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0년 후의 세계
30+70년 후의 세계
  • 이원우
  • 승인 2012.12.2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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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현실로 다가올 것

 
자신의 나이를 산정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태어난 날부터 계산을 하는 통상적인 방법이다. 이 기준을 적용했을 때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는 30세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예상수명을 기준으로 ‘살아갈 날’을 계산해 보는 것이다. 어려운 말로는 기대여명(期待餘命)이라고 한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20세의 기대여명은 남자 58.2년/여자 64.9년, 40세는 남자 39.0년/여자 45.4년, 60세는 남자 21.4년/여자 26.5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평균은 평균일 뿐이다. 오늘은 모처럼 기분을 냈으니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낙관론을 기반으로 기대여명을 짜 보도록 하자. 그렇게 하면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는 –70세가 된다. 올해 쉰 살인 사람은 -50세, 마흔인 사람은 –60세다.

그런데 나는 70년의 세월이 얼마나 긴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70년의 세월을 간접적으로나마 가늠해 보기 위해 현재 기준에서 70년 전을 짚어보면 된다. 즉, 나는 1942년부터 2012년까지의 세월만큼을 앞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1942년.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아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시기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지도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흘러 그쯤엔 한일합병 상태가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2차 대전이 3년 후 끝날 거라는 사실, 조선은 일제로부터 해방될 거라는 사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후 다시 전쟁을 치를 거라는 사실, 심지어 30년쯤 후에는 대한민국이 배고픔에서 해방될 거라는 사실을 말해봐야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놀라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70년이란 그만큼 긴 세월이다. 50년도, 40년도 마찬가지다.

17세기의 정치인이자 시인이었던 앤드루 마블은 시간을 두고 ‘날개 달린 전차처럼 달려오는 것’으로 표현했다지만, 사실 인간의 삶은 상당히 길고 먼 여정이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몇 번이나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파노라마인 것이다.

검은 백조에 대비하라

인생의 놀라운 사건들을 ‘블랙 스완’이라는 비유법으로 표현한 사람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였다. 백조는 으레 하얀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검은 백조의 출현은 패러다임 전환이며 불가역적 변화다. ‘백조=하얀 색’이라는 명제가 통하던 세상은 단 한 마리 검은 백조의 출현만으로도 산산조각 나고 마는 것이다.

나심 탈레브는 이와 같은 돌발적 사건들이 인생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므로 과거를 기준으로 미래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시오노 나나미 또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역사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재 한국인의 입장에서 북한 정권의 붕괴는 가장 치명적인 검은 백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정권은 세상에서 가장 불확실한 체제인 동시에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체제이기도 한 까닭이다.

한반도에 휴전선이 없었던 때가 어땠는지를 경험한 노년층의 숫자는 계속 줄고 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밖에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남한 사회의 대세를 점한 지 이미 오래다. 즉, 분단된 현실을 ‘정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지난 12월 12일 북한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지수가 1975까지 상승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지리적 거리와는 관계없이 현재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멀리 느낀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북한에 ‘검은 백조’ 한 마리가 뜨고 나면 이와 같은 태평성대(?)는 한 순간에 끝날 것이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에도, 김정일이 죽었을 때에도 오지 않았던 북한의 급변상황이 기어이 우리의 생애 안에서 발생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룰은 뒤틀리고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원칙에 충실하라

비단 불확실한 것이 북한만은 아니다. 동아시아 정세의 축이 둔중한 마찰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다. 넓게 봤을 때 각국의 세력균형이 바뀌는 것은 아주 명백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하는 우리의 입장에선 모든 게 낯설 뿐이다.

미국과 중국의 입지변화, 일본의 용틀임, 유럽의 몰락은 대한민국에 어떤 변곡점을 가져올 것인가?

하나하나의 변수를 전부 계산해서 모든 것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로 귀결된다. 검은 백조는 귀납적인 계산을 초월해서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대응이다. 즉,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둬야 한다.

이를 위해 결국 우리는 원칙주의자가 되기를 선택해야 한다. 기나긴 삶의 시간 동안 닥쳐올 격렬한 변화상에 일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순간순간의 정세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고 진영논리에 매몰돼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일은 당장은 영리한 선택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어리석다.

격렬한 역사의 파도를 감내하면서도 70년 세월을 버틸 수 있는 것은 결국 원칙 밖에는 없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모두 치러 ‘정치의 해’로 기억될 2012년과도 이제 헤어질 시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원칙과 멀어져 실리(實利)에 기울기 쉬운 한 해였다. 선거의 결과에 따라 여론이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12월의 뒤안길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인생이 매우 길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가 100세까지 살게 된다면, 우리가 앞으로 살아 나가야 할 세상은 지금까지의 것과는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므로 자기만의 원칙, 자기만의 이념은 꼭 필요하다. 그것은 각자의 마음속에 든든한 축으로 존재하며 격랑을 헤쳐 나가는 방향타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정작 70년 후에는 2012년이 어떤 시기였는지 기억조차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조차도 오롯이 지키고 있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다면 검은 백조보다 더 멋진 인생의 영광은 비로소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 한경닷컴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이원우 기자는 지난 12월 6일 개최된 ‘2012년 한경닷컴 올해의 칼럼니스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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