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KF를 기대하며
YKF를 기대하며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1.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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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미국 메디슨 스퀘어에 1만8천명의 대학생들이 집결했다.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Young Americans for Freedom, YAF)이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놀랐다. 대학생 하면 좌익 혹은 진보, 아니면 최소한 리버럴(liberal)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이었다.

YAF의 등장은 미국 보수주의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이었으며, 그동안 소수 인텔리에 의해 주도되던 미국 보수주의운동의 대중화가 시작된 지점이기도 했다.

YAF는 베리 골드워터가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또 1969년 보수주의자와 리버테리안(libertarian) 간의 내부 갈등으로 조직이 분열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 레이건 보수주의 혁명의 씨앗이 YAF에 의해 뿌려졌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이건 행정부와 이를 지원하는 싱크탱크, 그리고 보수주의 시민단체는 ‘YAF 동창회’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기 때문이다.

YAF는 하루아침에 건설된 조직이 아니다. YAF는 1960년 11월 9일 미국 코네티컷주(州) 샤론에서 조직된 보수주의 학생운동 조직이다.

이때 이들이 채택한 ‘샤론 성명’(Sharon Statement)는 훗날 좌익에 의해 ‘보수주의 선언’(공산주의자들의 ‘공산당 선언’에 빗댄 명칭)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 보수주의운동의 기념비적 문서가 됐다.

이 당시 YAF 조직을 사실상 지도, 후원해 준 인물과 조직은 ‘미국 보수주의의 대부’ 윌리엄 버클리와 그가 이끄는 격주간지 <내셔널리뷰> (1955년 창간)였다. <내셔널리뷰>는 일찍이 보수주의 학생운동 조직 건설에 힘을 집중했다. 젊은 보수주의자들을 교육하고, 또 이들의 사회 진출을 도왔다. 그 결과물이 YAF였다.

YAF의 기원은 <내셔널리뷰>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다. 1947년 헨리 레그너리가 설립된 ‘레그너리 출판사’가 바로 그것이다. 출판시장이 좌익과 리버럴에 의해 장악된 현실을 개탄한 기업인 레그너리가 자신의 이름을 딴 출판사를 창립한 것이었다.

이 출판사에서 출판돼 나온 보수주의 서적들을 무기로 젊은이들의 두뇌를 되찾아 오기 시작했다. 윌리엄 버클리도 레그너리 출판사 책을 읽고, 또 이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저서를 출판하면서, 보수주의운동에 데뷔했다. 그리고 미국 보수주의운동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서의 <내셔널리뷰>를 창간하고 YAF 창립을 후원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루이스 파월 메모(1971)의 역할도 미국 보수주의 학생운동에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미국 대학가의 반(反)시장주의 상황에 대한 파월의 현장 보고는 미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경종을 울렸으며 이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끌어내게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노력들이 합쳐지면서 1980년 레이건 보수주의 혁명이 완성된 것이다.

2013년 무엇을 할 것인가? ‘자유를 위한 젊은 한국인’(Young Koreans for Freedom, YKF)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판 레그너리 출판사, 한국판 파월 메모 등이 필요할 것이다. (미래한국)

황성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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