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세상에서 가장 큰 박물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세상에서 가장 큰 박물관
  • 이원우
  • 승인 2013.01.31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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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바티칸 박물관전> 호평
 

1506년 1월의 바티칸.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근처의 포도밭이 술렁거렸다. 1600년 전 고대 로마제국의 목욕탕 유적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목욕탕 유적만큼이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뉴스는 따로 있었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라오콘과 두 아들이 자신들을 죽이려는 뱀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 ‘라오콘 군상’이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오 2세는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자 전문가들을 파견했고 포도밭 주인으로부터 조각상을 사들였다.

발견되기 전부터 ‘역사상 최고의 조각’이라고 불린 이 작품을 궁금해 하던 대중들을 위해 교황은 바티칸 벨베데레 정원에 전시공간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바티칸 박물관’의 출발점이 됐다.

종교색 짙은 ‘예배당 같은 전시장’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진행되고 있는 <바티칸 박물관전>은 그야말로 ‘박물관’에 대한 전시회다.

면적이 0.44㎢에 불과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불리는 바티칸 시국의 박물관에서부터 73점을 공수해 펼쳐놓은 기획 전시전으로, 바티칸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국내 최초다.

이탈리아 내부에 있는 작은 시국(市國)이긴 하지만 교황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는 바티칸의 강점은 박물관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힐 만큼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예술적 깊이나 상징성의 측면에서 단일 박물관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묵직함을 갖고 있는 까닭에 바티칸 박물관은 그 자체로 ‘문화 환경유산’의 지위를 획득하며 항상 복수형(Musei)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바티칸 박물관 본연의 웅대한 스케일에 비하면 이번 전시회는 빙산의 일각이겠으나 예술의전당은 이번 전시회에서 바티칸의 종교적 정취를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부터 전성기(14~16세기)에 이르는 예술품들을 들여온 이번 전시회에서는 예배당을 방불케 하는 엄숙함이 감돈다.

‘3대 천재’들의 아우라

본 전시회에서는 르네상스의 3대 천재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아시아 최초로 공수된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 중 하나다. 작품의 의뢰인과 제작 목적이 확실치 않은 이 작품은 군데군데 미완성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결성을 자랑하며 많은 군중들을 멈춰 세우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주요 작품으로는 <피에타>가 전시돼 있다. 성모 마리아의 몸이 예수보다 훨씬 크고 젊게 그려져 작품 제목처럼 ‘비탄’과 ‘슬픔’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미술사의 걸작이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자신의 서명을 남긴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이 작품을 ‘청년’ 미켈란젤로가 만들었음을 도저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켈란젤로는 ‘라오콘 군상의 진짜 작가’라는 위작(僞作) 논란에도 휩싸인 바 있다. 이번 전시는 두 작품을 동시에 접하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그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마지막 천재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은 믿음-소망-사랑 3연작 중 <사랑>이다. 앞의 두 작가들에 비해 소담한 목판 작품이지만 사랑의 상징인 불 항아리, 자선을 상징하는 동전그릇이 디테일하게 묘사돼 있어 유심히 살펴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들 세 천재의 활동은 르네상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출현시킴과 동시에 후배작가들로 하여금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며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말을 태생시키기도 했다.

그 밖에도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와 아기 예수>, 멜로초 다 포를리의 <비올라를 연주하는 천사>,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난파하는 배를 구하는 성 니콜라스> 등의 작품 앞에는 평일 낮 시간에도 방학을 맞은 학생 관객들이 많은 성원을 보내고 있다.

그림과 조각 뿐 아니라 바티칸의 각종 성물(聖物)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이번 전시의 즐거움 중 하나다. 주요 작품에 한해서는 배우 손현주의 음성으로 지원되는 가이드를 유료 대여할 수 있으며, 전시회는 3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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