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동권 그룹의 전향에 대하여
어느 운동권 그룹의 전향에 대하여
  • 미래한국
  • 승인 2013.02.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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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미영 세이지코리아 대표


주체사상파 시대정신 그룹의 전향 문제와 관련한 글을 시작하려니 돌아가신 황장엽 선생이 먼저 떠오른다. 황 선생을 빼고는 이 그룹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그룹의 진정한 전향도 선생의 망명으로 가능했고, 이 그룹의 리더였던 김영환 씨의 사상을 보증해 석방시킨 것도 선생이었다. 그들은 진정한 사제지간, 동지지간 혹은 그 이상, 부자지간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1999년에 처음으로 황장엽 선생과 시대정신 그룹을 만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당시 이미 내부적으로 전향하고, 조금씩 외부에도 새로운 입장을 내보이기 시작한 격월간 <시대정신>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는 이 그룹을 취재하게 됐고 이로 인해 나로서는 아직 모든 것이 서툴렀던 20대에 한국사회의 가장 민감한 이념적 쟁점 한가운데로 초대받았다.

시대정신 그룹과의 인연

당시 중국에 은둔중이었던 이 그룹의 리더 김영환 씨 비밀 인터뷰를 통해 프리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월간조선에 큰 특종기사(1999년 6월)를 보내게 됐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온 김영환 씨의 과거 행적이 국정원 수사 중에 밝혀지면서 당시 활동하던 친북 지하당 민족민주혁명당 핵심 간부들이 모두 간첩단 사건의 연루자로 체포되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동분서주하면서 김영환 씨와 시대정신 그룹의 전향을 확인하며 석방운동을 펼치게 됐다. 그 인연으로 사건이 수습된 뒤에는 한동안 이 그룹과 북한인권운동을 함께 하기도 했다.

나는 이 그룹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취재 과정에서 나는 이 그룹과 관련된 대부분의 인물들을 매우 존경하게 됐다. 다른 모든 것보다 이들은 매우 이타적인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신을 돌보기보다 역사적 사명에 자신들을 맡기기로 결정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고 역시 굳게 믿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둠의 잠행을 멈추고 제도권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했고 나 자신도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지만 오랫동안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에 나는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을 주의하고 또 주의하십시오!’ ‘하태경-박원순-이재명,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에 대한 나의 반기!’ ‘시대정신 그룹의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 어떻게 볼 것인가!’ 세 편의 글을 통해 이 그룹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반공’과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입장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나는 이 글들을 쓰면서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처음에도 밝혔지만 시대정신 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 황장엽 선생에 대한 언급이 불가피해지는 대목 때문에 특히 그렇다. 황 선생은 망명 후에도 스스로 ‘공산주의’ 철학자임을 숨기지 않았다.

황장엽 선생과의 대화

2004년 9월 13일 아침에 서울 강남의 논현동 집무실에서 만나 한 시간 정도 나누었던 선생과의 대화를 잠깐 공개한다.

[김] 선생님은 스탈린, 흐루시초프, 마오쩌둥, 주언라이, 덩샤오핑 등 역대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모두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을 가능케 한 흐루시초프에 관심이 있습니다.

[황] 왜 그런 소인배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흐루시초프나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자의 세계에서는 소인배에 불과하지.

[김] 그럼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누가 큰 공산주의 인물입니까?

[황] 그래도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이 공산주의 거인들이라고 할 수 있지. 마오쩌둥은 중국을 통일한 위대한 인물이지. 그러나 수준 높은 공산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어. 그랬다면 인민공사와 같은 것을 해서 사람들을 굶겨 죽였겠는가.

스탈린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여기에 개인숭배를 결합시킨 것이 문제였지. 김일성은 여기에다가 가부장적인 봉건성까지 결합시켰고.

[김] 선생님. 저는 위대한 공산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회의한 흐루시초프의 작은 자의 질문이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르바초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역사는 소인들의 작은 질문을 통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개인성과 집단성이 조화롭게 발현된 공산주의, 그런 것을 지금도 지향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신앙인으로서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봅니다. 교회에서 그 실현을 봅니다.

나의 이 도전적인 질문에 선생은 몹시 놀라워했다. 그날 나를 부른 것은 ‘철학적 제자’로 초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한 해 전에 선생의 첫 방미길에 동행했고, 나중에 방미 수행기(월간조선, 2003년 12월)를 기고하기도 했다. 그 여행중에 선생은 내게 이미 그런 속내를 표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정식으로 제안을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당돌한 질문으로 그 제안을 거절하고 말았다.

[황] 종교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 아닌가! 그렇지. 종교도 인간을 고양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기 때문에 높이 평가하지. 한번은 미얀마에 갔는데 사람들이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더군. 저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

[김] 선생님. 저는 오늘 북한이 저렇게 된 것이 선생님 말씀처럼 ‘김정일’의 속물적인 독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945년에, 1948년에 이미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해방되고, 구원을 얻겠다”는 결단 속에 오늘의 북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남과 북이 모두 ‘인간주의 (휴머니즘)’를 추구하면서 체제를 만들었다고 해도, 한 쪽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다 결국 그 인간을 그들만의 하나님으로 만든 탓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요? 남쪽은 온갖 오류를 범했지만 하나님과 함께 천천히 왔지요. 저는 그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남북한의 차이를 만든 건…

나의 질문은 선생을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동안 셰익스피어, 괴테 등을 언급하다가 결국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야말로 누구보다 깊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닐까? 인간이 어떻게 하면 ‘동물’이 아니라 더 더욱 ‘하나님’, 곧 신성에 가까워지는가, 더 고상해지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지금도 칼을 지니고 다녀. 언제라도 죽을 수 있지만, 이토록 큰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철학적 목표 때문이지.”

나는 이 대화를 통해 한 공산주의 철학자의 바닥 모를 고독과 그 심연 속에 내재된 깊은 혼돈을 느꼈다. 그는 일본유학 중에도 누워서 잠자지 않고, 평양에서 가져온 덮개로 어깨를 감싼 채 앉아서 잠을 잤다고 한다. 생쌀을 불려서 끼니를 잇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에게 철학은 고통이었고, 야망이었고, 존재이유였다. 그런데 나는 결국 이 철학자에게 신앙고백을 이끌어내고 말았다.

[황] 나는 철학자로 시작했고, 철학자로 죽는 것이 소망이지.

[김] 선생님을 제가 지금껏 존경해온 까닭은 제가 생각하는 바,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해야 더 고양되고 고상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선생님의 고민, 그리고 그 낙관적 전망에 대해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대화중에 이미 마음이 상하셨는지 선생의 마지막 말씀은, “너무 외교적으로 말하지 마시오.”였다. 내가 이 마지막 얘기보다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은 마침 탁자 밑으로 굴러 들어간 볼펜을 열심히 찾아서 결국 주워 건네 주시는 모습이었다.

그분은 언제나 정갈하고 성실했으며, 또 언제나 쓸쓸했다. 가끔 그분은 자기 철학의 단 한 사람의 실천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후 6년 이상 교분은 계속됐지만 단 한 번도 철학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우리는 닭고기 같은 것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든 얘기나 북한에서 기독교를 믿은 누님 얘기 같은 것으로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하셨다. 한번은 “내가 생각할 때 인간 의식의 발전과정에서 2000년 전에 자신을 죽여 인류를 구하겠다는 생각은 불가능한 것이지.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내가 믿지.” 이렇게도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

그러나 나는 지금도 알고 있다. 그분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자신의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20세기란 무엇인가! 초월적인 존재를 공격적으로 거절하고, 인간이 인간 스스로 인간을 변화시키고, 심지어는 인간의 힘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 온갖 종류의 사유와 실천에 있어서의 실험을 감행한 그 어떤 세기보다 뜨거웠고 또한 잔인한 세기였다. 이 세기를 거치면서 이미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알 만큼 알아버린 것이 아닐까.

‘김일성 찬양’조차 사상의 자유시장에 맡기자는 우리 사회의 일각의 주장이나, 이를 지지하는 시대정신 그룹의 주장에 대한 나의 우려는 그것은 너무 지나친 허무주의이며 가치에 대한 방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끝까지 포기해서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존엄성’이다. ‘김일성 찬양’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다. 이 정도는 국가가 ‘사상의 자유’의 한계로서 반드시 선을 그어주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보안법 제7조의 진정한 존재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첨언하자면, 나는 여전히 황장엽 선생을 적어도 공산주의 계보에서 세기적인 철학자이며 많은 연구할 거리를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애쓰는 시대정신 그룹에 대해서도 존경의 마음은 변함없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 사상에 이미 충분히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나는 어떤 형태이든 공산주의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의도와 상관없이 유해한 결론을 낸다고 본다. 그래서 나의 개인적 입장은 분명한 '반공'이다. 이 입장의 차이가 좁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미영 세이지코리아 대표 / 서울대 국문과,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졸업, 前조선일보 기자,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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