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권력을 꿈꾸는가
미디어, 권력을 꿈꾸는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2.12 15: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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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시즘을 연구하다가 뜻밖에 자본주의 현대사회의 중요한 단면을 발견한 프랑스의 철학자가 있었다. 장 보드리야르.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로 이름을 떨쳤던 보드리야르는 생산이 아닌 현대의 소비사회를 연구하면서 실재가 아닌 모사(模寫),

즉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수립한다. 그의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적 세계는 대중매체, 인터넷과 사이버 문화의 시대를 해석하는 탁월한 이론 틀이 됐다.

1991년 보드리야르가 “걸프전은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며 일으킨 철학적 논쟁은 현대 지성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CNN와 같은 미디어에서 일어난 걸프전은 기호들로 이뤄진 이라크戰의 모사물(simulacra)일 뿐이며 실제 이라크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즉 기호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미지는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하이퍼 리얼리티’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으며,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보드리야르의 이러한 주장은 미디어가 가진 편집과 해석이라는 권력이 바로 우리의 현실을 규정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미디어는 메시지’이며, 동시에 ‘마사지’라고 했던 맥루한의 주장을 보드리야르는 더 한층 명료하게 보여준 것이다.

뉴스는 현실이 아니라 편집된 메시지다

우리는 자고 일어나면 온갖 뉴스로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그러한 뉴스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편집되고 해석된 메시지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의 인터넷 댓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처음 시작부터 전개되는 과정에서 정파성을 띤 매체들의 무수한 편집과 해석들로 인해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길이 없어져 버렸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실체의 모사물, ‘국정원녀’라는 기호가 만든 시뮬라크라로 인해 우리는 ‘국정원의 대선 여론조작’이라는 메시지속의 하이퍼 리얼리티, 즉 가상세계를 헤매고 있는 중이다.

미디어는 그러한 의제설정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 기원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디어의 기원을 기원전 15000년경 알타미라 동굴벽화로 소급하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동굴 벽에 붉은 물감으로 그려진 야생 소들은 바로 현실에서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 메시지였다.

그래서 사냥을 떠나기 전에 부족의 남성들은 그 벽화를 보며 용감했던 조상들을 기억하고 부족의 번영을 다짐하는 비전을 공유하게 된다. 바로 미디어가 갖는 사회통합의 기능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 대한민국 미디어들은 그러한 사회통합이 아니라 정반대로 사회분열과 갈등의 주범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원인은 정치적 이념 때문이다.

2011년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을 역임한 이대근 논설위원은 한 세미나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한국 언론의 문제는 특정 정치세력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면서 그들을 추종하고 특정 정치세력과 이해를 공유하며 그에 맞춰 일관된 정치적 지향점과 일관된 가치 기준 없이 보도하는 데 있다. 한국 언론은 이미 정당이다.”

진보매체로 평가받는 <경향신문> 편집국장의 이러한 고백은 사실 보수매체에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보수 언론들이 걸어온 역사적 길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권위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확대에 따른 언론의 영향력이었다. 그러한 언론의 영향력에 주목한 재벌과 종교단체들은 직접 신문사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 언론은 이미 정당이다”

1990년에는 경향신문이 한화그룹에 인수됐고 1991년 11월에는 현대그룹이 문화일보를 창간했다. 그보다 앞선 1988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국민일보를, 1989년에는 세계일보가 통일교 재단에 의해 출범했다.

이러한 상황들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언론사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동원되고 궁극적으로 이익집단화되기 시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언론의 정치 권력화는 1992년 대선을 계기로 더 강화됐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스스로 대통령에 출마했다.

문화일보가 ‘국민당 기관지’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그의 당선을 위해 노력한 것은 당연했으며 조선일보는 반대로 김영삼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YS는 당선 직후 조선일보 사주의 집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진보-보수 매체들의 정파성의 기원에 대해서 송호근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는 ‘공론장의 실패’를 꼽는다.

“구한말, 국가 건설의 이념과 전략을 세우고자 했던 공론장의 논쟁들은 1910년 일본 강점에 의해 갑자기 막을 내렸습니다. 제국의 침탈이라는 외적 강압력에 의해 자발적으로 활성화된 최초의 공론장이 폐쇄된 것이죠. 이는 20세기 한국사회에서 ‘공론장의 구조적 결함’을 생성한 계기였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개인과 집단이 동의할 수 있는 국가 이념의 공유 영역을 구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죠.”

송호근 교수는 구한말 위기에 놓인 국가를 두고 새로운 질서에 대한 공론장은 매우 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개화파들로부터 시작됐다. 1896년 독립신문을 필두로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경성신문, 협성회회보, 매일신문, 시사총보, 상무총보, 만세보, 대한민보, 경남일보를 비롯 각종 학회보 등이 국문과 국한문 혼용체로 발간돼 공론장을 확장했다.

그리고 아펜젤러가 주관하던 영문 저널 The Korean Repository가 발간돼 조선의 상황을 외국에 알리기도 했다. 1894∼1910년에는 각종 단체와 결사체들이 자신들의 정세 판단과 세계관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저널을 앞다퉈 발행했는데 열강의 개입에 대해 조선이 취해야 할 전략, 세계 정세, 부국강병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 애국계몽 등을 포함해서 자유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들이 공론장에서 각축을 벌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일제 강점으로 이러한 공론의 장은 사라졌고 해방후 공론의 장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상이한 체제의 배후로 인해 소통이 아니라 패권 추구로 흐르게 된다. 그러한 진영논리의 유산이 현재의 언론 정파성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송호근 교수의 설명이다.

문제는 정파성이 아니라 진실성

하지만 송호근 교수의 이러한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다매체 시대에서 미디어들이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자신들의 독자들을 확보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널리즘이 만개한 미국사회에서도 내셔널리뷰나 폭스뉴스처럼 보수적 가치와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정파적 미디어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러한 미디어들이 미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 매체들이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서 보도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우익 케이블 방송 미디어인 폭스뉴스이다. 폭스뉴스의 최고경영자인 로저 에일스는 2003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공화당 방송을 경영한다는 비판에 화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를 그렇게 부를수록 더 많은 보수 성향 시청자들이 우리 방송을 볼 것”이라고 응수했다.

폭스뉴스가 노골적인 당파성만으로 성공을 거둔 건 아니다. 폭스뉴스는 명백한 우익이면서도 1996년 출범할 때에 CNN, ABC, NBC, CBS 등 기존 방송사들을 좌편향적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공정과 균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물론 정략적인 슬로건이었지만 그게 제법 먹혀들 만한 근거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미국적 가치를 손상시키고 있던 주류 미디어에 대한 미국인들의 강한 불신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의 진보매체들은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사실과 진실의 추구, 그리고 진정성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과거 미네르바 사건으로부터 시작해 광우병 사태, 천안함 사태 등을 보도해온 진보진영 매체들의 미흡했던 사실과 진실 추구의 노력에서 엿볼 수 있다. 광우병에 대한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PD수첩’은 MBC 내부에서 조차 ‘무리’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네르바 사건과 천안함 사건을 보도한 오마이뉴스, 한겨레, 프레시안, 미디어오늘의 태도는 ‘공론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확인하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정파적 입장에서 의제 설정 우위를 점하려는 진보매체들의 욕심이 포털이라는 또 다른 메타 미디어에 의해 무분별하게 추구됐던 점에도 원인이 있다.

문제는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들이 미디어로서 정당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뉴스의 배열과 검색어 순위에서 종종 지적되는 조작의 문제로 제기된다.

특히 2000년 오마이뉴스의 등장 이후 가속화된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최근 <나꼼수>, <뉴스타파>, <이털남> 등과 같은 팟캐스트를 출현시켰다. 하지만 이들 매체들이 보여준 진실성과 책임성은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특히 나꼼수의 경우 1천만 다운로드라는 경이적인 접속기록에도 불구하고 허위사실과 명예훼손으로 인한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200년 저널리즘의 역사

그렇다면 한국의 저널리즘에 미래는 없는 것일까. 이러한 숙제는 미디어가 공론의 장이 되기 위해 걸어왔던 지난 200년간의 저널리즘 역사를 생각해 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18세기 근대 언론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뉴스는 여행자가 전하는 흥미로운 얘기, 곡물 등 주요 물품의 시세, 식민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본국의 정보 등 정제되지 않은 1차적 정보에 불과했다.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에 몰려든 다수 군중의 기호에 영합해야 했던 당시 언론사들은 정부관료, 성공한 사업가, 유명인 등에 대한 신변잡기 정보로 지면을 채웠고, 그 결과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이 꽃피게 됐다.

또한 당시 언론사들은 정당, 교회, 노동조합 등의 후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뉴스의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객관성, 공정성, 균형성, 정확성’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중산층이 자리를 잡고,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라는 공동체가 확립되고, 독자층을 겨냥하는 중견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뉴스의 특성과 내용도 변하기 시작했다. 특정한 지역, 종교집단, 정치세력에 호소하던 뉴스는 재정적 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국가라는 공동체의 공론장의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독자의 다양한 정보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스포츠, 예술, 교육, 과학과 오락 등 새로운 영역이 추가됐으며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관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부가가치 높은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아돌프 옥스가 1896년 뉴욕타임스를 인수한 후 “뉴스다운 뉴스로 아침 식탁을 더럽히지 않는 신문”을 표방한 것이나 전문직으로서의 언론인을 길러내기 위해 1908년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 처음으로 저널리즘 대학이 설립된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뉴스다운 뉴스’에 대한 인식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했다. 미국의 경우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정부와 대기업의 유착 가능성이 확산되면서 탐사 보도가 점차 중요해졌고, 1970년대를 거치면서 국제사회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를 위해 국제뉴스도 확산됐다.

글로벌 자본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는 경제 및 금융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또한 1990년대에는 거대 언론사의 권력화와 뉴스의 연성화를 거부하는 공공저널리즘 운동이 펼쳐졌으며 공중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뉴스의 비중도 높아졌다.

언론의 공론장 회복이 사회통합의 길

이러한 저널리즘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그러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준다. 그렇기에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의 발간사는 지금 우리 언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는 첫째 편벽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 귀천을 달리 대접 아니하고 모든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며 공평히 인민에게 말할 터인데 우리가 서울 백성만 위할 게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조언하여 주려함. 정부에서 하시는 일을 백성에게 전할 터이요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전할 터이니 만일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만이 있을 터이요 불평한 마음과 의심하는 생각이 없어질 터이옴.”

- 독립신문 발간사(이승만) 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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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RbsWNzffp 2014-12-27 05: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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