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괴담’은 언론의 자유인가?
‘선거괴담’은 언론의 자유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1.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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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와 네티즌모임인 ‘선거소송인단 모임’이 4일 오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 및 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일부 시민들은 광화문 앞에서 촛불시위를 열기도 했다. 시위 현장에는 “문재인이 대통령입니다”라는 피켓도 등장했다.

이들은 “투표분류기, 심사집계에서 의혹이 발생했고 급기야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수개표재검 요구가 확산됐다”고 주장한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마련된 ‘수개표 청원’에는 20여만명이 서명했다.

개표조작, 부정집계 등 선거무효의 원인으로 제기하는 주장들은 이미 여러 언론사들을 통해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민주당 윤관석 원내대변인이 “후보가 결과에 승복했다. 선관위가 법과 원칙에 맞게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발표했음에도 지지자들은 쉽게 승복하지 않고 있다.

작가 이문열씨는 이러한 현상을 ‘불복의 구조화’라고 진단한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이 광우병 촛불 집회로 국정 무력화에 성공했던 그 수법을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물론 집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란 패배한 쪽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매몰비용 효과’라고 한다. 더 이상 소용이 없음에도 이제까지 들인 돈과 노력이 아까와 포기하지 못하는 행동을 말한다.

하지만 선거무효 소송이 있기까지 인터넷과 SNS를 통해 등장한 부정선거 ‘괴담’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이었다기 보다는 고도로 계산된 유언비어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선거 개표조작 부분은 ‘로지스틱 함수’라는 일견 그럴 듯한 통계모델까지 등장해 온라인 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 부분 역시 전문가들에 의해 ‘터무니없는 착오’로 밝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 주장은 개표부정의 근거로 트위터와 인터넷에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고의적 루머폭탄(rumor bomb)은 사회적 범죄 행위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괴담들은 왜 생겨나고 유포되는 것일까. 단지 루머에 불과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루머는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사이버공간에서 고의를 가진 여론조작(manipulating), 사실왜곡(spin), 선동(propaganda)에 의해 소위 ‘음모론’으로 발전해서 집단행동화, 사회병리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초반 미국의 법학자들 사이에서는 루머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명예훼손 등과 같은 사법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인지 연구가 시작됐다.

그 결과 2006년, 정치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 해리슨과 같은 학자들은 루머가 인터넷, 핸드폰, 라디오, TV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산, 수렴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루머폭탄’(Rumor Bomb)으로 명명했다.

루머폭탄은 특정한 정파와 정치적 신념을 가진 그룹이 자신들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거나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유포된다. 루머폭탄은 대개 고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일부 사실만을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고, 허위사실을 그럴 듯하게 날조하기 위해 유포자 자신을 익명의 전문가, 권위자로 포장하기도 한다.

아울러 루머폭탄은 구전으로 전파되기 보다는 인터넷, TV 등 미디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고 '정보'로 포장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연구진들은 밝혀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루머폭탄에는 제조자, 운반자, 사용자 등의 역할분담이 있으며 인터넷과 TV방송, 뉴스, 토크쇼 등의 미디어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순환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천안함 괴담으로 등장했던 '천안함 美자작극설’은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이라 불리는 전조선신보 기자 김명철의 홍콩발 <아시아타임즈>의 기고로 시작됐고 동시에 '제2의 통킹만사건’ 주장은 반미주의로 '크레믈린의 치어리더’라 불리는 <러시아 투데이>의 사기 저널리스트 '웨인맷슨’의 인터뷰를 국내 특정세력이 홍보하면서 시작됐다.

본지 <미래한국>은 당시 천안함 괴담의 진원지를 추적해 그 배후에 북한의 해외공작 전담부서인 ‘통전부 26호’실이 개입되어 있음을 단독으로 보도한 바도 있다.

언론의 자유 아닌, 공동체 파괴행위 처벌해야

심각한 문제는 국내 언론사들이 이러한 불순한 목적의 괴담을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보도하는 관행과 다음, 네이버와 같은 포털들이 이러한 괴담유포를 공익적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방조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의적 '루머폭탄'은 한 공동체의 기반을 와해시킬 수도 있는 내부테러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보아 넘길 문제가 결코 아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루머와 이러한 고의적 루머 폭탄을 판별하려면 전문가들이 나서야 하지만, 우리 사회에 그러한 역할을 하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앞으로 공공적 차원에서 다뤄질 필요가 제기된다.

유행성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보건 당국에서 주의보를 발령하고 예방과 방역에 나서듯이 이러한 고의적 루머폭탄의 등장에 대해서도 검토와 경보, 방역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세계 어느 나라에든 루머는 있게 마련이고 또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루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부정적인 기능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 내는 긍정적인 소통의 기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루머가 고의적인 사실왜곡(Spin)이나 불법적인 여론조작(Manpulation)을 통해 소위 '루머폭탄’(Rumor Bomb)으로 작용할 경우, 그 사회와 구성원이 입는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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