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무뇌 집단의 공포
생각 없는 무뇌 집단의 공포
  • 미래한국
  • 승인 2012.12.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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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영화산책: 좀비(Zombie) 이야기

 
좀비(Zombie)라는 말은 이제는 꽤 널리 쓰이는 말이 돼 버렸다. 물론 아직 점잖은 문장 속에 쉬이 자리 잡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통속을 무릅쓴 신랄한 표현으로는 과감하게 쓰인다. 뜻은 '살아있는 시체'다.

좀비라는 단어의 원래 기원은 아메리카 서인도 제도의 부두교다. 부두교는 전래 기독교와 원주민의 원시 신앙이 뒤섞여 발생한 것인데 부두교의 사제들이 마약 등을 투여해 되살려 낸 시체를 좀비라 불렀다.

물론 어떤 약물을 쓰든 시체가 되살아날 리는 없다. 당연히 미신이다. 그런데 이 미신에서 비롯된 좀비 이야기가 미국으로 전래돼 영화의 소재가 되면서 대중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영화는 1932년 드라큘라 등 수많은 괴기물로 이름을 떨친 벨라 루고시(Bela Lugosi) 주연의 <화이트 좀비>였다. 그러다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이라는 작품을 기점으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지고 수많은 아류작이 속속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장르물의 하나가 됐다.

밀라 요보비치(Milla Jovovich) 주연의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시리즈도 그 좀비물의 하나다. 2002년 첫 작품이 등장한 이래 2012년 올해까지 모두 5번째 시리즈까지 이어졌다.

<레지던트 이블>은 원래는 1996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바이오해저드(Biohazard)>라는 게임이 원작이다.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만들어진 만큼 고전 좀비물들과는 달리 SF적 모티브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단순한 괴기성이 아니라 액션물적 성격도 두드러진다.

이성 없는 대중사회에 대한 풍자와 은유

주목되는 건 좀비라는 존재의 특성이다. 처음에는 시체가 되살아났다는 공포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 본격적 장르가 되면서부터는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으면서 극단적인 공격 본능만 남은 야수적 존재로서의 위험성으로 강조점이 이동했다. 요즘 시쳇말로 하자면 ‘무뇌(無腦)’의 무리다.

사실 좀비물은 영화사적으로 20세기 들어 본격화된 대중사회에 대한 은유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이성적 판단과는 때때로 심대한 거리를 보이는 대중적 심리와 행태를 풍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행태를 힐난하는 데 좀비라는 표현이 종종 쓰이곤 한다.

현실에서는 당연히 시체가 되살아나 공포를 주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똑똑하고 냉정해진 관객들은 단순히 시체가 되살아났다는 정도에는 더 이상 공포물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귀신물에도 반응이 없는 21세기 관객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좀비물은 끊임없이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다. 야수적 욕망만 남은 생각 없는 무뇌의 무리가 떼를 지어 휩쓴다는 모티브에 공명하는 것이다. 이성을 잃은 떼를 지은 무리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신 SF적 좀비물인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선 주인공이 그 무서운 좀비 떼들을 무찌르는 액션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늘한 공포를 모티브로 한 납량이 아니라 ‘현존하는 악마’의 무리를 쳐부수는 쾌감에 공감한다는 얘기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좀비 같은 행태는 없는가? 그런 게 있다고 느끼는 만큼 그것을 제압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강할 것이다. (미래한국)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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