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를 넘어선 가학적 휴머니즘
정도를 넘어선 가학적 휴머니즘
  • 이원우
  • 승인 2013.02.2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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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사형 집행하는 <7번방의 선물>은 유죄
 

김점덕. 2012년 7월 통영에서 10세 여아를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창원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우발성 없음’과 ‘피해자가 1명뿐이고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사유로 들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오원춘. 2012년 4월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낸 그에게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피해자의 남동생은 판결을 두고 “왜 사형이 아닌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지만, 법원은 “인육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이므로 감형했다”고 밝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Tit-for-Tat)”을 지향했던 함무라비 법전 이후 4,0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가해자 인권 존중’에 몰입하는 21세기의 감수성은 누가 봐도 사형 당해 마땅한 피의자들에 대해서까지 결단을 유보하는 쪽으로 귀결되고 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죄의 죄질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음에도 15년간 한 건의 사형 집행도 하지 않은 한국은 이른바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다.

최근 충무로에서는 15년 전 겨울의 사형 집행을 소재로 한 영화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이 크게 히트하고 있다. 당초 최고의 기대작으로 지목되었던 <베를린>을 제치고 2013년 첫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주인공 이용구(류승룡)가 입고 나오는 ‘97학번 점퍼’가 이 영화의 시점을 암시한다.

여섯 살 아이의 지능을 갖고 있는 이용구는 일곱 살짜리 딸 예승(갈소원)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지만 경찰청장 딸의 죽음에 연루되면서 급기야 사형선고를 받는다. 흉악범들이 즐비한 7번방으로 배정받은 이용구는 동료(?)들과 함께 즐거운 작전을 꾸미며 휴머니즘의 요소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이는 후반부의 ‘눈물폭탄’을 위한 포석일 뿐임이 곧 드러난다.

영화는 매우 노골적으로 이용구를 학대한다. 뺨을 때리고 발길질 하며 누명을 씌워 결국 사형시킨다. 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형법은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자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며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심신미약자의 경우 사형을 무기징역이나 30년 이하의 유기 징역으로 감경하는 방침을 따르고 있다. 이 영화로 인해 사형제 폐지를 지지하는 여론이 조금씩 자극되고 있지만 현행법으로도 ‘이용구의 비극’은 막을 수 있다.

이 영화의 비겁함은 이와 같은 현실성 결여의 틈새를 경찰로 대표되는 ‘강자 혐오’로 눙치고 있다는 데서 극대화된다. 경찰청장은 절대적 악인으로 묘사되며 법을 이용해 이용구를 살해하는 것만이 인생의 테마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영화는 이와 같은 설정의 무리수를 판타지 설정으로 배짱 좋게 우기면서 넘어갈 뿐이다.

배우 류승룡의 호연을 지적하는 데에는 만인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만, 좋게 말해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주말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두 시간짜리 눈물을 위해 ‘지적장애’라는 불행을 이용했을 뿐이다.

극장 밖에서는 지적장애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피의자들이 ‘인권을 존중’ 받으며 사형을 피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경찰로 대변되는 권력자를 혐오의 피사체로 배치시키는 것은 감동을 배태하기 위한 충무로의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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