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원리의 퇴장을 지켜보며
경제원리의 퇴장을 지켜보며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2.21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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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 위원회가 칼을 빼들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식품업체가 잇따라 가격인상에 나서자 식품업체들에 대한 대규모 직권 조사에 나선 것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공정위는 21일까지 식품업체 10여곳을 대상으로 불공정거래 관련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다. 대상은 해태제과, 오리온, 대상, 롯데제과, 동서식품, 해표, 풀무원, 사조, 남양유업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대기업들이다.

문제가 되는 식품의 종류는 밀가루, 장류, 주류, 김치 등과 일부 제과들이다.
소비자인 국민들이 생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재들이다.

식품기업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리게 된 원인은 지난 해의 곡물가격의 상승으로 알려진다. 전 지구적인 ‘애그플레이션’때문인데, 여기에는 미국을 비롯해 일본, 유렵, 중국등의 대규모 양적완화, 즉 통화 증발의 원인이 가장크다.

돈이 많이 풀리면 그만큼 에너지와 곡물가격은 상대적으로 오르게 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그러한 코스트의 증대를 생산성 향상이나 가격인상으로 대응하게 된다.

기업이 원재료 가격의 상승을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전가할 때에는 소비자의 수요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기업에는 재고가 늘어서 가격인하가 발생한다.

이러한 설명은 경제원론에서 아주 기초적인 내용으로 설명된다. 가격이 시장의 공급과 수요의 시그널이므로 내버려 두면 공급자-소비자간의 합리적 선택에 의해 균형점을 찾아간다는 원리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행태를 보면 이런 원리를 믿는 대한민국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는 없다는 생각이다. 대기업이나 대형마트가 물건을 싸게 팔면 싸게 파는 대로 문제가 되고, 비씨게 팔면 비싸게 파는 대로 문제가 된다.

‘통큰 치킨’처럼 가격할인 경쟁이 일어나면 골목 상인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규제되어야 하고, 간장, 된장, 고추장을 비싸게 팔면 이번에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니 규제해야 한다는 인식은 정부가 神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시장은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이 만나 흥정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곳이다.
CJ나 오뚜기, 샘표의 간장이 비싸다고 느끼는 소비자라면 그 보다 싼 제품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닭표간장이나 중국 수입 간장들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대기업 간장 값이 올라 소비자 피해가 크다면 소비자들이 대기업의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대기업 제품이 중소기업 제품이나 수입품보다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소비자들은 스스로 대기업 제품을 선택하면서 대기업들이 부당하게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대기업은 국영기업이며 대형마트는 국영상점인가?

포퓰리즘이 경제를 밀어내는 날

이번 식품가격의 상승은 사실 식품만이 아니라 전기, 수도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인플레의 영향이다. 하지만 공정거래 위원회가 전기료나 수도료와 같은 공공요금이 부당하게 인상되는 것은 아닌지 조사해 본다는 이야기는 단 한번도 들은 바 없다.

아울러 이러한 인상은 지난 해 대선을 목전에 두고 정부가 가격 인상을 강력하게 차단했던 원인에도 있다. 올라야 할 가격이 오르지 못하고 용수철처럼 눌려 있다가 튀어 오른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정치적 시장통제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기업들을 제 잇속만 아는 탐욕스러운 파렴치들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 역시 자신들의 무능과 실패를 호도하기 위해 기업인들을 희생양으로 몰아 표를 얻으려는 심사도 읽힌다. 정치가 시장경제 원리에 반해 통제를 시작하면 그 통제는 명분 때문에 후퇴하지 못하고 가속화된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통제실패를 인정하려들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규제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노벨상의 경제학자 하이예크는 이를 ‘규제의 나선구조’라고 명명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시장경제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됐다.
시장경제의 방향이 아니라, 그 자체에 아예 불신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피터 드러커는 비경제적 요인, 즉 민족이나 환경과 같은 것이 경제논리를 추방하는 사회를 그의 명저 ‘경제인의 종말’에서 면밀하게 고찰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경제원리를 토대로 성립하는 체제이며, 만일 그러한 경제논리가 비경제 논리에 의해 추방되는 사회는 결국 전체주의 ‘파시즘’의 사회로 이행한다는 것을 과거 독일의 나찌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의 등장을 통해 입증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경제가 실종되어 가는 ‘침묵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 침묵의 사회는 동맥경화를 앓고 있는 환자와 같다.
손톱밑 가시에는 경을 치듯하면서도 심장이 썩어가는 건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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