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정치'는 이제 끝!
'극장 정치'는 이제 끝!
  • 이원우
  • 승인 2012.12.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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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극장가 화제작 3편: <원데이>, <호빗: 뜻밖의 여정>, <레 미제라블>


한동안 극장가에는 정치색이 완연했다. 대선 때문이었다. <남영동1985>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내 영화가 선거에 영향을 끼친다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할 정도였다.

진보적 성향을 띠고 있는 영화들이 일대 홍수를 이룬 가운데 5.18 희생자 2세들의 복수극을 다룬 <26년>은 개봉 2주 만에 관객 200만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하지만 대선시즌이 종료되면서 이와 같은 경향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시즌을 겨냥한 할리우드 대작들이 속속 공개됐기 때문이다. 화려한 캐스팅과 탄탄한 각본으로 무장한 이 영화들의 중점은 오직 하나 ‘엔터테인먼트’에 맞춰져 있다. 연말 개봉작 중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세 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연인과 함께 - <원데이(One Day)>

이 영화에서의 ‘원 데이’는 7월 15일이다. 영화에는 오직 7월 15일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점이 1988년부터 2011년까지로 다양하다. 영화는 주인공 엠마(앤 해서웨이)와 덱스터(짐 스터게스)의 모든 ‘7월 15일들’을 조명하며 20년 넘게 이어지는 둘의 인연을 조명한다.

소설가를 꿈꾸는 엠마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기회와 권태로운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며 지난한 하루하루를 견딘다. 반면 덱스터는 TV프로그램 사회자로 인기와 명성을 얻으면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는다.

두 사람은 베스트 프렌드로서 지속적인 교류를 하지만 좀처럼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점차 역전되고, 각자 삶의 다양한 질곡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전개가 시작된다.

재미 있는 점은 영화가 7월 15일을 비추면서도 이 날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삶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이 7월 15일에만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는 점을 영화는 잘 이해하고 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방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도 한다.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론 쉐르픽 감독은 스물 네 가지 7월 15일의 완급을 훌륭하게 조절하며 밀도 있는 스토리를 완결지었다.

2001년 공개돼 많은 인기를 얻었던 일본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와 2004년 개봉했던 멜로 영화 <이프 온리>를 섞어놓은 느낌이지만, 자못 의외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어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를 완성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친구와 함께 - <호빗 : 뜻밖의 여정>

오랫동안 영화팬들의 기대감을 자극해 온 <호빗 : 뜻밖의 여정>이 드디어 공개됐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배우들보다도 더 명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이 영화의 원작자인 J.R.R. 톨킨과 감독인 피터 잭슨이다.

<반지의 제왕>으로 영화사에 남을 역작을 완성시킨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호빗> 시리즈로 다시 한 번 기나긴 도전을 시작했다.

언제나 최첨단 기술에 가장 도전적인 태도를 보여 온 피터 잭슨은 이번 작품 <호빗 : 뜻밖의 여정>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1초에 24프레임이 흘러가는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리 <호빗 : 뜻밖의 여정>은 영화 역사상 최초로 초당 48프레임으로 촬영(HFR : High Frame Rate)됐다.

이로 인해 인물들의 움직임이 2배로 세밀하게 표현되면서 화면 역시 마치 대형 HDTV를 보듯 선명해졌다는 평가다. 여기에 아이맥스와 3D까지 덧입혀지면 가히 신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 마니아들의 평가다. 이미 인터넷에는 2D, 3D, 4DX, 아이맥스 등 이 영화의 다양한 버전들에 대한 ‘체험기’가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스토리’의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원작소설 <호빗>은 <반지의 제왕>에 비하면 양적·질적 측면에서 가볍게 집필된 동화(童話)다.

그런데 피터 잭슨은 <호빗>에 대해서도 전작과 똑 같은 농도의 영화화를 시도했다. 영화 <호빗 : 뜻밖의 여정>은 ‘호빗 시리즈’의 3부작 중 하나이며 러닝타임은 무려 169분이다.

볼거리가 풍성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까지 길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다는 평가가 대세를 점한 가운데 <호빗: 뜻밖의 여정>은 개봉일(13일) 하루에만 20만 명의 관객이 들어차며 일단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가족과 함께 -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2004년 개봉했던 <오페라의 유령> 이후 오랜만에 온 가족이 봄직한 대작 뮤지컬 영화가 개봉했다. 1987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이후 33개국에서 22개 언어로 번역되며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뮤지컬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것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영화의 화려한 캐스팅이다.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헬레나 본햄 카터 등 혼자서도 충분히 한 편의 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유명배우들이 총집합했다. 게다가 감독은 <킹스 스피치>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톰 후퍼. 한 마디로 검증된 작품에 검증된 인물들이다.

<호빗: 뜻밖의 여정>이 시각적인 부분에 충실했다면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청각적 측면에 많은 신경을 쓴 작품이다. 일반 대사 없이 모든 내용이 노래로 처리되면서 ‘뮤지컬보다 더 뮤지컬 같은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우들이 “I dreamed a dream”, “What I have done”, “On my own” 등의 명곡을 부를 때에도 사전녹음을 하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노래하는 송 스루(song through) 방식을 택했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마치 브로드웨이 뮤지컬 한 편을 보다 친절한 화면과 함께 감상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158분의 긴 러닝타임으로 진행되지만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작품을 미리 체크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현실정치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극장 안으로 침투했던 ‘정치의 해’는 영화를 보기 전보다 보고 난 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 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다시금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즐길 시간이다. ‘극장 정치’의 계절은 지나가고, 새로운 쇼가 시작됐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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