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식인들은 '지도'를 보고 있는가?
한국 지식인들은 '지도'를 보고 있는가?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2.12.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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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의 <지리의 복수>(The Revenge of Geography)를 읽고
 

지난 13일 중국 항공기가 센카쿠 열도 상공에 진입해 들어가고, 이에 맞서 일본 자위대 전투기 8대가 출동해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센카쿠 열도를 장악하려는 중국 정부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뤄진 사건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중국은 난징사건 75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반일 캠페인을 전개하며 센카쿠 열도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센카쿠 열도의 중요성은 지도만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바다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그리고 오키나와, 센카쿠 열도, 대만에 의해 막혀 있는 형국이다.

즉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센카쿠 열도의 확보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중국은 결사적으로 센카쿠 열도를 확보하려는 반면, 미국은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계속 확보하고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입장은 어떠한가? 센카쿠 열도 문제는 중국과 일본의 문제일 뿐 우리와 상관없는 것일까? 역시 지도를 들여다보자.

센카쿠 열도가 중국 손에 들어갈 경우 말래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생명선인 석유 수송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제주도 해군기지와 이어도 문제도 이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역시 지도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1989년 냉전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미국의 독주시대’가 열렸었다. 이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역사가 마감됐다는 ‘역사종말론’(프랜시스 후쿠야마)이 설득력을 확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종말론’은 2001년 9·11사건 이후 힘을 잃어버리게 됐으며 그 대신에 ‘문명충돌론’(사무엘 헌팅턴)이 급부상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문명 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 향후 세계사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최근 풍향이 다시 바뀌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중동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동안 숨을 죽이고 힘을 기르고 있었던 중국이 드디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조응해 ‘힘의 정치학’(Power Politics)과 지정학(Geopolitik)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도 이러한 흐름의 반영이다.

지정학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특히 알프레드 마한(Alfred Mahan)에 대한 열풍이 중국 지도부와 중국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한은 해양을 장악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논리를 체계화시킨 지정학자이다. 이러한 마한의 논리에 따르자면 중국은 대양으로 진출해야만 한다.

현재까지 중국은 내륙국가이며 바닷길은 사실상 막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의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 중국은 1993년 이후 원유 수입국으로 전환됐으며 산업성장과 함께 날이 갈수록 석유 수입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석유수송로가 막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말래카 해협을 봉쇄해 버릴 경우 중국은 손을 들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가 미국에 의한 일본 원유수송로 봉쇄였다. 일본의 중국침략에 대응해 미국이 일본의 원유수송로를 봉쇄하자 이를 확보하기 위해 도발한 것이 진주만 공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중국은 남중국해의 하이난 섬을 해군기지로 개발하고 있다. 이곳에 잠수함 기지를 만들고 대함 미사일을 배치한 것이다. 서사군도(Paracel Islands)와 남사군도(Spratly Islands) 등을 놓고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과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이 지역에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원과 해양 수송로 문제 때문이다.

바닷길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강력한 의지는 인도양에 우호적인 항구를 확보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에서도 잘 드러난다. 현재까지 중국은 파키스탄의 그와다르(Gwadar), 스리랑카의 함반토타(Hambantota), 방글라데시의 치타공(Chittagong), 미얀마의 차우크퓨(Kyaukpyu) 등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국가에 경제지원 등을 약속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이 알프레드 마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관심을 갖는 이론가는 줄리앙 코르벳(Julian Corbett)이라고 로버트 카플란이 <지리의 복수>에서 지적하고 있다. 코르벳도 마한과 함께 해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략가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영국 해군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코르벳은 당시 영국의 해군력을 반영해 1국 해군이 아닌 ‘해군연합’(Naval Coalition)에 의한 제해권 확보를 주장한 점에서 마한과 다소 입장 차이를 보인 인물이다. 냉전 기간 중 미군함은 약 600척이었다. 그런데 90년대 동안 350척으로 줄어들었으며 현재는 280척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조만간 250척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미국으로 하여금 미 해군 단독에 의한 제해권 확보보다는 동맹군과의 해군연합을 통한 제해권 확보를 선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 미국은 어떤 국가들과 해군연합을 구성하려 하는가? 일본, 호주, 싱가포르, 인도 등이 그 주요 대상국들이다. 문제는 한국인데 카플란은 이 저서에서 한국은 친중국 경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에 이러한 해군연합으로부터의 배제 가능성이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

또 카플란은 최근 미국 지도부가 오세아니아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는 중국의 이른바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을 인정하고 방어선 혹은 봉쇄선을 보다 후방에 배치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 지도, 아니 아시아 지도를 펼쳐 놓고 앞에 지적했던 내용들을 검토해 보자. 그리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정학적 위치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숙명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게 규정된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거대한 중국과 이웃하고 있으며 이러한 거대 중국은 급성장하며 패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안보의 버팀목이었던 미국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감소되고 있으며 중국의 이른바 제1도련선(여기에 한반도가 포함돼 있음)을 중국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으로 묵인하려는 시도마저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힘의 역관계의 변화를 감지한 일본 지도부는 이른바 ‘정상국가론’에 의한 재무장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필리핀 외무장관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에 찬성한다고 발언한 내용도 이러한 지각변동에 대한 대응방식의 하나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해 생존전략을 강구하기는 커녕 논의조차 부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진왜란을 당하고도 국제정세에 눈을 감고 내부 당파싸움에만 몰두하다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당한 역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들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날려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 오늘날 배웠다는 자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부족하다고 울부짖곤 한다. 그러면서도 친중국적 태도를 보인다. 그렇게 열렬한 민주주의자들이 어떻게 친중국적 입장을 보일 수 있는지...

부국강병을 멀리하고 탁상공론만 일삼던 주자학자들의 후예답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욕일까? 욕 중에서 가장 듣기 싫은 욕이 ‘화냥년’이란 욕이다. 다행히 요즘 젊은 세대는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조금 나이가 든 세대에서는 많이 사용하던 욕 중의 하나이다.

이 욕은 ‘환향녀’(還鄕女)에서 나왔다. 병자호란 때 만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인들을 가리킨 말이었다. 이 불쌍한 여인들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들의 위선적 남성우월주의를 탓하며 자결했어야 했을 사람들이 이 여인들에게 욕하는 꼴과 비슷한 행태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연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아파트 벽에 걸려 있는 세계지도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매일 아침 보는 지도이건만 오늘 유독 새로워 보였다. (미래한국)

황성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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