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이 불안한 이유
미·중 패권 경쟁이 불안한 이유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2.11.23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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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프리드버그(Aaron Friedberg)의 <패권경쟁>(A Contest For Supremacy>를 읽고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 북부도시 쿤두즈의 한 언덕.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자면, 평화로운 소풍 분위기였다. 단지 외신기자들의 카메라 수 십대가 설치돼 있다는 점 정도가 특이해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연날리기를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정오가 되기 직전, 외신기자들이 시계를 보면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텐, 나인... 하늘에 물체가 나타났다. 미사일이었다. 이 미사일은 언덕 아래 3층 건물에 명중했다. 굉음과 함께 3층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놀랍게도 옆 건물은 창문이 조금 흔들렸을 뿐 거의 피해가 없었다. 모인 사람들 입에서 놀라움과 경악, 그리고 환호와 탄식이 혼재된 신음소리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당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 마지막 거점이었던 이곳에서 탈레반 병력 약 5천명이 결사항전을 부르짖으며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북부동맹군의 포위망이 점차 좁혀지고 있는 가운데 ‘스탈린그라드 형태의 시가전’이 예상되고 있었다.

경험은 매우 중요하지만 때로 경험이 상상력을 봉쇄하기도 한다. 바로 ‘쿤두즈 전투’가 그러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필자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제1차 체첸 전쟁 당시 ‘그로즈니 시가전’의 모습이었다.

상대적으로 평온했던 쿤두즈

인구 40만의 그로즈니(러시아어로 terrible이란 뜻)시(市)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곳으로 변모됐다. 제2차 세계대전 배경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폭격기들의 융단폭격,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폐허 속에서의 건물 하나, 블록 하나를 장악하기 위한 소총과 수류탄의 피어린 근접전, 바로 이런 모습을 예상했다.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의 의한 융단폭격은 얼마나 대단할까? 그로즈니 방공호에 웅크리고 앉아 바깥에서 울려 퍼지는 폭발음에 떨면서 담배와 보드카로 간신히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의 기억으로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쿤두즈는 평온했다. 폭격기와 탱크, 그리고 기관총으로 이뤄진 ‘현대적’(modern)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포스트모던’(post-modern)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먼저 하늘에서 삐라가 살포된다. 다음날 공격목표를 알리는 삐라였다.

아프가니스탄의 2개 공용어인 다리어(語)와 파슈툰어(語)는 물론 영어와 러시아어, 그리고 아랍어 등으로 작성돼 있었다. 이날 공격 목표는 탈레반 지휘소로 알려진 3층 건물. 공격시간은 정오였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나와 그 건물이 잘 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기자들도 좋은 촬영 포인트를 확보하기 위해 일찍부터 나와 있었다. 시간이 됐다. 미사일이 날라 왔다. 그리고 건물이 사라졌다.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됐다. 포위하고 있던 북부동맹군은 항복을 권유하는 방송을 내보낼 뿐, 공격을 중단하고 있을 뿐이었다.

중국대사관 오폭과 음모론

처음에는 흥미로웠지만 날이 가면서 관객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변한 것이 없다면 예고된 공격목표는 항상 정확히 먼지로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을 끝까지 망원경을 지켜보는 중국인 2명이 있었다.

신화사 통신사 기자라는 사람과 그 기자의 보조원. 신화사 통신사 기자는 러시아어에 능통했으며 영어도 제법 구사했다. 그런데 그 보조원이란 사람의 정체가 모호(?)했다. 외국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것 같았으며 두 사람의 관계도 보조원이란 공식신분과 걸맞지 않게 오히려 이 보조원이 기자보다 윗사람이란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좌우간 이들과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언덕에서 함께 쇠고기 통조림과 비스킷을 함께 나눠 먹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1999년 5월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 폭격은 절대로 오폭이 아니다. 미국의 정밀 폭격 능력으로 미뤄 볼 때 절대로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에 그럼 왜 중국은 가만있었느냐 그리고 왜 미국이 고의적으로 중국대사관을 폭격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단지 헤어질 때 보조원으로 행세했던 사람이 글을 적어 주었다.

冷靜觀察(냉정관찰), 站穩脚筋(참온각근), 沈着應付(침착응부)
韜光養晦(도광양회), 善于守拙(선우수졸), 絶不當頭(절부당두)

당시 한문 실력의 부족으로 그 뜻을 새길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등소평의 24자 전략’으로서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냉정하게 관찰하고,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며, 침착하게 대응하고, 때에 이르기 전까지 자신의 능력을 노출하지 않고, 교묘하게 세태에 융합하지 않고 우직함을 지키며, 결코 우두머리로 나서지 않는다.”

당시만 하더라도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을 고의로 폭격했다는 주장을 흔한 음모론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 역사적 진실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르비아 정보기관이 중국의 비호 하에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 안에서 연락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사실을 감지한 미국 측이 폭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이날 폭격으로 중국대사관에 있던 세르비아 요원들은 전원 폭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의(?)상, 미국은 오폭이라면서 사과했으며, 중국 측은 세르비아 정보요원들을 숨겨주고 있었던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회피하고자, “알면서 속아주는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2001년만 하더라도 미국 독주의 시대였다. 경제력, 군사력 모든 면에서 미국과 감히 맞설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 ‘힘의 역관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경제력에서 미국의 지위가 감퇴되는 반면,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증가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존재하며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중국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재의 추세를 그냥 무시만 할 수는 없다. 분명 당분간 미국은 재정적자 등의 문제로 대외문제보다는 대내문제에 보다 몰두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군사비 지출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중국은 서서히 기지개를 펴며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노리기 시작할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의 패권주의가 위기의 불씨

아론 프리드버그는 중국이 미국과 아시아에서 지역패권 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이유로 첫째,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국제질서의 힘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힘의 성장은 패권을 추구하게 만들며 이러한 패권 추구를 향한 힘의 성장을 기존 패권국이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은 힘이 강성해질 때마다 아시아 패권을 추구했으며 이러한 중국의 속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 국내정치의 구조도 중국이 대외 패권을 추구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의 기대와 달리 적어도 아직은 중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날로 성장하는 시장경제의 발전 속에서 이에 조응할 수 없는 중국 공산당 정권은 대외 패권 전략으로 국내권력을 유지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수위를 높이겠지만 중국이 아직 미국과 정면 대결할 힘과 능력을 갖추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마냥 ‘도광양회’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즉 중국이 추구하는 아시아에서의 목표는 ‘America Out, China In, Japan Down’이며, 중국의 미국과의 전선(front)은 2개의 측면(flank)과 1개의 중앙(center)로 이뤄져 있는데, 중앙돌파보다는 측면 우회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2개의 측면은 한반도라는 북부와 호주라는 남부로 이뤄져 있으며 중앙은 일본과 대만을 가리킨다. 이에 맞서는 미국의 전략은 인도, 호주, 일본을 동맹국으로 중국을 포위하고 베트남, 필리핀 등을 지원세력으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미국과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한반도가 주요 당사자이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이러한 담론은 대통령 선거에서 의제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너무 오래 평화를 누렸기 때문일까? 과연 ‘소통’으로 이러한 변화를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인지... 청일전쟁과 노일전쟁 당시, “우리는 중립”이라고 처량하게 외치던 대한제국의 무능한 정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래한국)

황성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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