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때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함께 있을 때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 이원우
  • 승인 2013.01.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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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부부 세 쌍의 아주 특별한 2인 3각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원소기호는 모두 C, 즉 탄소(Carbon)다. 그런데도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회적 원자>를 저술한 마크 뷰캐넌은 “때로는 원소 자체보다 원소 간의 패턴이 더 중요하며 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즉, 때로는 사람 자체보다 ‘관계’가 더욱 결정적일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관계는 아마도 부부(夫婦)일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의 파트너가 있기에 인간은 두려움 없이 신념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세 쌍의 부부가 있다. 한명숙-박성준 부부, 이정희-심재환 부부, 김재연-최호현 부부. 대한민국의 헌법이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나아가 북한정권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온 이들 ‘진보적 부부’의 2인 3각 레이스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원조의 무게감! 한명숙-박성준 부부 (결혼 46년)

진보적 부부의 원조격인 한명숙-박성준 부부는 1967년 결혼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시련은 너무도 빨리 왔다. 결혼 6개월 만인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남편 박성준이 구속되면서 한명숙의 장장 13년간의 옥바라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사연은 두 사람의 책 <사랑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에도 잘 드러나 있다.

통혁당 사건은 역사상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다. 북한의 대남공작사업에 의해 결성된 통일혁명당의 실세 김종태는 북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남파된 거물간첩이었다. 그는 前 남로당원, 학생, 청년 등을 대량 포섭했으며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할 것을 계획했다.

박성준은 위에서 언급된 ‘학생’ 중 하나였다. 북한은 김종태를 포섭했고, 김종태는 김질락을, 김질락은 신영복을, 신영복은 박성준을 포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명숙 역시 박성준에게 ‘포섭’된 것일까? 법원이 박성준에게 15년형을 선고할 때 ‘한명숙을 포섭한 혐의’를 적용하긴 했지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명숙 역시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1979년 광주교도소에 수감, 2년 6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그러나 고난의 시간은 흘러가고 정치인이 된 한명숙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같은 시기 박성준은 ‘평화의물결’이라는 NGO의 대표 자격으로 평택에서 반미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명숙은 국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북한 나름대로의 국익”이라고 했으며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6‧15공동선언 실천의 걸림돌”로 표현한 바 있다.

권력의 정점을 경험한 ‘진보적 부부의 좌장’답게 발언 하나 행동 하나에도 무게감이 실린다. 후배 부부들이 따라올 수 없는 널찍한 거리감을 이미 확보한 것이다.

떠오르는 에이스! 이정희-심재환 부부 (결혼 15년)

“1996년 말 3차 면접시험을 보러 사법연수원에 갔어요. 멀리 한 남자가 서 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 아직도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국회의원 이정희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남편 심재환을 일컬어 한 말이다.

‘신념의 아이콘’인 이정희가 반할 정도로 심재환은 심지가 굳은 남자다. KAL858기를 폭파한 김현희가 가짜라고 주장했던 2003년 MBC PD수첩에서 “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다. 그렇게 딱 정리를 합니다”라고 했던 그의 발언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심재환 어록’으로 면면이 계승되고 있다.

말로만 진보를 지향한다면 포퓰리스트일 것이다. 심재환은 변호사 활동에서도 면밀한 일관성을 지켜 왔다. 이석기의 민혁당 사건, 송두율 사건, 일심회·왕재산 사건, 최호현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등에서 변호사 역할을 맡은 것은 언제나 심재환이었다.

최호현을 변호하면서 심재환은 “북한은 무력 남침, 적화 통일정책을 포기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정희와 11년의 나이차를 넘어서 2인 3각의 행보를 이어가는 데는 이처럼 굳은 신념의 공유가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동반적 행보는 자동차가 아니라 도보로만 진행돼야 한다. 심재환은 이정희가 대선 출마선언을 하기 전날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면허를 취소당했기 때문이다. 혈중알콜농도가 0.114%에 이르렀으니 그날 일이 잘 기억나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그에겐 지지율 1%의 부인이 있으니 두려울 것은 없다. 사랑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제나 신혼처럼! 김재연-최호현 부부 (결혼 3년)

선배 부부들의 연륜과 신념을 합친 뒤 젊은 감각을 입히면 김재연-최호현 부부를 만나게 된다. 김재연은 또 다른 ‘신념왕’ 이석기와 함께 2012년 봄을 종북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서 국정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재연은 국보법 위반혐의로 3년 동안 도망을 다닌 ‘스펙’을 갖고 있다. 반값등록금 집회를 주최한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KBS에 출연해서는 “북의 체제를 인정하지 말자는 것은 전쟁하자는 것”이라고 말하며 ‘헌법에서 자유로운 영혼’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녀와 2010년 결혼한 남편 최호현은 ‘자본주의연구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경제공부가 아닌 김일성 공부를 했다가 2008년 9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이 조사에서 최호현은 김일성 회고록 등 이적표현물 90여건을 소지 및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8~2009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 용산 시위 등 불법 시위에 여러 차례 참가했으며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방문해서는 “2012년 대선을 거치면 통일이 가깝게 다가올 것”이라는 달뜬 심경을 표출한 적도 있다.

그의 신념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과 보호관찰로 얼룩지는 동안 이정희, 조국, 김여진, 강풀 등은 최 씨에 대한 응원의 멘션을 보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유명 인사들이 보내는 트윗보다 더욱 힘이 된 것은 부인 김재연의 꿋꿋한 행보가 아니었을까.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휘날리며 함께 걷는 그녀가 있기에 최호현은 오늘도 외롭지 않다.

어디 이들 부부 뿐이랴. 세 부부는 오늘도 다리에 다리를 묶고서 달려간다. 교칠지교, 남부여대, 부창부수. 목적지는 ‘그들만의’ 통일이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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