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워의 조건
팔로워의 조건
  • 이원우
  • 승인 2013.01.17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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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오후 2시. 낯선 이름의 회사 하나가 포털사이트 검색창을 점령했다. 제니퍼소프트. 성능관리 솔루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IT 벤처 회사다. 비상장 중소기업으로 재무제표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이 회사가 그날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복지’다.

제니퍼소프트는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사원복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혼자 쉬는 시간과 수영하는 시간조차 근무시간에 포함시키고, 파주 헤이리마을 사옥에는 카페와 고급식당이 내점해 있으며 남녀 공히 출산지원금 1,000만원을 지급받는다. 여성의 경우 산전후 휴가 및 1년 육아휴직을 보장받는다. 네티즌들은 ‘꿈의 직장’, ‘신의 직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에게 이 꿈의 직장을 소개한 곳은 SBS였다. 그런데 프로그램 이름이 재미 있다. 제니퍼소프트와 이원영 대표를 소개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착한 성장 대한민국-리더의 조건>이었다. 결국 한국인들은, 그 중에서도 인터넷과 가까운 사람들은 복지를 제공하는 사람이야말로 리더의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이원영 대표는 어떤 리더일까. 트위터에 방문해 봤다.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평등적 자유가 허용된 사회.’
‘건강한 노동과 근사한 삶을 더불어 누릴 수 있기를…….’
‘첫 눈 오면 놀자고 했지요. 사락사락 내립니다. 포들포들 내립니다. 업무 중단하고 다들 놀아요….’

복지가 취업의 이유인가?

어떠한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지 대충 감이 오려던 찰나, 트위터 상단의 자기소개 문구에는 ‘복지/공동체/사회적책무/진보/노무현/이정희’ 등의 문구들이 적혀 있어 한결 판단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낯선 남자에게서 안철수의 향기를 느낀 기분이었다.

‘함께’, ‘복지’, ‘유토피아’ 등의 단어를 좋아하는 이원영 대표를 성급하게 ‘안철수 취급’할 필요는 없다. 그에게는 자기 소신대로 기업을 경영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어차피 IT기업 개발인력의 경우 1년 내내 바쁠 필요는 없다. 개발 기간에 집중적으로 노력을 투입한 뒤 나머지 시간은 설계와 유지보수로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니퍼소프트와 이원영 대표의 한 가지 사례를 ‘리더의 조건’으로 일반화하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이원영 대표처럼 하지 않으면 리더의 조건을 상실한 것인가? 복지가 취업의 이유인가? 리더는 복지를 ‘시혜’하는 존재인가?

1990년대 초반 WTO 반대시위를 하다 3개월간 옥살이를 한 이력(혹은 경력)도 있다는 이 대표는 “복지는 그냥 복지”라며 “근무시간에 좀 놀면 안 되나요?”라는 천진난만한 도발을 이어간다. 이쯤 되면 한창 남과 자신을 비교하기 좋아하는 청년들이 ‘저런 회사 어디 없나’ 기웃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구직 때는 집단주의, 일할 때는 개인주의?

7일 하루 동안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제니퍼소프트에 뜨거운 관심을 보인 청년들의 모습에서는 한 가지 의혹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 기재하는 자기소개서가 전부 거짓말일 가능성이다.

“언제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일하는 사원이 되겠으며 귀사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자랑스러운 글로벌 인재로서 고군분투…”

자기소개서는 집단주의자처럼 쓰지만 막상 취업해 들어가서는 개인주의자로 ‘변신’할 준비가 이미 끝난 상태인 것은 아닌가?

재미 있는 것은 많은 수의 청년들이 심지어 철저한 개인주의자조차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취업에 대해서 가장 신뢰를 얻고 있는 속설 중 하나는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명제다. 처음에 최대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이직 때 협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이름 아닌 회사의 이름으로 한몫 크게 해먹어 보겠다는 심보의 다른 표현이라면, 과연 그들이 복지와 공정거래를 운운하고 사회 정의를 논할 자격이나 있는 것일까?

‘리더의 조건’보다 ‘리더의 입장’

최근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권에는 <언니의 독설>이라는 책이 랭크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식은 별로 없지만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는 풍부한 책이다. 특히 CEO의 속마음을 묘사하는 부분이 생생하다.

“약간 미안한 연봉을 주면 나는 그 직원한테 어떻게 보상할까 생각해. 그가 조금 잘못해도 일단 덮을 거야. 그런데 그 돈 아니면 죽어도 일 못하겠다고 하잖아? 그럼 결국 주긴 줘. 대신 그때부터 감시의 눈으로 보지. 그러다 ‘동급 최강’의 인재들을 발견하면 마음이 흔들리는 거야.

결국 자기가 받을 연봉보다 200만~300만 원을 더 받으면 그 순간부터 ‘대체 가능한’ 인력이 되는 거야. 연봉은 항상 자기가 받을 돈보다 약간 적게 받아야 배울 게 많고 사랑받고 감시받지 않아. 훨씬 더 편하고 당당하게 일할 수 있어. 지금은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줄 섰는데 몇 백에 목숨 걸지 말란 말이야.”

‘리더의 조건’을 따지고 있는 청년들이 먼저 따져야 할 것은 ‘팔로워의 조건’이다. 철저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자신이 어떤 팔로워가 될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뒤 취업을 하고 나면 적당히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배려하면서 집단주의자의 흉내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시 말해 지금의 패턴을 완전히 반대로 바꿔야 하는 셈이다.

자본주의의 묘미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언제나 상대방의 생각을 고려하도록 유도한다는 데 있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라”고 케네디는 말했지만, 복지는 결코 수영장 속에 있는 게 아니다. 어떤 팔로워가 될 것인지를 고민하며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그 과정 속에 진정한 행복과 복지는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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