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사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인터뷰] “의사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10.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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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

의사협회가 최근 정부와 갈등이 큰 것 같습니다. 근본 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미국의 10분의 1, 일본의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국민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원가의 74%라는 의료수가를 개선할 의지가 없어 의사들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과잉진료, 3분 진료는 모두 비현실적인 의료수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의료수가가 원가의 74%라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는 수치입니까?

의료수가 적정여부를 판단하는 공적기관 심사평가원이 2006년에 조사해서 발표한 자료니 그렇게 봐야 합니다. 이 적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 그렇다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게 적자 의료비로 어떻게 의료체계가 유지된다는 것이죠?

그게 핵심입니다. 정부는 적자 의료수가로 인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비급여, 즉 비보험 항목의 진료들을 눈감고 있다가 과잉진료라는 여론이 생기면 그때마다 시범 케이스로 의사들을 처벌합니다. 다시 말해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원가 이하의 의료수가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 의사들이 의료비를 과다청구해서 문제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다수 언론에서 의료기관의 과다청구로 환자들에게 환불된 진료비가 3년간 156억이며 전체 민원건수의 43%라고 했습니다. 의료비 청구의 43%가 과다청구라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의료비 과다청구는 전체 의료비의 0.008% 수준입니다. 그 내용도 허위진료 등이 아니라 대부분 의학적 필요에 의해 불가피하게 보험비 기준을 초과하게 된 사례들입니다. 의사들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쉽게 타락하지 못합니다.

- 이해합니다. 그러면 최근 건강보험공단과 2013년 수가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의료수가의 현실화에 대한 견해차이가 컸습니다. 그런데 건보에서 갑자기 의료비 총액계약제와 약의 처방을 제품이 아니라 성분명으로 하자는 안을 부대조건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의료비 총액계약제란 1년간 건보재정에서 지급되는 의료비의 총액 한도를 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료 서비스 이용의 증가율이 고려돼야 하고 요양기관 같은 곳의 의료도 포함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건보공단은 이를 무시했어요. 더구나 약의 성분비 처방은 의사가 약처방에 제품명을 쓰지 말고 성분을 적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약국에서 약사들이 알아서 약을 지급한다는 것이죠.

- 약 제품이 아니라 성분명 처방이 왜 문제입니까?

약의 성분 처방은 건보재정에서 오리지널약이 아닌 카피약을 공급함에 따른 보험비 지급 감소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죠.

우리나라는 오리지널약과 카피약의 가격차가 크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느 환자가 카피약을 원하겠습니까. 모두 오리지널약을 달라고 할 것이고 오히려 건보재정은 악화될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 그래서 결렬됐습니까?

의사협회에서 좀 더 현실적인 타협안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건보는 총액계약제와 성분명 처방을 오히려 철회해 버렸습니다. 결국 일방적으로 낮은 의료수가를 관철하기 위한 카드였을 뿐이에요. 한마디로 비현실적인 자신들의 가격체계를 받아들이라는 강요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최근 헌법소원도 낸 것으로 압니다. 어떤 사안입니까?

2002년에 냈던‘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신규 병원들이 헌법소원 주체가 돼 다시 내는 것입니다.‘건강보험 당연지정제’란 법률의 규정에 의해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의료기관 등은 무조건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행하는 기관이 되도록 지정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생각해 보죠. 왜 의사는 자기 돈을 들여 자기가 병원을 개원하고는 원가에 못미치는 의료보험 가맹점이 강제로 돼야 합니까? 의사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

그래서 당시 협회는 이를 의사들의 자유권을 침해한다고 봐서 헌법소원을 냈지만 각하됐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협회의 취지를 인정하는 반대의견이 헌법재판관 두 명에게 있었습니다.

아울러 헌재는 판결에서 병원의 강제 가입을 합헌으로 하되 정부는 의료수가제에 차별을 둬 건전한 의료체계의 유지와 발전에 힘써야 한다는 주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10년째 그러한 주문을 정부는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경종의 차원에서 다시 헌법소원을 내는 것입니다.

의사들과 동네병원은 절박한 위기에 있다

- 우리 의료시스템에 이렇게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선 동네병원, 즉 1차의료의 붕괴를 복구해야 합니다. 1차의료가 무너지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의료공급의 효율성도 담보할 수가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은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생활물가지수도 그에 따라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의료수가만 제자리 걸음인 상황입니다. 통계를 잠시 보겠습니다. 최근 5년간 GDP는 19.9%, 생활물가는 18.1%가 증가한 반면, 동네병원 즉 1차의료기관인 의원급 병원의 의료수가는 12.9% 증가에 그쳤습니다.

여기에 의료수가 마저 원가에 못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네병원들이 버틸 수 없는 것이고 이러한 1차의료기관이 붕괴되면 우리 의료시스템과 의료보험 체계가 함께 붕괴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왜 모두 이런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현 정부와 여당은 의사들이 모두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사진/미래한국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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