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에 걸친 정의의 마침표
10년에 걸친 정의의 마침표
  • 미래한국
  • 승인 2013.02.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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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영화산책: <코드네임 제로니모>
 

2011년 5월 1일(미 현지일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전 세계를 향해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외곽에 은둔해 있다 미군의 작전에 의해 사살됐다는 발표였다. 9.11 테러가 있은 지 11년만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식을 전하기 직전 백악관에서 각료 및 보좌진들과 함께 생중계로 작전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았었다.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비롯해 백악관의 보좌진 등 다수 요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었다.

그 장면은 오바마의 발표와 함께 전 세계로 전해져 당시 백악관 요인들의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어떻게 작전수행 과정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을까? 작전을 실행한 특수부대원들의 헬멧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서였다.

숨 막히는 작전을 벌이면서 헬멧에 카메라를 달고 움직인다? 일반의 상상에 익숙할 만한 모습은 아니지만 작전을 담당했던 부대는 그런 일에 매우 익숙했다.

주인공은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의 팀 식스였다. 네이비 실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창설했다. 팀 식스는 그 중에서도 특히 정예로 선발된 對 테러전 전문 팀으로, 미 육군 소속 델타포스와 함께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는 특수부대로 알려져 있다.

작전을 전체적으로 주도한 쪽은 CIA였다. 하지만 국방부가 작전을 함께 진행, 네이비 실을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CIA가 ‘공식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빈 라덴 제거 작전은 은밀한 암살공작이 아니라 미국의 공식적인 국가의지가 실린 공공연한 전쟁행위로서의 對 테러전의 일환이었다. 미국이 작전 완료 후 그 결과를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것은 그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것이기도 했다.

<코드네임 제로니모>는 이를 영화화한 것이다. 제로니모는 서부개척시대에 미국과 맞섰던 전설적인 아파치 추장의 이름으로 빈 라덴을 지칭하는 CIA의 암호명이다. 영화는 CIA와 네이비 실을 오가며 진행된다.

언뜻 야심이 엿보이리만치 의욕적인 CIA 요원이 등장하고 네이비 실 병사들의 약간의 인간적 애환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극적 장치가 과도하게 부각되진 않는다. 작전 과정을 충실히 재현해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래서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는 매우 ‘다큐’스럽다.

그 때문일까? 영화의 평점은 아주 낮은 것도 아니지만 소재의 화제성에 비해선 그다지 높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선 흥행도 별로였다. 하지만 미국에선 흥행 이상의 시비가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의 치적을 홍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원래 TV용으로 제작된 것인데, 오바마 캠프의 주요 후원자가 제작에 참여했다. 그리고 미국 대선 이틀 전인 2012년 11월 4일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됐는데 시청자 수가 27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시비가 있을 만했다. 같은 소재를 다룬 또 다른 영화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도 마찬가지 시비로 개봉일자를 대선이후로 연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로선 부러운 일일 따름이다. 미국은 무려 10년의 집요한 추적 끝에 빈 라덴을 사살했다. 그러나 한국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피격은 물론 그 이전 북한의 숱한 도발에도 한 번도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런 영화를 만들 소재가 있을 리도 없다. 그저 남북 쌍방을 ‘공평하게’ 다룬 허구가 행세를 했다.

얻어터지면서도 휘두른 놈의 애환을 각별히 헤아린다? 인질범에 오히려 애정을 느낀다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이런 것일 게다. 이런 심리의 본질은 굴종이다.

위협에 단호히 맞서지 못하는 비굴함을 화해니 대화니 하는 따위의 말로 치장하는 자기 기만이다. 이런 굴욕적 자기 기만이 안전을 보장하나? 그럴 수 없음은 새삼 강조할 필도 없을 것이다.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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