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면 생각나는 그때 그 사람
10월이면 생각나는 그때 그 사람
  • 미래한국
  • 승인 2012.10.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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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체가 박정희의 기념물이다
 

10월에는 박정희와 관련한 중요한 사건이 2개 있었다. 1972년 10월 17일 10월유신이 있었다. 그리고 9일 뒤의 날인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심장 박정희가 유명을 달리했다.

대선을 앞둔 올해는 우리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그 문제적 존재 박정희가 죽은 지 꼭 33돌을 맞는 해이다. 33년! 강산이 세 번 변했을 세월에 다시 3년이 더 흘렀다. 실제로 강산의 풍경이 변했다. 겉모습도 그러하지만 내용은 더 많이 변했다. 천지개벽에 가까우리만치!

5.16! 그 명칭을 뭐라 부르든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박정희는 언제나 최고 평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박정희를 폄훼해온 자들이 있었다. 특히 그의 딸인 박근혜가 대선에 출마하게 되자 이들은 더욱 공세를 강화했다. 그러자 결국 박근혜는 5.16과 유신이 헌법정신을 훼손했다고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훼손? 과연 그런가?

5.16이 헌법정신을 훼손했다고 했는데 과연 그 헌법정신이라는 게 무엇인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가 헌법정신인가? 밤중에 횃불 데모가 헌법정신인가?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파 구파 싸움에 날밤을 지새는 게 헌법정신인가? 5.16은 오히려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되고 망가져가고 있던 헌법정신을 되살린 것 아닌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신성시하는 자들은 5.16은 쿠데타이지 결코 혁명이 아니라고 목청을 높인다. 쿠데타? 혁명?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구분인가? 쿠데타는 헌정을 중단시키지만 혁명은 기존 정체를 ‘아름답게’ 계승한다는 것인가?

폭동과 유혈의 난장을 높여 부르는 게 혁명이라면 차라리 ‘무혈’의 5.16에 붙여진 쿠데타라는 칭호가 명예스럽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똑같이 향기롭다.”

박정희가 집권하던 무렵 한국은 피폐 그 자체였다. 유엔 가맹국 125개국 가운데 한국의 1인당 GNP는 105위로 70~80달러 수준이었다. 당시 북한 GNP가 약 300달러 수준의 50위권으로 말하자면 중진국이었다. 필리핀이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소득이 높았다.

그 처절한 가난의 나라가 박정희 집권 18년 천지개벽이라는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룩했다. 그리고 그때 닦인 경제적 기초는 마침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박정희가 아니래도 경제개발은 충분히 가능했다고 딴지를 거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 건설조차 드러누워서 반대하던 자들이 과연 경제를 얼마나 발전시켰을 것인가?

불편한 진실, 유신 없이 중화학공업은 없다

박정희의 업적을 인정한다 해도 그래도 유신만큼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리가 아직 높다. 사사건건 반대를 일삼아온 자들이 아니라 온건한 민주적 지식인들도 대개 그렇다. 맞다. 유신체제를 어떻게 민주적 체제라 할 것인가? 잘해야 박정희 스스로의 표현처럼 한국적 민주주의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교과서적이기는 하지만 한가하다. 역사의 진실은 주장이나 바람과는 관계없이 때로 대단히 불편하다. 유신체제 만 8년, 그 사이에 이룩된 경제발전 없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세계 1위가 된 지 오래다. 현대자동차를 선두로 한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그 본고장 미국을 질주하고 있다. 위협을 느낀다는 도요타의 토로가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석유화학공업, 포항제철 등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란다. 한국 중화학공업의 힘이다. 그런데 그 기초가 바로 유신시대에 닦였다.

박정희는 1971년 신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지난 십년 성장의 경험과 성과를 토대로…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여 수출을 계속 증대시키고, 중화학공업의 육성으로 산업구조를 빠른 속도로 고도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 구상은 10월유신과 함께 본격화됐다. 유신 이듬해인 1973년 1월 31일 박 대통령 주재 확대국무회의, 오원철 당시 경제수석이 기조 발제를 했다. ‘중화학공업 발전안과 방위산업 육성안’이었다.

오 수석이 제시한 필요 재원의 규모는 100억 달러, 1970년대 들어 겨우 수출 규모가 10억 달러를 넘어선 정도에 비추면 천문학적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였다. 2011년 한국의 수출 총액은 5565억 달러, 이를 기준으로 보면 5조 달러 이상을 퍼붓자는 얘기였다.

중화학공업 육성은 그러나 기어이 시작됐다. 그리고 유신시대 그렇게 진행된 행진은 누이와 어머니의 머리칼을 모아 가발을 만들어서라도 수출하던 나라를 초대형 유조선과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민주주의가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원칙이 된 지금 유신을 변호하려면 골통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 경제의 통계수치는 그때의 질주를 조용히 변호하고 있다. 불편해도 역사의 진실은 그렇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기여를 했나?

박정희를 폄훼하는 자들에겐 5.16은 단지 쿠데타요 유신은 민주주의의 유린일 뿐이다. 그들에겐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서거한 뒤의 상황은 ‘서울의 봄’이고 그 뒤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유례 없는 야만적 군사독재 정권이다. 그런데 당한 입장에선 인정하기 싫겠지만 그 시대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였다.

전두환 정권 8년, 한국은 연평균 10%의 고도성장을 이룩하고 유신시대에 시작된 중화학공업이 완전히 한국의 산업 주력으로 자리 잡는 성과를 이룩했다. 군사독재 정권? 어떻든 그렇다면 그 군사독재 정권은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독재정권 아닌가?

불편한가? 그래도 인정할 것을 담대히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성과를 함께 공유할 수가 없다. 그러나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고 만사를 비뚤어지게 보는 자들이 무엇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문재인은 "박근혜 후보는 민주주의에 손톱만큼도 기여한 점이 없다"고 비판했다. 박근혜가 민주주의에 기여했다 내세운 바 없으니 뜬금없다. 그런데 문재인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대단한 기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는 손톱만큼이라도 기여한 바 있는가? 기여한 바도 없으면서 성과도 인정 못하겠다는 자들이 숟가락은 얹어 놓고 있으려 하는가?

대한민국 자체가 결국 박정희의 기념물

박정희 시대는 실로 영웅시대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대였다. 한 시대에 딱 한 명 정도만 등장해도 한 국가를 먹여 살리는 데 부족함이 없을 만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경제건설의 전장에 줄을 지어 등장했다. 삼성, 현대, LG 등 오늘날 세계를 누비는 한국 기업을 반석에 올린 경제적 거인들이 앞을 다퉈 등장하고 땀을 흘리며 열사의 사막과 정글의 진흙탕을 마다않고 뛰었다. 그 선두에 박정희가 있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우리 역사상 단군 이래 가장 잘 살고 국력이 충실하다. 그 대한민국의 성취에서 박정희의 존재는 아무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광화문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동상은 있어도 박정희의 흔적은 없다. 경복궁 복원으로 영웅적 개발시대를 이끌었던 중앙청도 사라졌다.

그가 만들고 애초에 5.16광장으로 불리던 여의도광장도 이제는 아예 사라지고 국회는 ‘여의도 정치’라는 별로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었다. 그가 간 지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된’ 기념관 하나 없다. 그러나 변변한 기념물 하나 없어도 오늘의 대한민국 자체가 결국 그의 기념물이다. 좋든 싫든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미래한국)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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