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해단식’에 빠진 한 가지
‘안철수 해단식’에 빠진 한 가지
  • 이원우
  • 승인 2012.12.0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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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앨범’만 냈으면 딱 연예인 행태

 

“그래, 끝난 게 아냐. End가 아닌 And로 이어지는 우리 사랑….” 

이 문구가 기억나는가?

1996년 1월 31일,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꿔놓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충격의 해체를 선언했다. 서태지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고 2월 10일에는 마지막으로 베스트앨범을 발매했다.

위의 문장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 속지에 기재됐던 것이다. End와 And의 발음 기호가 같다는 데에서 착안한 이 메시지는 서태지가 조만간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자아냈다. 실제로 서태지는 1998년 새로운 앨범을 발매했고 2000년에는 정식으로 컴백을 선언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표현은 2012년 12월 3일 오후 3시, 안철수 캠프의 해단식 현장에서 재활용되었다. 안철수의 ‘은퇴선언’을 듣기 위해 1,200여명(캠프 추산)이 모인 자리에서 그의 ‘팬’들은 자체 제작한 영상을 통해 “The And”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던 것이다.

이후 이어진 안철수의 입장표명 역시 ‘해체 기자회견’을 연상시키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나간 나날을 감사하며 살아도 모자랄 것”이라는 표현에 더불어 예의 ‘진심’을 강조하며 “사랑합니다.”를 연발하는 모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노래 “Good Bye”를 끊임없이 연상시켰다.

지나간 일을 난 오늘 생각해 봤지
내겐 아름다웠던 기억들만 생각나

약속되었던 헤어짐을 알면서
너는 그토록 나를 사랑해 주었건만

그런 네 곁을 난 오늘 훌쩍 떠나네
마지막 작별의 시간도 못 가진 채

잊어버려 날 이젠
꿈결 같던 시간이 영원할 듯 했지만

이제 남은 건 항상 따뜻한 너와 나의 깊은 마음만…

- 서태지와 아이들 <Good Bye>中

분위기에 잔뜩 휩싸인 그의 ‘팬’들 역시 정치지도자를 보낸다기보다는 아이돌의 ‘굿바이’를 슬퍼하는 듯 보였다. 안철수가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메시아라도 되는 줄 알았단 말인가.

아직까지는 ‘대선 출마 실패’가 정치적 업적의 전부인 사람을 붙잡고 눈물의 신앙고백을 한들 이 세상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걸까.

얼마 전 안철수의 후보직 복귀를 요구하는 자살소동이 있었던 것까지도 서태지의 은퇴 당시와 판박이다. 대한민국이 ‘연예인 공화국’이 되는가 싶더니 이젠 국가경영까지 ‘연예인 스타일’로 하자는 건가?

필자는 이미 지난여름 Podcast <베스트셀러를 읽는 남자>에서 ‘안철수의 생각’을 다루며 ‘반드시 대통령을 해야겠다면 5년 후에 출마하는 것이 온당해 보인다’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그가 내놓은 책은 18대 대선후보의 것으로는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안철수가 후보에서 사퇴한 뒤 녹음한 방송분에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등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가치들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하는 모습이 감지될 경우 자유주의자로서 얼마든지 비판적인 지지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은 (자칭) 진보계열의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교체’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허나 어제의 팬클럽 해체 기자회견을 보고 있자니 갈 길이 정말로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정치혐오심리를 ‘좀 괜찮아 보이는’ 정치인에게서 해소 받으려 하고 있었고, 지지를 받는 정치인 역시 밑도 끝도 없는 아이돌식 인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편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해단식’에서 빠진 한 가지? 그건 바로 ‘굿바이 앨범’이었다.

서태지는 눈물의 기자회견 후 성공적으로 컴백을 했다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안철수의 5년 후 정치는 생각만큼 쉽게 굴러가지 못할 것이다. 5년은 지금 안철수가 추구하고 있는 ‘연예인식 정치’의 해악이 드러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기 때문이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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