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AIDA] 시공을 극복한 사랑
[뮤지컬 AIDA] 시공을 극복한 사랑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2.12.07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비아의 공주, 그녀의 선택

“헤어진 후에야 알 수 있는 것~ 잊으려 하면 더 할수록 죽을 만큼 그립다는 걸”
“매일 밤 기도해~ 너를 다 잊어야 해~ 다른 사람들처럼 웃고 그렇게 살아야 해”

윤하 3집의 히트곡 중 하나인 ‘헤어진 후에야 알 수 있는 것’의 가사다. 사랑을 잊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보여준다. 굳이 이 가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아픔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 중 하나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 또한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다.

사랑의 슬픔을 치료하는 최고의 묘약은 시간(time)이다. 매정하게도, 현대 문명은 이를 과학의 원리로 검증한 바 있다.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사랑의 감정이 강해지는데, 다행스럽게도(?) 동일 인물에 대한 페닐에틸아민의 유효기간은 최대 3년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아무리 슬프고 애절한 사랑이라고 해도 3년만 지나면 후유증에서 회복된다는 의미다.

반면 사랑의 슬픔마저도 평생 간직하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현상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들에겐 시간이 묘약이 아니라 사랑의 가장 큰 적이 되는 셈이다. 평생 간직하고자 했던 그리움과 애절함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무뎌지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진다면 형용하기 힘든 슬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최근 서울 신도림 디큐브시티에서 공연된 뮤지컬 <아이다>는 연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주인공 아이다는 고대시대 이집트 남부에 위치했던 국가 누비아(Nubia)의 공주다. 당시 영토 확장에 여념이 없던 이집트는 젊은 장군 라다메스를 앞세워 누비아를 정벌한다. 이 과정에서 나일강 인근까지 시녀들과 함께 여행을 왔던 아이다 공주는 라다메스 수하의 이집트 병사들에게 생포된다.

아이다는 잡혀가면서도 자신이 누비아의 공주라는 사실은 끝내 숨긴다. 그러나 그녀의 범상치 않은 칼솜씨와 고귀한 분위기는 라다메스를 매료시키고,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이집트 공주이자 왕위 계승자인 암네리스의 시녀로 보낸다. 그녀가 궁궐에서 상대적으로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누비아인 노예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몽땅 나눠 주는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그리고 라다메스는 어느새 아이다가 자유를 갈망하며 부르던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이집트 최고의 전쟁영웅이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자애로운 로맨티스트로 변신한 셈이다.

 

조국 vs 사랑, 아이다의 고뇌

그러나 라다메스의 시종 메렉은 아이다가 누비아 왕국의 공주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결국 아이다가 누비아의 공주라는 사실은 이집트에 거주하는 누비아인 노예들에게 빠르게 전파된다.

라다메스와 아이다는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라다메스에겐 이미 9년 전에 미래를 약속한 약혼녀가 있었다. 바로 이집트의 왕위 계승자인 암네리스 공주였다. 라다메스의 추천에 의해 암네리스 공주의 시녀가 된 아이다는 라다메스와의 밀월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누비아 출신 노예들의 호소와 울부짖음으로 인해 누비아의 공주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게 된다. 여기서 관객들은 조국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이다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그러던 와중에 누비아 왕이 라다메스의 병사들에게 잡혀온다. 아이다는 몰래 왕이 수감된 감옥으로 면회를 가지만, 왕은 자신의 딸이 적국의 장군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며 아이다에게 라다메스와의 관계를 즉각 끊을 것을 명령한다.

한편 라다메스는 그가 다름 아닌 아이다의 부친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누비아 왕과 아이다를 동시에 탈출시키기 위해 협조한다. 그러나 라다메스의 이런 시도는 이집트군에게 즉각 발각되고, 누비아 왕을 탈출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라다메스와 아이다는 즉각 생포된 후 왕 앞에 끌려온다.

라다메스의 약혼녀 암네리스 공주는 국법에 따라 두 사람을 생매장시켜야 한다는 이집트 왕의 명에 흔쾌히 동의한다. 그러나 라다메스와 아이다 모두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던 암네리스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같은 장소에 함께 생매장하는 배려를 해준다. 결국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땅 속에서 부둥켜안은 채 함께 숨을 거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죽음은 큰 결실을 남겼다. 왕위를 이어받은 암네리스 공주는 평화를 사랑하는 성군(聖君)이 돼 누비아에 대한 침략전쟁을 중단시킨다. 불륜관계라고도 볼 수 있는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사랑에 대해 질투를 하면서도, 두 사람에 대해 품고 있던 그녀의 애틋한 마음은 결국 평화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3년 사랑’의 유효기간을 극복한 두 사람

아이다와 라다메스. 이 두 사람의 사랑엔 세 가지 높은 장벽이 있었다. 우선 두 사람은 서로 적대국인 이집트의 부마와 누비아의 공주였다. 둘째로 라다메스에겐 이미 평생을 약속한 연인 암네리스가 있었다.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현실에서 극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거대한 벽이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장벽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극중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함께 부르는 노래 중에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라는 내용의 가사가 나온다. 두 사람 모두 이것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빨리 시간이 흘러서 서로 잊을 수 있기만을 갈망했던 것이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두 사람은 시간이라는 벽조차도 자신들을 가로막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 두 사람은 이집트 전시품들이 진열된 박물관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운명의 재회를 한다.

뮤지컬 아이다의 포스터에 나온 부제는 ‘TIMELESS LOVE’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3년이면 만료된다는 사랑의 유효기간도 아이다와 라다메스에게만큼은 예외였다는 사실을 시사한 게 아닐까. (미래한국)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