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中,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10.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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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지 법인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

지난 9월 14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국상회 회의실에 13명의 기업인들이 모였다. SK·CJ·현대자동차·롯데백화점·STX·LG화학·대우 등... 참석한 기업인들은 모두 중국 현지 법인장들이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 지나자 한국에서 온 관리 한 사람이 들어섰다. 모두 자리에 일어나 그와 악수를 나눴다. 한국의 관리는 다름 아닌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박 장관은 중국 현지 진출 기업인들로부터 건의 사항을 듣기 위해 이날 회의에 온 것이었다.

회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돌았다고 전해진다. 참석한 한 기업인이 “중국 경제의 활력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장관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정권 교체기를 맞아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고 답했다.

다른 기업인은 이 화두에 "정권 교체 이후 중국 정부의 적극적 부양 정책이 예상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다른 기업인이 중국 경제에 남아 있는 불공정성과 불투명성, 그리고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중국 현지 법인대표들의 모임은 겉으로는 일상적인 간담회의 모습이었지만 사실 앞으로 전개될 중국경제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우리 기업과 정부간에 정보 교환과 긴밀한 유대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중국이 글로벌 경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2013년부터 약 30년간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의 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이날 박재완 장관은 "세계경제에서 비중이 급속이 증가하고 있는 중국의 내수시장 선점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이 ‘제2 내수시장’이다. 국내에 쏟아온 힘을 중국에 집중하자."

허창수 GS 회장은 지난 달 24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에 위치한 GS칼텍스 복합수지 제2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렇게 강조했다. 한마디로 그룹의 모든 역량을 중국 내수시장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였다. 허 회장의 방중은 GS의 미래 성장동력을 중국에서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담겨 있었다.

같은 날 SK텔레콤은 중국 의료기기 전문업체인 티엔롱의 지분 49%를 인수하며 현지 헬스케어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중국의 소득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의료산업도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내수 성장으로 한국기업 빨아들여

중국 내수시장 진출에 가장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유통업체들이다. 롯데쇼핑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홈쇼핑에 이어 이번엔 슈퍼마켓(SSM) 부문까지 중국에 진출했다.

롯데슈퍼는 지난 달 27일 중국 베이징에 첫 SSM 해외 지점을 열었다. 롯데 관계자는 "중국 슈퍼마켓산업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0.1%에 이른다. 핵가족화, 도시화로 근거리 소량구매를 원하는 고객이 점점 더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슈퍼는 2014년까지 100개점을 연다는 목표를 세웠다.

식품사업부문 역시 중국 내수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CJ그룹의 경우 식자재, 베이커리 뚜레주르, 패밀리레스토랑 빕스 등 내수분야가 90%를 차지하고 있다. SPC의 파리바게뜨가 최근 중국에 100호점을 열었고, 올해 9,6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지방도시 증산층 인구를 2010년 8,300만명에서 10년 후인 2020년에는 약 2억8,800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로서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시장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세계의 시장’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즉 내수시장을 키워 경제성장과 일자리, 소득격차 등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전략 하에 중국 국무원은 '국내무역 활성화를 위한 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을 발표했다. 향후 연평균 15%씩 소비를 증가시켜 2015년에는 전체 소비재 판매액 32조 위안(한화 약 5703조 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생산재 판매액도 연 평균 16%씩 늘려 2015년 76조 위안(약 1경3545조 원)까지 확대시키기로 했다. 또 도·소매업과 숙박·요식업 생산액도 연간 11%씩 증가시켜 2015년까지 7조 위안(약 1247조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밖에 2015년까지 중국 국내무역 종사자 인구 수를 연간 500만 명 이상씩 늘려 2015년까지 1억3000만 명에 달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중국은 온라인 소비를 적극 촉진해 전자상거래 규모를 연 평균 30% 이상씩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베이징 현지에서 우리 기업들을 만났던 데에는 사실 좀 더 깊은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니라 우리의 대중국 수출이 중국 내수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전히 중국을 해외수출의 중간기지로 보고 원료나 중간재 수출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국 수출에 있어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비재 시장 공략 없이는 대중 수출 감소 못막아

한국은행이 지난 달 발간한 BOK 이슈노트 '중국경제 성장정책 변화에 따른 우리 대중수출의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 증가율이 중국의 총수입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인은 우리의 대중수출 전략이 지나치게 가공무역 중심으로 편중돼 있기 때문.

보고서는 ‘최근 중국은 양적 확대에서 질적 개선으로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을 도모하고 수출과 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성장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소비를 중시하고 있다’며 ‘이러한 소비중시 질적 성장정책은 중국의 교역에도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와 가공단계별로는 원자재 및 소비재의 수입비중이, 용도별로는 수출용 가공무역보다는 내수용 일반무역 비중이 확대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중간재 및 자본재 중심의 대중 수출을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소비재품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대중 수출에 있어 그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의 국가별 수입액에서 우리나라로부터 중국의 수입액 증가율은 연평균 14.0%. 브라질(33.6%), 호주(31.7%), 독일(20.7%)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 중반 이후 중국 수입구조 변화가 우리 수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며 "대중 무역구조가 우리와 유사한 일본과 대만의 대중 수출 증가율 역시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수입 증가율을 하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 중국 내수시장을 놓고 한국, 일본, 대만 간에 치열한 경쟁의 막이 오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라는 내수 중심 성장모델을 채택했던 것일까.

키움증권의 중국 내수전략과 관련된 보고서는 그 배경으로 최근 글로벌 수요 침체로 인한 중국의 수출 둔화를 지목한다. 여기에 내수시장마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중국 경제 경착륙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의 수요 감소로 올해 8월 중국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내수 침체로 8월 중국 수입액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2.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수출입 증가율이 중국 정부의 목표치인 10%에 훨씬 못미쳤던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또 중국 국가통계국 9일 발표를 인용해 지난 8월 중국 소매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2% 증가하는 데 그쳤음을 지적한다. 이는 지난 7월의 13.1%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난해까지 17~18%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둔화된 수준이라는 것. 8월 고정자산투자액 증가율도 지난 7월의 20.4%보다 0.2%p 감소한 20.2%에 머물렀던 것으로 분석된다.

성장과 분배, 도시화 전략 성공할까?

이러한 중국 경제의 침체는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18차 전당대회에서 상당한 이슈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등 4세대 지도부는 2012년을 마지막으로 물라나고 시진핑의 체제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하지만 최근 벌어진 중국 지도부간의 권력투쟁은 권력이양 결과를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기업들의 불안은 이러한 점에도 놓여 있는 것이다.

시진핑, 리커창 등의 5세대 지도부는 기존의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개혁과 개방 가속화, 성장위주의 정책 노선을 동시에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과 개방의 속도는 오히려 4세대 지도부보다 클 것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그 성장의 방법론이 달라짐에 따라 정책노선도 바뀔 것으로 보는데 이 가운데는 소위 ‘동에서 서로’라는 아젠다가 있다. 즉 이제까지 발전을 누려온 중국의 동부지역의 성장모멘텀을 내륙지방과 서쪽으로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플랜의 중심에는 ‘도시화 성장’이라는 실행 전략이 자리한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팀장은 이러한 중국의 도시화 전략의 이유로 빠른 도시화를 통한 내수확대를 지적한다. 내수가 주도하는 경제 모델로의 전환은 도시화 과정과 연결해 볼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 수치에 따르면 2011년 말 중국 총인구 13억4735만 명 중, 도시 인구가 6억9079만 명, 농촌 인구는 6억5656만 명으로 집계된다. 도시 인구가 최초로 농촌 인구를 넘어서면서 농촌을 떠나온 저임금 이주 노동자를 일컫는 ‘농민공’은 도시화 과정의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들은 도시에 살지만 호구(호적)이 없어 도시 주민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도시화 정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도시 인구가 많아지면 주민 소득 증가에 따라 소비가 늘고 저임금의 노동력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60~70년대식 불균형 성장 발전모델을 벤치마킹하는 중국 정부는 이를 ‘과학적 발전 법칙’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이러한 내수성장 모델을 통해 소득 재분배와 실업,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당연히 내수 성장 모델은 인플레와 자산가격의 거품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보이는 손’이라는 정부개입의 경제정책은 불가피하게 관치경제를 강화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경제의 혈류로 비유되는 금융정책에 있어 중국정부의 개혁은 대단히 느리며 보수적이다. 국유기업의 민영화도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중국 경제의 부패와 비효율에 대한 처방이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아니라 정부의 중앙계획 경제로 극복되고 성장할 수 있다면 아마도 경제학의 교과서는 중국판 보이는 손 경제가 스탠다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은 여전하다. 그러한 견해에서 중국 경제의 미래를 보고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현지화 전략에 올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 이익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이를 국내 기업들이 마다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에 찾아오는 글로벌 경제 불황의 폭과 기간은 어느 정도가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여전히 불투명한 중국경제, 높아가는 의존도

이러한 중국경제의 세계 시장화전략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그널을 보내는 부분은 바로 중국이 신성장 동력으로 꼽는 7대 산업이 우리의 미래성장 동력과 상당 부분 겹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머지않은 시간 안에 중국과 우리가 미래 시장을 놓고 경쟁관계에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위완화 경제블록은 신중화경제권이라는 또 다른 시장을 통해 한미 FTA를 실행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궁극적 변수로 등장할 조짐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먼저 중국의 금융정책을 면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남부 광둥성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창장 삼각주기업들이 홍콩과 마카오 지역 기업과의 무역에서 위안화로 결제하는 것을 허용한 바 있다.

이 정책은 동남아국가연합 10개 나라도 원할 경우 중국 남부 윈난성과 광시 장족자치구와 무역 결제수단으로 위안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확대됐고 국제무역에서 중국 위안화 결제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2조 위안에서 2014년 10조 위안(약 1800조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HSBC은행은 전망하고 있다.

그럴 경우 중국의 전체 무역 중 위안화 결제 비중은 2014년에 30%를 넘어서고, 2015년에는 중국과 신흥국 간 위안화 무역결제 비중이 절반에 달할 전망이라는 것. 문제는 이렇듯 위안화 결제 비중이 높아지면서 한국경제가 중국에 빠른 속도로 의존도가 심화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여전히 공산주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중국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지하는 우리나라 간에 국제정치의 현장과 남북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도 예상된다. 혼돈이 깊어가는 시대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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