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돈이라는 ‘우상’과의 영적전쟁
정치와 돈이라는 ‘우상’과의 영적전쟁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2.11.0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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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Paul Johnson)의 <神을 향한 탐구>(The Quest for God)를 읽고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전쟁을 처음 경험해 본 것은 1992년 4월 프리드네스트로비예 지역에서였다. 프리드네스트로비예는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주민의 대다수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슬라브인이다.

그러나 구소련 시절 행정편의상 몰도바에 소속돼 있었다. 프리드네스트로비예는 ‘드네프르강(江) 연안’이란 뜻으로, 드네프르강 동쪽에 위치해 있다. 영어로는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라고 표기되는데 이는 몰도바 명칭을 따른 것으로서 ‘드네프르강 건너편’이란 뜻이다.

이 지역에서는 다수파인 슬라브계 주민들과 몰도바인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갈등이 폭발하게 된 계기는 1991년 12월 소련 해체. 소연방의 한 구성원이었던 몰도바가 독립하게 되자 프리드네스트로비예 지역의 다수파인 슬라브계 주민들이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프리드네스트로비예 공화국’을 선포한 것이었다.

몰도바는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단순한 민족감정 때문만도 아니었다. 구소련 시절 몰도바는 농업지역으로 특화돼 있었으며 그나마 존재했던 산업시설은 프리드네스트로비예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1992년3월 몰도바軍(군)이 무력으로 진압작전을 감행하면서 무장충돌이 전면화 됐던 것이다.

프리드네스트로비예에서 전쟁을 처음 경험하다

당시 필자가 거주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가에 벽보가 붙기 시작했다. “가자! 러시아 청년들이여! 형제와 자매를 구하러! 프리드네스트로비예로!” 이른바 ‘프리드네스트로비예 의용군’이 조직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다.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로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었는데 이를 떨쳐 버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또 돈이 필요했다. 소련 당국 ‘장학금’이 사라지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 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프레스’ 완장을 찬 채, ‘프리드네스트로비예 의용군’ 기차에 몸을 실었다. 태어나서 처음 기차 화물칸에 타 본 순간이었다. 함께 간 인원은 약 150명. 10대 소년에서 60대까지 정말 다양한 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러시아식 샌드위치와 보드카가 지급됐다. 일행들은 서로를 소개하며 간간이 소련 군가를 불렀다. 전쟁터에 나가는 모습이라고는 전혀 엿볼 수가 없었다. 소풍 가는 분위기였다.

우크라이나 국경을 통과할 때도 검문은 커녕 여권검사도 없었다. 화물칸에 탄 관계로 바깥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만 이틀은 넘게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크라이나의 조그만 시골 역에 도착했다. 일행은 트럭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비포장도로를 다시 밤새 달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국경은 도보로 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버스를 탄 채 그대로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트라스폴(Traspol)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일행들은 흩어졌다. 이곳에 이미 도착해 있던 외신기자들과의 트라스폴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보이스카우트 야영 훈련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던 러시아 대도시보다 식량 및 기타 생필품 보급 상황이 월등히 좋았다. 함께 기차타고 온 다른 일행들은 AK 소총을 지급받고 사격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참담한 전투현장 체험

그러나 역시 전쟁이었다. 첫 전투 참관 경험은 참담하다 못해 허무한 것이었다. 트럭을 타고 ‘전선’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발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트럭에서 뛰어내려 나무 뒤에 납작 엎드렸다. 폭발음이 계속됐다. 박격포 세례를 받은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 화기로 대략 어디서 공격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아무 것도 몰랐다. 그저 겁에 질린 채 나무 뒤에서 눈을 꼭 감고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대략 10분 정도 공격을 당했는데 당시의 체감 시간은 1시간은 족히 넘었다.

전투적 무신론자였던 필자의 입에서 “하나님” 소리와 어렸을 때 배운 찬송가 곡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프리드네스트로비예군(軍) 장교가 엉덩이를 걷어차면서부터였다.

포격이 끝났으니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어났으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난생 처음 시체를 보았다. 박격포 10여발이 떨어졌는데 그중 1발이 명중해 3명이 즉사한 것이었다.

이들 모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의용군이었다. 총 한 발 쏴 보지 못한 채 이동 첫날 사망한 것이었다. 만신창이 시체 모습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필자의 이런 모습에 한 장교가 비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래 가지고 어떻게 전쟁터를 취재하겠다는 거야.”

죽음에 대한 고민의 첫 결과는 허무주의

이 사건은 처음으로 죽음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아니 ‘과학’과 ‘신학’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과학에서의 가치와 도덕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대학 시절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신(神)과 도덕을 배제시켜야만 ‘과학적’이라고 배웠다.

이는 비단 마르크스주의자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이른바 ‘정통 정치학’은 ‘행태주의’(Behaviorism)로서 ‘과학’이란 이름하에 정치로부터 가치와 도덕을 분리시키고 있었다.

과연 정치학이 신과 도덕으로부터 분리된 ‘정치과학’이 될 수 있을까? 또 이러한 ‘정치과학’이 얼마나 현실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이른바 ‘과학적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면 이는 무시돼야 하는 것일까 등등의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됐다.

사실 현재까지 대한민국 사회과학계는 ‘무신론’(atheism)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른바 ‘인본주의’가 ‘좋은 것’으로 돼 있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이미 ‘과학’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신본주의’ 운운하면 정신병자 취급당하는 것이 대학 사회과학계의 분위기다.

이쯤 읽으면, 일부 독자들은 “그래 그래서 신을 믿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겠지”라고 지레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공포 속에서 신을 찾기도 했지만 반복되는 공포는 공포를 일상화시켰으며 결국 시체 더미 속에서 태연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돼 갔다. 죽음에 대한 첫 고민의 결과는 신을 향한 탐구가 아니라 ‘허무주의’(nihilism)이었다.

인간이라는 것이 ‘고기 덩어리’로 여겨졌으며, ‘선과 악’의 구별과 인생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생활도 방탕으로 빠져들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세상에서 ‘방황’이 도피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정말 방탕하게 생활했다.

폴 존슨의 <신을 향한 탐구>는 제2차 체첸전쟁 당시인 2000년 4월에 처음 읽어 보았다. 모즈도크 러시아 군사기지에서 다소 한가한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 함께 있던 캐나다 방송기자로부터 빌려 읽었다.

부제 ‘개인적 순례’(A Personal Pilgrimage)에서 알 수 있듯이 신에 대한 개인적 고민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폴 존슨은 <모던 타임즈> 작가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역사학자이다.

존슨은 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마련될 수 없으며, 따라서 ‘무신론적 상대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무신론적 상대주의’가 ‘현대’(Modern)의 주요 구성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무신론적 상대주의’가 ‘유토피아적 사회공학’과 결합할 경우, 공산주의와 나치즘과 같은 괴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존슨의 주장에 지적 쇼크를 받게 된 것은 모스크바에서의 ‘방탕생활’의 경험 탓이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마피아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이들은 매우 쉽게 ‘공산주의’에서 ‘시장주의’로 전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장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었으며 역시 ‘무신론적 상대주의’ 하에서 ‘도덕’과 ‘가치’를 배제한 철학 혹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가치 배제된 ‘정치학’은 불가능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른바 ‘전투적 무신론자’들도 ‘숨은 유신론자’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단지 이들의 신은 ‘정치’ 혹은 ‘돈’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종교와 과학,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존슨의 <신을 향한 탐구>를 다시 읽으면서 또 다시 한국 기독교와 세속세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기독교에서 가장 큰 죄로 여기는 것은 우상숭배와 ‘자만의 죄’(the sin of pride)이다
.
‘신을 배제한 정치와 돈’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과의 영적 전쟁은 기독교인들의 피할 수 없는 과제인 것 같다. 탕자가 어떻게 돌아오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존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따라서 개신교 신자(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물론)가 읽을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나온다. 그러나 ‘신에 대한 지적 탐구’라는 점에서 일독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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