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화 여론, 어떻게 움직이나
대한민국 문화 여론, 어떻게 움직이나
  • 미래한국
  • 승인 2013.01.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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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의 미디어워치

최근 종영된 MBC <놀러와> 화면

“레미제라블을 보고 어떻게 ○○○ 후보를 찍을 수 있죠?” 지난 대선이 끝난 며칠 후 가까운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다. 의외였다. 최근 개봉한 영화 <레미제라블>이 도대체 대선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그전까지 대화의 내용은 주로 레미제라블이 얼마나 대단한가였다. 당연히 ‘주인공들의 감정표현 능력이 대단하다’ ‘많은 관객이 눈물을 보이더라’ 등의 말이 오갔다. 그런데 대선이라니.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말을 들은 지인들의 반응이다. 영화가 보여준 민중의 인권이나 기득권 타파에 대한 노력에 감동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대선에서 그들 말로 ‘반 민중, 독재권력’인 여당이 승리한 결과가 매우 실망스럽다는 것이었다.

참 희한한 연결이다. 실제로 그런가. 과연 영화 속 비참한 현실과 현재 우리나라 사회가 병치될 수 있을까? 영화는 물론 웬만한 상을 휩쓸만할 정도로 대단히 감동스럽고, 제목처럼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1830년대 초반의 왕정시대 프랑스와 2012년의 대한민국을 비교하는 건 좀 억지 아닐까? 영화에서 그날 먹을 빵이 없어 고통 받는 서민들이 ‘왕과 귀족의 노예에서 벗어나자’라고 외치는 대사를, 우리 현실에 대입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 비하’라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대한민국 국민=피착취, 독재정부의 희생양’이라는 등식이 우리 주변, 특히 문화계에서 의외로 공고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얼마 전 종영한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최근 이어진 만성적인 시청률 하락이 방송사가 밝힌 이 프로그램의 폐지 이유인데, 시청자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그나마 ‘시청률 만능주의다’ ‘경영진의 횡포다’ 라는 비판은 이성적인 편이다. 신기하게도 여기도 정치가 연결된다. 이른바 차기정권 때문에 역차별을 받았다는 음모론이다. 프로그램의 출연자인 은지원이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지원유세를 한 것이 문제가 되자, 권력의 눈치를 보는 방송사 경영진이 아예 프로그램을 종영시켰다는 말이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나라 정부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존폐까지 신경 쓰는, 매우 용의주도하고 문화계 전체를 주무르는 능력자인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대선 직전의 개봉영화를 보자. 1980년대 고문에 시달린 故 김근태 씨를 소재로 한 <남영동1985>와 5.18 희생자들의 복수를 다룬 <26년>이 11월 말에 잇따라 개봉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영화고 대선에 영향력을 줌직한 개봉시기였다. 게다가 개봉 첫주 상영관 수도 289관(남영동1985)과 609개(26년)로 정치 소재 영화로선 이례적인 대규모였다. 수많은 관객들이 대선 직전 이 영화들을 보고 과거 정권에 분개하고, 항상 그렇듯이 현 정부와 여당을 연결해 독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문화계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편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나왔나보다. 이 권력은 자기 영역에서 반대 여론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이문열 작가도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문화계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특정 진영의 ‘마녀사녕’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적어도 문화계나 온라인의 독재자는 정부나 여당이 아니다. (미래한국)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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