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리더십이 회복될 때 정치·사회적 발전 가능"
“기독교 리더십이 회복될 때 정치·사회적 발전 가능"
  • 미래한국
  • 승인 2012.11.1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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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의 위상은 바닥을 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는 명함을 내밀어 환영 받을 자리가 별로 없을 정도로 반기독교적 정서가 팽배하다.

이유는 다양하다. 비기독교인과 다를 바 없는 기독교인들의 세속화, 매스컴의 편향된 보도, 인본주의에 물든 지식인들과 그들이 형성하는 담론의 반 기독교적 정서 등등.

<미래한국>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위해 신반포교회 홍문수 담임목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과거의 영향력 잃은 한국 교회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신반포교회는 성도 2000명이 출석하는 중형교회다. 지역적인 특색 때문에 전문직과 지식인층의 교인들이 많다. 홍 목사가 교인들에게 자주 설교하는 내용도 기독교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리더십이라고 한다.

“리더십은 곧 영향력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교회가 사회의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영적 리더십을 상실한 것이죠. 교회의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라는 의식이 팽배해진 것입니다.”

분명 오늘날 기독교인의 현주소는 초기의 크리스천들과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기독교계의 지도자가 사회의 리더로 받아들여졌고 그들이 하는 말에 교회 밖의 대중들도 귀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하다못해 불신자 어머니일지라도 자식만큼은 교육을 위해 주일학교에 보내고는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교회에서 평소에는 접하지 못하는 음악이며 미술을 배울 수 있었다. 교회가 문화의 보급통로이자 교양의 척도였던 셈이다.

“일제시대 때는 우국지사 중 크리스천이 많았습니다. 조만식 선생, 함석헌 선생, 한경직 선생은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던 분이었죠.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도 컸습니다. 아마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일지라도 한국이 이 정도로 근대화된 것이 선교사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겁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 단체가 즐비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역사가 파묻혀 버렸습니다. 그 배경에는 정치사회적인 측면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80년대에 일어난 민주화 바람이 반미와 맞물리며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준 영미권 선교사들까지 오해하게 만든 것입니다.”

개화기의 복음주의 선교사들

홍 목사의 설명대로 민주화 바람과 반미주의가 맞물린 탓인지 우리나라 개화기 때의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이 의외로 많다.

“모든 나라의 선교사가 우리나라와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세계 교회사를 보면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자의 앞잡이 역할을 한 이들과 순수한 복음주의자로 성격이 나뉘었는데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는 전자였습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제국주의의 목적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결국 무슬림에게 그 영향력을 뺏긴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섭리로 순수한 복음주의자들이 들어왔고 기독교의 부흥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홍 목사는 기독교의 부흥 이후 경제 발전과 민주화가 이루어진 과정의 연관성을 생각해야 한다며 시대에 따른 기독교인의 사명을 강조했다.

“70년대에는 기독교계가 딱 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는 교회와 사회의 구원까지 확장하려 한 교회가 있었죠. 정권에 대해 침묵하는 교회나 보수적인 교회들은 개인의 구원만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예수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것은 분명 맞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좀 더 발전시키지는 못했던 한계가 있었죠. 한쪽에서는 ‘사회적인 압제 속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주로 진보적인 크리스천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의 개인적인 구원이 탄탄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전혀 영적인 신앙 없이 진보적인 운동을 하기 위해 교회 속으로 들어온 경우가 많았어요. 보수 쪽에서는 사회,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오류를 범한 반면, 진보 측에서는 개인적인 구원을 생략한 채 신앙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변질돼 버린 것이죠.

요새는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보수진영에서도 사회, 국가, 역사에 긍정적인 참여를 많이 합니다. 진보측도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교회가 민주화 운동의 필드라는 의미가 희석되는 동시에 영적인 구원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죠. 진보와 보수 진영이 기독교 안에서 가까워진 것은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아프리카에 복음 전파 중

기독교인의 사회적 참여를 지향하는 홍 목사는 교회의 주요 사역도 선교에 두고 있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인 전공을 살려 아프리카의 불어권 지역을 중점으로 복음을 전하는 중이다.

“선교는 성경에 나온 명령입니다. 대학 시절, 저에게 전도를 한 친구가 있었고 덕분에 불교 집안에서 자란 제가 예수님을 믿고 목사까지 되었죠. 친구의 친구를 죽 거슬려 올라가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결국 모두 선교사를 만나게 됩니다. 릴레이 바턴을 넘겨주듯이 세계선교의 역사가 내려온 것입니다. 민족적으로도 빚을 받았으니 갚아주는 것은 성경의 말씀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지요.”

이어 “대한민국 건국 이후 62년 동안 하나님이 이 나라를 축복하신 것은 기적”이라며 “우리만 잘 살기 위해 경제적인 부흥을 일으켜 주신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선교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현재 한국은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자유를 얻고 배불리 먹게 되었을 때,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타락할 것이냐 아니면 깨어서 사명을 다할 것이냐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 중 남한교회 사정을 아는 이들은 오히려 남한의 성도들을 걱정한다고 한다. 북한 성도들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울지라도 핍박 속에서 영적인 순수성은 지키는 반면, 남한 성도들은 물질적 풍요에 탐닉하다 신앙까지 잊을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홍 목사가 평소 설교에서 자주 인용한다고 하는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서 사마리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오늘날의 북한을 연상케 한다. 홍 목사는 북한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동의를 표했다.

북한 선교는 하나님의 섭리

“북한 또한 중요시하는 선교 지역입니다. 물자 지원도 하지만 미국 시민권자들은 북한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북한을 방문하고는 합니다. 이분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물자 지원 얘기만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복음을 전파하고 돌아옵니다.

어떤 조선족은 한국에 와서 목사 안수 받고 다시 중국에 돌아가 목회하면서 틈틈이 북한을 방문해 전도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어보면 남북이 경색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밖에 탈북자 선교하시는 분도 많은 것을 보아 북한 선교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한국 교회가 북한 교회 재건에 절대적으로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에 대한 논의는 이슬람 문화권으로 이어졌다. 2004년 일어났던 김선일 피살사건은 한국교회의 이슬람 선교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당시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납치 후 피살당한 김선일 씨 사건을 계기로 중동 선교의 지형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복음전파와 문화적 차이에 대한 논의가 불거졌다.

아울러 반기독교 여론에 이슈를 제공하게 된 사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홍 목사는 “선교를 전쟁으로 이해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며 관계적으로 접근할 것을 충고했다.

“복음이 변질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화의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먼저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를 서로 수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개화기 때 상투 튼 예수님을 그렸던 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토착화라는 미명하에 복음까지 포기하고 변질돼서는 안 됩니다. 일례를 들면 개신교보다 백년 먼저 들어와 박해 받으며 뿌리 내린 가톨릭이 이후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지나치게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제사 문제 등에 대해 너무 양보를 하다 보니 순수한 가톨릭 신자가 아닌, 토속적인 신앙을 버리지 못한 신자들도 양성하게 된 것이죠.”

홍 목사의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본래의 유교적인 가치관과 불교 사상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를 지켜 본 홍 목사는 복음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선교란 문화 수용하고 복음 지키는 것

“반대로 우리의 기독교가 꼭 서양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국악기를 가지고 교회에서 연주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문제가 되던 시절이 있었죠. 문화와 신앙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지금은 국악선교단체까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선교할 때도 지혜롭게 접근해야 합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은 뱀처럼 사악한 것이 아니라 지혜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어 “이슬람권의 법을 잘 파악한 뒤 그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사역을 하라”며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친밀감을 표시하라”고 조언했다. 종교적인 의상이 아니라면 일례로 이슬람인들의 평상복을 착용해 동질감을 형성한 뒤 단계별로 다가가 친구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문화적 접근’은 국내에서도 적용된다. 신반포교회의 건축은 인테리어 하나까지 문화적인 차원에서 계획했다고 한다. 몇 년 전 재건축을 마친 신반포교회는 현대적인 느낌의 디자인에 유리재질을 사용해 세련된 외양을 갖췄다.

“저희 교회 엘리베이터는 전면이 유리라 어르신들이 타면 처음에는 놀랍니다. 반면 개방적인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좋아하지요.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을 잘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옷을 갈아 입어야 합니다. 문화는 본질이 아니라 옷입니다. 옷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죠. 넥타이의 폭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세속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이유 중에는 교회에 대한 신뢰도 문제도 있지만 문화적인 이질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구식이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에 멀리하는 것이죠.”

이어 “쓴 약을 코팅하면 삼키기 좋은 캡슐이 된다”며 현대인에게는 현대적으로 대응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음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생 속에 함께 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교회의 울타리를 낮추되 울타리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교회와 세속은 구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거룩’이란 단어 자체가 구별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울타리, 즉 복음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건축에 나타난 메시지는 교회의 비전과도 연결된다. ‘복음의 본질을 지키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교회’라는 뜻의 메타 처치로 함축되는 교회의 비전은 ‘기독교인의 영성으로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제자양성’이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기독교 리더 양성이 목표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사는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중생활이지요. 인본주의적 세계관과 세속주의적 세계관에서 살다가 주일에만 교회를 가니 지적인 부분에서 균형이 맞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지적인 훈련을 소홀히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반성 하에 저희 교회에서는 이번에 창조과학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흔히 말하듯이 ‘덮어놓고 믿자’는 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가 오히려 과학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라면 역사학 속에서, 사회는 사회학 속에서 기독교의 진리가 입증돼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자신의 가치관을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측면에서 똑같이 치열하게 다투면서 승리해 거기서도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이런 점은 한국 기독교의 약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세상의 학문 속에서 괴로워하던 홍 목사의 고민을 반영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흔히 교회 잘 다니던 모태신앙 교인이 무신론자로 ‘변질’되는 장소가 대학이다. 빈약한 성경 지식을 기반으로 인본주의의 벽을 깨기에는 한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홍 목사는 반대의 경우였다. 대학 시절 당시 학생들처럼 사르트르나 까뮈 등 실존주의에 빠져 있던 그는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민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믿음도 없이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가게 된 수련회에서 물에 빠진 학생이 주위의 기도로 구조되는 기적을 체험한 후 문제는 해결됐다.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깨닫자 그동안 고민했던 문제가 일목요연하게 정립되는 것이 어찌나 기뻤던지 “유레카!”를 외칠 정도였다. 이후 교수의 꿈을 접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된 홍 목사이지만 이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기독교의 정신을 구현하는 인재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인구원을 바탕으로 사회구원을 이룬 사람이 영국의 윌버포스입니다. 노예 법안을 위해 평생 크리스천 정치인으로 살았고 결국 이루어냈죠. 이처럼 각계각층에서 크리스천 정신을 가진 이들이 나와야 합니다.

영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자기 분야에서 기독교 정신을 구현해야 하죠. 우리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 정치판에 가면 신앙이 없는 사람이 돼버립니다. 교육계도 마찬가지로 세상의 교육시스템 속에 똑같이 돌아가 버리죠.

한국교회에는 이미 목사가 너무 많습니다. 진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자기 분야에서 구현할 수 있는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많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인터뷰/황성준 편집위원  
정리·사진/조진명 기자 jadu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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