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을 병들게 하는 두 가지 루머
한국 교육을 병들게 하는 두 가지 루머
  • 이원우
  • 승인 2012.10.1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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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퇴장시키고 '자유'를 입장시키는 리더가 필요해
 

심각한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자유주의자의 가슴은 조여 온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어떻게 해야’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안 해야’의 문제라고 보는 까닭이다.

한국의 교육이 고질적인 병폐 속에 갇혀 있는 원인으로 두 가지의 루머를 꼽고 싶다. 첫 번째는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라는 허상이다.

정치인들은 4년 후 자기가 재선될 수 있을지, 언젠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감조차 잡지 못하면서 교육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잘도 외쳐댄다. 자신이야말로 그 원대한 계획을 완성시킬 수 있는 적임자임을 의심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허나 ‘계획’이란 단어의 뉘앙스부터가 묘하게 국가주의적이다. 이 말은 그 땅에서 태어나는 사람들 모두를 ‘나랏님’의 소유물로 생각했던 시대까지만 쓰고 버렸어야 할 표현이 아닐까? 개인의 계획을 국가가 세워주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공동체는 궤멸의 길을 걷는다.

교육은 국가계획의 일부라기보다는 개인(혹은 부모)이 선택하는 서비스에 가깝다. 드넓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흡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색깔을 잃지 않은 채 자유롭게 선택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것뿐이다. 국가의 계획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100년 치의 심모원려를 담아 국가가 세심하게 조율한 교육정책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보라. 다양한 입시전형을 통해 폭넓은 기회를 주겠다는 시도는 2012년 대입 수시전형의 가짓수를 3,189개까지 늘려놓았다. 하나하나의 전형들이 가지고 있는 효과와 부작용이 전부 드러나려면 100년쯤 걸릴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의 백년지대계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 교육의 두 번째 루머는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라는 명제다. ‘학생인권조례’는 바로 이 루머의 총집결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집회와 두발과 핸드폰 소지와 체벌에 대한 문제에서 ‘권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시점부터 학생은 태양이요 학교와 교사들은 그 주변을 공전하는 먼지에 불과할 뿐이다.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 아니라 ‘주인공’일 뿐이라는 사실, 주인과 주인공의 차이는 작지만 본질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

여야를 막론한 모든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건 등록금 문제는 위의 두 가지 루머가 뒤엉킨 한바탕 소동극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치인으로서는 그동안 해 놓은 말이 있으니 고등학생 10명 중 9명가량이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등록금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터다.

학생들은 지구가 스스로를 기준으로 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목소리를 높여봄직도 하다. “내 주세요”와 “내 줄게요”의 현란한 이중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기에서 퀴즈. 두 집단의 공통점은 뭘까? ‘아무도 직접 결제를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중요한 것

이미 정치적 아이콘이 되어버렸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유죄 확정을 놓고 보수와 진보를 가로질러 환호와 탄식이 한바탕 대기를 메웠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자유주의자의 심장은 조여 온다.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질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보수교육감이 당선되느냐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느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당선되든 개인주의적 자유의 가치를 각성하고 한국 교육의 두 가지 루머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결과는 똑같다. 교육이 정치문제화 되어 끊임없는 갈등을 양산하는 악순환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백년지대계의 루머를 ‘개인지대계(個人之大計)’로 바꾸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주의적으로 수렴하고 있는 현재의 교육현실을 자유주의적으로 바꿔야 한다. 쉽게 말해 ‘교육’에서 ‘국가’를 털어내야 한다.

학교를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는 자유롭게 자기만의 학교를 설립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생들과 부모들에게도 각자 원하는 학교를 자유롭게 찾아갈 ‘권리’를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평생을 짝사랑하던 사람과 결혼하고 평생 꿈꾸던 직장에 입사해도 나름대로의 불만은 갖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예외일 리 없다. 아무리 가고 싶었던 학교라도 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각자 원하는 더 큰 목표가 있다면 잠시 감수할 수도 있다고 각오를 다지는, 거기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공부는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 아닌 ‘주인공’에 불과하다는 것. 지구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돌지 않기에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불만이 있더라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이 한국 사회의 ‘상식’으로 정착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멘토 열풍 따위는 이 사회에 얼씬도 못할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게 묻는다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혹은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고 싶은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은 한국의 교육에서 국가의 역할을 줄여나가는 이 작업을 해 나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허장성세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길만을 강요하고 있는 현재의 제도를 휴지통에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영광은 적고 노력은 극심한 이 일을 시작해 루머를 진실로 바로잡는 데 기여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시절 “차라리 교육부가 없었더라면…”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개인 이명박’의 관점은 상당히 자유주의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기대를 걸게도 만들었던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의 집권 후 5년이 흘러 한국의 교육 분야가 처해 있는 좌표는 보시는 대로다. 별달리 자유로워진 부분은 없다. 리더 하나 바뀌었다고 단숨에 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서울시 교육감 자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곽노현이 그랬듯 보수와 진보가 한바탕 땅따먹기를 하는 와중에 세력지형을 확인하는 진영논리의 아이콘 정도로 교육감직을 악용한다면 최악의 결말이다. 지금은 보수-진보의 이분법이 아니라 입장-퇴장의 논리 구조로 교육 문제를 바라볼 때다. 국가를 퇴장시키고 개인을 입장시키는, 정치를 퇴장시키고 자유를 입장시키는 바로 그런 교육 리더가 한국에 필요하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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