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해제가 평화의 길인가
무장해제가 평화의 길인가
  • 이춘근 박사
  • 승인 2012.10.2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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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박사의 전략이야기]
 

한국 사회에 만연돼 있는 여러 가지 잘못된 관념 중에서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일부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인식이다.

옛날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요즈음 한국 사람들 중에는 전쟁이 아닌 모든 상태를 평화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어렸을 적, 미국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이라고 외친 것을 마음깊이 새겨야 할 명언이라고 배우고 자라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싸움이 없는 모든 상태’를 ‘평화’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자유 없이 살기보다는 싸우다가 죽겠다는 외침을 금언으로 배우고 자라난 한국 국민들이 싸우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극도로 두려워한 나머지 ‘전쟁 없는 모든 상태’를 ‘평화’라고 정당화 시키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전쟁 없는 모든 상황을 평화라고 말한다면 세상에 그것처럼 평화를 유지하기 쉬운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적들이 우리에게 가해오는 일체의 도발행위에 무반응으로 대처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사전에 적에게 아양을 떨면 된다.

이것보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대한민국 군대를 모두 해체해 버리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아예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가 된다. 적이 도발한다 해도 맞서 싸울 있는 능력이 없다면 ‘전쟁’은 발발하지 않는다.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극단적인 논리 혹은 말장난이라며 비아냥거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지 이유를 밝히겠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고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치를 후보들 중에는 바로 앞의 말씀을 했던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절, 남북한 관계에 무력 충돌이 전혀 없었다며 마치 그 시대를 그리워하듯 말하는 분이 있다.

그 대통령이 말했던 “나쁜 평화”가 바로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와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말인가?

사실 그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절 북한은 핵실험, 미사일발사 실험을 포함, 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동을 끊임없이 단행했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고 말한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과 핵보유 노력을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의 모든 도발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북한이 핵을 만드는 이유를 다 잘 이해하고 있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제압하고 한반도 전체를 적화 통일하기 위한 원대한 목적에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그때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됐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아무리 나쁜 평화’에 해당하는 사건은 ‘대한민국이 평화적으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편입’되는 그런 일일 것이다.

그런 상황이 다가올 때 우리는 그래도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북한이 평화적으로 한국을 접수, 한반도에 통일 공산국가를 건설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미 공산주의 축에도 낄 수 없는 북한이지만 편의상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돈으로 평화를 산다는 망발을 했던 장관도, 학자도 있는 한국이다. 평화에 대한 원초적인 개념조차 부족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평화란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지 무서운 적 앞에서 덜덜 떨며, 비굴하게 머리 조아리며, 단지 얻어터지는 것을 피하는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1910년 일본과 전쟁을 하지 않은 채로 일본에 합병되는 모욕을 당했다. 전쟁을 하지 않았으니 한일 합병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해야 되는 것인가?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완용은 평화주의자라고 존경 받아야 마땅하다. 일본과 북한은 다르다고?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는 제주 해군기지를 중국을 자극하는 일이라며 건설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북한과 같은가? 자극하면 안 되는 나라들이니까.

평화의 탈을 쓴 비겁자들

우리나라가 언제 어쩌다가 이렇게 겁쟁이, 비겁자들의 나라가 됐는가? 월남전에 참전했던 우리 국군의 용맹성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군의 용맹함을 보고 “이스라엘이 동양에 하나 더 있다”며 혀를 찼다.

고구려는 또 어떤가? 당시의 초강대국 중국과 맞서 당당하게 전쟁을 벌인 나라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대신 고구려는 자기보다 수십 배나 더 큰 중국에 당당하게 맞서 전쟁을 벌였다.

월남전의 대한민국 국군 그리고 고구려인들의 기백이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 그것은 전쟁광(戰爭狂)의 피가 아니라 정의파(正義派)의 피인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격에 걸맞는 당당한 전쟁-평화관을 가져야 한다. 북한에 당당하면 긴장이 오고 전쟁이 온다는 비겁함을 이제 끝장내야 한다. 북한에 당당함으로써 유지되는 평화가 진짜 평화다.

유명한 전쟁연구가 마이클 하워드 교수는 “전쟁은 필요악이다. 그러나 전쟁을 포기한 자는 그렇지 않은 자의 손아귀속에 자신의 운명이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북정책은 바로 우리의 운명을 북한의 손아귀속에 들어가게 했었다. 북한은 언제라도 가지고 놀 수 있는 대한민국을 직접 건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평화라고 착각했다면 이제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항복과 굴종이라는 이상주의

한때 스웨덴의 좌파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말하는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peace by peaceful means)라는 개념이 유행한 바 있었다. 역시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인식하지 못한 허무한 이상주의에 불과한 논설이다.

더구나 북한과 같은 비정상적 체제를 상대하는 경우 이 같은 이상주의는 항복과 굴종을 정책이라고 제안한다. 비겁한 평화, 굴종하는 평화는 다 죽어가는 북한을 살려 줬고, 오히려 우리를 위험에 빠뜨렸다.

로마인 베제티우스는 이미 수천 년 전 전쟁과 평화의 역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Si vis Pacem, Para Bellum’이라고 외쳤다.

현대 영어로는 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 즉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나라를 이끌겠다는 지도자들이 가슴 깊숙이 되새겨야 할 금언이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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