장 쌀과 비료도 줄 참이다. 현 정부는 북한이 핵 포기의 마지막 목표에 동의하는 시점을 본격적인 경협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개방이란 것도 현 단계에선 3통, 즉 통신·통행·통관을 조금씩 하자는 정도다. 그러면 주민 1인당 연평균 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도록 돕고, 국제사회의 다각적 지원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도만 있다면 '비핵개방 3000'은 매우 건설적인 대북정책이다.

이는 과거 정권이 지향한 햇볕정책의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구상은 맹목적인 햇볕정책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그 점에서 햇볕정책이 ‘이상적인 포용’이라면 비핵개방 3000 구상은 ‘현실적인 실용’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며 자주통일시대의 흐름을 가로 막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남북관계를 파탄국면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지금은 지난날 대북 퍼주기로 날을 샜던 좌파정권 재창출을 노리며 우리의 대선 개입에 혈안이 되고 있다.

그동안 남과 북은 7·4공동성명을 비롯해서 수많은 선언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제대로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다.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문건으로 말하자면 ‘남북기본합의서’를 덮을 게 없다.

양측 정부의 총리들이 오랜 기간 회담을 거듭해서 만들어내고 남측 국회와 북측 최고인민회의의 동의를 거쳐 남북 양측 최고 지도자의 비준까지 마친 문서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만 지키면 남북한 간에는 그 어떤 선언도 필요 없다. 그런데도 북한은 이는 외면한 채 자기 측에 유리한 6·15선언과 10·4선언만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북한의 이중성에 우리는 진저리가 난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나서야 한다.(미래한국) 
 

김상백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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