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에 보내는 ‘재미 있는’ 이별 통보
전교조에 보내는 ‘재미 있는’ 이별 통보
  • 이원우
  • 승인 2012.10.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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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著 <꾿빠이, 전교조>
 

 

이른바 보수진영의 콘텐츠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알고 보면 보수주의‧자유주의 세계관이야말로 인생의 역동성을 그대로 투영하는 재미 있는 사상체계인데도 그렇다.

보수주의적 지식인들의 저작은 ‘교장선생님 스타일’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한다. 반복된 패턴은 결국 대중들에게 ‘보수=재미없음’의 공식을 각인시키고 말았다.

바로 이 점에서 보수의 아이러니인 ‘시장 짝사랑 현상’이 발생한다.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자유시장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자랑해 마땅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치욕과 수치의 역사로 바라보는 작가, 영화인, 정치인들이 시장의 대세를 주도한 지 오래다. 자유시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으면서도 시장을 모욕하고 매도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발언권이 집중되는 모순. 이것은 결국 균형 잡힌 사상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에 비해 ‘덜 재미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보수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재미 있게 좀 합시다’라고 말해봐야 효용은 크지 않다. 재미라는 것은 본인이 원한다고 함양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들 재미 있고 싶지 않겠는가? 뜻대로 되지 않을 따름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누군가 ‘재미 있는 자유주의 저작’을 들고 나타났을 때 반가움은 배가된다. 이를 테면 남정욱의 경우가 그렇다.

소설가 남정욱의 비(非)소설 <꾿빠이, 전교조>의 미덕은 ‘재미’의 측면에서 가장 환하게 빛을 발한다. 250페이지가 조금 못 되는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어느 페이지 하나 예사롭지 않게 넘어간다. 한 장 한 장 재미와 통찰력이 빼곡하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문장은 경묘하고 어법은 유연하다. 얼마 만에 만나보는 ‘재미 있고 유익한 책’인가?

책은 총 9개의 챕터로 구성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실체와 역사, 코미디 같은 활동사례와 왜곡의 궤적들을 치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중간 중간 곁들여진 ‘명랑소설’은 비아냥거릴지언정 본질을 놓치지 않는 남정욱의 ‘소설가 본능’이 빛을 발해 가독성을 높인다.

전교조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곽노현의 유죄 확정에 안도하는 사람들의 내심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하에 사이비 종교의 교리보다도 허접한 사상체계를 20년 넘게 주입해 온 세력의 실체와 한계를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라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론을 접해보기 위함이다. 의견을 달리 하는 독자조차도 작가의 재미 있는 서술방식은 인정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의견의 차이가 있어도 뭔가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면 그때부터 마음은 움직이게 마련이다.

백 마디 말로 해도 되지 않는 설득이 한바탕 유쾌한 웃음으로 시작된다면 해볼 만한 게임이 아닐는지. <꾿빠이, 전교조>라는 이름의 재미 있는 책을 유쾌하게 추천할 수 있는 이유다. (미래한국)

* 20자평: 나타났다! ‘재미 있는 자유주의’가 여기에 나타났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①조전혁 홍진표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②한기홍 <진보의 그늘> ③시오노 나나미 <침묵하는 소수>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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