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식 정치의 함정
‘좋아요’식 정치의 함정
  • 이원우
  • 승인 2012.10.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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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겐 원칙주의자가 필요하다

마크 주커버그의 가장 큰 혁신은 페이스북일까? 어떤 네트워크의 가치는 그 사용자의 숫자에 비례한다는 메칼프의 법칙에 의거, 페이스북이 점하고 있는 세계적 영향력은 막대한 게 맞지만 ‘소셜네트워크’ 그 자체를 주커버그가 발명한 것은 아니다.

주커버그의 진짜 혁신은 ‘좋아요’에 있지 않았나 싶다.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정보의 바다에서 ‘좋아요’는 우리의 입장을 뒤탈 없이 처리해 주는 마법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좋아요’식 의사소통의 핵심은 적당한 거리감에 있다. ‘좋다’고 했지 ‘옳다’고는 하지 않았다. ‘좋다’고 했지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좋아요’라고 하는 단순하고 명료한 의사표현 속에 복잡한 속마음을 생략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함은 독이 될 수도 있는 바, 우리는 ‘좋아요’의 함정에 대해서도 고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국가 구성원들의 삶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는 정치가 ‘좋아요’식 의사소통과 야합했을 경우의 파괴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최근 대선 후보들의 인사(人事)를 보면 ‘좋아요’식 패착의 결정판이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시인 안도현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을 위시하여 그간 뚜렷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인기 문인(文人)들까지 대거 기용되어 이미지 정치의 금자탑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에는 출현 자체가 하나의 ‘좋아요’ 현상이다. 본인 스스로 “국민에 의해서 추대되었다”고 말한 시점에서 그는 이미 ‘좋아요’에 의해 호출되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막대한 부를 쌓아온 그가 장하성을 비롯한 ‘무늬만 자본주의자’들과 연합했다는 사실은 별책부록에 지나지 않으며, 정식출마 전에 ‘진실의 친구들’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부터 노출했다는 점은 조크에 불과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가장 오랫동안 정치권에 머물렀던 후보이자 스스로 보수주의 세력의 아이콘임을 자처하는 박근혜 후보마저 이 ‘좋아요’식 정치에 포섭되었다는 사실이다. 언뜻 봐도 융합이 불가능해 보이는 안대희, 한광옥 등의 인물을 공존시키려다 캠프 전체가 표류하고 있다. 누구를 찍든 ‘좋아요’식의 5년이 시작되는 거라면 투표용지에 찍히는 심볼은 페이스북의 엄지손가락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연스런 흐름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음소거 된 것과 궤를 같이 해서 세계경제는 거대한 불황의 흐름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중국 경제마저도 성장률 8%의 하한선 밑으로 주저앉을 전망이고 한국은 3%도 감사한 상황이다.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52.9%에 프랑스는 75%의 세율을 선언했다. 깊은 생각 없이 눈앞의 ‘좋아요’에만 몰두한 결과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볼>처럼 ‘좋아요’ 몇 개를 모아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좋아요’에는 아무런 힘도 없다. 그저 적당한 거리 너머에 있는 막연한 느낌의 발산에 불과한 것이다. 어제 A라는 정보를 좋아했던 대중들은 오늘 완전히 반대되는 B라는 견해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좋아요’를 누른다. 결국엔 허망한 숫자놀음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요’식 정치를 초월할 수 있는 리더다. 국가에 압류된 개인의 자유를 찾아올 정치인. 엄지가 아니라 중지를 세우는 대중들 앞에서도 홀연히 자신의 원칙을 개진할 수 있는 원칙주의자.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너나 할 것 없이 ‘좋아요’에 몰두하는 대중들의 엄지손가락 밑에 짓눌려 어느새 사라져버린 캐릭터들이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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