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DJ에게 배워라
박근혜는 DJ에게 배워라
  • 미래한국
  • 승인 2012.10.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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屈身得天下- 몸을 낮추어 세상을 얻다

 

올 봄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1992년 대선에서 YS에게 맞섰다가 민자당을 뛰쳐나온 그는 결국 DJ진영에 투신했고, 후일 국정원장을 지냈다.

그는 1996년 5월부터 ‘동북아연구모임’이라는 위장명칭 아래 DJ대권 프로젝트팀을 가동했다. 나중에 DJ정권에서 국정원 기조실장, 정무수석을 지낸 이강래씨, 총무비서관을 지낸 박금옥씨, DJ의 장남인 김홍일씨의 처남 윤흥렬씨 등 신진기예들이 그를 보좌했다.

당시 윤흥렬씨가 이끌던 여론조사팀 ‘밝은 세상’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선 후보로서의 DJ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은 17%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PI(President Identity)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통해 DJ의 약점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에 주력했다.

그해 8월15~16일 DJ측근들은 제주도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워크숍에 앞서 이강래씨는 보고서 마지막에 DJ가 꼭 고쳐야 할 10가지를 적시(摘示)했다. 전라도 억양을 고치라, 어디 나갈 때는 동교동 가신(家臣)그룹 대신 소수(少數)의 젊은 사람들이 수행하도록 하라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종찬씨는 말했다. “총재에게 10가지를 고치라고 하면 하나도 못 고칠 것”이라면서 “그러니 딱 두 가지만 고치라고 하자”고 말했다. 그 두 가지는 당내(黨內)에서 DJ를 대신할 대행(代行)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DJ 스케줄 관리권한을 아래로 넘기라는 것이었다.

워크숍을 시작하면서 이종찬씨는 미리 DJ에게 “비위에 거슬리더라도 참고 들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워크숍은 정말 DJ를 철저하게 발가벗기는 것이었다. 1971년 대선 도전 이래 30년 가까이 우상(偶像)처럼 떠받들어지기만 했던 DJ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DJ가 붉으락푸르락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DJ는 꾹 참고 경청했다. 브리핑 말미에 가서 이종찬씨는 DJ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화감독이 배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그가 배우보다 노련하거나 연기를 잘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만들려면 영화감독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배우는 감독이 울라면 울고 웃으라면 웃어야 합니다.

배우가 감독이 잘못이라면서 따라오지 않고 감독이 할 일까지 자기가 하려고 들면 그 영화는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영화감독이고, 총재님은 배우입니다.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해 주셔야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총재님이 대선에 세 번이나 실패한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걸 총재님이 다 하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선거운동이랄 것도 없이 따라다니기만 한 것입니다. 그럴 거면 선거운동이나 계획이 왜 필요합니까? 그때그때 그냥 상황에 맞게 처리하면 되지…”

DJ는 따가운 지적이 이어지자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DJ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뭐든지 얘기하세요. 따르겠습니다.” 이종찬씨는 이강래씨와 얘기했던 ‘DJ가 꼭 고쳐야 할 두 가지’에 대해 말했다.

“총재님께서는 두 가지를 꼭 고쳐야 합니다. 첫째, 지금은 총재가 10만원 짜리 지출까지 직접 결재를 하고 있습니다. 총재가 당사에 나와 결재를 할 때까지는 당이 마비되다시피 합니다. 총재대행을 둬서 권한을 위임해야 합니다.“

두 번째 요구는 “총재님의 수첩을 우리에게 달라”는 것이었다. 수첩을 달라는 것은 DJ의 스케줄을 짤 권한을 아랫사람들에게 넘기라는 얘기였다.

“지금은 모든 스케줄을 총재님 혼자 짜고 앉아있습니다. 총재님의 일정을 아랫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정을 대선 중심으로 짜야 합니다. 일정 자체가 선거전략인데, 총재님이 일정을 혼자 짜고 앉아 있으면 우린 어떻게 합니까? 그 수첩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총재권한대행 제도 도입에는 바로 동의했던 DJ지만, 이번에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니, 일정은 공개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공개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요. 그건 안 되겠습니다.”

한동안 옥신각신하다가 이종찬씨는 DJ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기본일정은 우리가 짜되, 스케줄에 공란을 남겨 놓겠습니다. 사적(私的)인 일정은 총재님이 거기다 채워 넣으십시오.”

사실 DJ가 모든 당무와 일정을 직접 챙기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권위주의정권의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참모회의 같은 개념이 없었다. 밑에 사람을 부릴 때에도 1대1로 상대했다. 보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DJ는 다시 대선에 도전하면서 수 십 년 동안 몸에 익은 이런 체질들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DJ도, 동교동 가신들도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DJ의 대선 준비는 이날 나온 얘기들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종찬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 DJ는 이래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감에, 자기와 출신이 다른 이종찬, 세대가 다른 이강래 등 신진들을 과감하게 기용했고, 그들의 쓴소리를 받아들였다. 기존의 자신과 달라진 모습(그게 가식이라고 하더라도)을 보여주려 노력했고, 그게 국민들에게 통했다.

지금 박근혜씨와 관련해 나오는 많은 문제점들은 과거 DJ가 안고 있던 문제점들과 흡사하다. 지금 박근혜는 DJ처럼 자기변신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측근들은 박근혜가 노여워하는 것을 무릅쓰고 그런 충언을 하고 있는가?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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