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편찬은 왜 중단돼야 했는가"
"대한민국사 편찬은 왜 중단돼야 했는가"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02.27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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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민주화 이후 극소수 좌파세력의 위세가 조금씩 확장되던 1988년. ‘이 땅에 우익은 죽었는가’는 제목의 글을 통해 보수우파세력의 주의와 분발을 촉구한 학자가 있었다.

정확히 9년 후인 1997년에 좌파정권이 집권하고 10년간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미래한국>은 건국사 및 정치사의 권위자이며, 25년 전부터 우파의 개혁과 정비를 촉구했던 보수진영의 이데올로그 양동안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만나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대한민국사’를 편찬하려다 좌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중단된 취지 등에 관해 의견을 들었다.

- 근황은 어떠신지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퇴임한 후로는 공식적인 일을 전혀 안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강연이나 강의를 해달라고 오면 응하고, 글을 써달라고 하면 써주는 정도입니다.

 

- 두 달 전에 대선이 끝났는데, 정말 힘든 승부였습니다.

자칫하면 좌파가 이길 수 있는 선거였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만약 선거가 며칠만 일찍 치러졌어도 좌파가 이겼을 거라고 봅니다. 선거날까지 국민들이 고심을 거듭한 끝에 문재인 후보와 이정희 후보가 집권할 경우 나라가 위험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힘겨운 승리를 했다고 봅니다.

질 수 있었던 선거, 힘겨운 승리

-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 제가 2008년 2월에 교수님을 인터뷰 했습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취임 준비 중이었구요. 당시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500여만표 차이로 압승한 후였습니다.

그때 제가 교수님에게 “다음 대선도 보수가 이길 거라고 보시나요”라고 질문을 드렸고, 교수님께서는 “보수가 다음 대선에서도 유리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명박 정부가 아주 큰 실수를 하거나, 국민들과 동떨어진 국정 운영을 할 경우에는 힘겨운 승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교수님의 5년 전 예측이 적중한 셈인데요.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잃으면서 보수세력으로서는 이번 대선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가 엄청난 실수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여러 이유로 민심을 많이 잃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힘든 선거가 된 것이죠.

- 현재 사용되고 있는 역사교과서와 관련해서 여전히 편파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문제들을 지적해 주신다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6·25의 책임 소재에 대해 명확히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분단의 원인이 소련에 있다는 사실을 묵살하고 있습니다. 38선을 획정한 건 미국이지만 38선을 봉쇄하고 왕래를 막은 장본인이 바로 소련인데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됐다는 사실 또한 정확하게 서술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실과 다르게 현대사를 기술한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국사편찬위 편집위원들 모두 편파적”

- 국사편찬위원회의 ‘대한민국사’ 편찬이 보류됐습니다. 위원회에 속한 인사들이 특정 이념적 성향에 가깝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기 때문인 듯한데요. 가장 큰 문제가 뭐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역사를 서술할 때에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거나 긍정적으로 서술하거나 중립적으로 서술한다’ 이런 관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을 맹목적으로 긍정적으로만 보는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도 자칫하면 왜곡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서술할 때에는 있었던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합니다. 여기에다가 서술자의 관점을 추가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 편집위원들을 보니 전부 다 대한민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저술활동을 해온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편집위원으로 해서 대한민국 역사를 기술한다면 대한민국에 대해 사실과 다른 부정적 기술이 되고, 부정적 역사관을 확립시킬 위험이 있었겠죠. 취소됐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우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해 식견이 그렇게 깊지 못한 분입니다. 편찬위원회 실무자들을 보면 현대사에 대해 지식이 꽤 있는 젊은 분들이 대부분인데, 과거 좌파정권에서 실무자들 및 중간 간부들 중 대부분이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충원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그런 분들을 교체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그분들이 주도권을 잡고 계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말씀드리면 현대사를 전공한 분들이 대부분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현대사 전공자들로 국사편찬위의 기존 인력을 교체하더라도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분들을 찾아서 충원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투쟁 도구로 여기는 게 문제”

- 그렇다면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에 있어서는 역사 전공자들 뿐 아니라 정치.사회를 전공한 학자들을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판을 다시 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하지만 큰 반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역사 비전공자가 역사교과서를 쓴 게 되니까요. 그렇다면 대안은 이렇습니다. 역사 전공자들을 우선 포함시키고, 역사 비전공자들 중에서 정치·경제사 등 분야별로 역사를 전공한 분들을 추가로 참여시켜서 합동으로 역사를 기술하면 됩니다. 모든 쟁점들에 대해 토론을 진중하게 해서 올바른 결론을 내리면 현대사가 제대로 기술될 수 있습니다.

항상 문제는 역사학을 사상투쟁의 도구로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사실관계에 입각한 학문적 토론을 거부하고 이념투쟁을 할 생각부터 하면 올바른 결론을 내기가 힘들어집니다.

- 여론조사를 보니까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인혁당 사건이 다시 논란이 되면서 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과거에 비해 다소 증가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혁당 사건이 실체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2차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잘못됐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기간에 대한 평가가 일방적으로 미화된다든지 일반적으로 매도된다든지 하는 건 부적절합니다.

그분이 경제개발을 선도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을 필요도 있습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를 한쪽으로만 하는 건 부적절하며 사실에 근거해서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양쪽 다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 과거 정부에서의 과거사 규명 시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원칙적으로는 과거사 규명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보지만 노무현 정권에서 그걸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지침에 따라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실수를 한 건 과거사위를 유지시켜서 올바로 운영하면서 노무현 정권에서 잘못 했던 것들을 바로잡으면 됐는데 역사에 대한 해석과 체제 위기가 국가의 발전과 얼마나 깊은 연관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 기구(과거사위)만 해체했을 뿐 잘못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 파괴’의 자유까지 보장해선 곤란

- 최근 우파진영 내부에서 ‘반공주의’와 관련된 논란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모 단체가 최근 발표한 기본원칙을 보면 ‘반공주의의 지양’이라는 대목이 있는데요. 반공이라는 가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계신 듯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그 사람들의 생각은 잘못됐습니다. 반공은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반공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여러 법적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반공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사상의 자유에 대해 잘못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까지 보장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렇게 자유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할 경우에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사상까지 자유롭게 보장하자는 궤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자들에게까지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 사람들이 세력을 키워서 자유민주주의를 합법적으로 파괴하게 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사상에 대해서까지 자유를 보장한다는 건 자살행위와도 같습니다.

공산주의 세력 또는 파시즘 세력으로부터의 공격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현명하게 체제를 유지하기 원한다면 반공-반독재는 불가피합니다. 그런 불가피한 것을 염두에 두고서 이 사람들을 제어하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언젠가 합법적으로 독재세력이나 독재세력에 의해 타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인사들이 중도 또는 중도보수를 자처하면서 ‘공산주의자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하는 건 결국 체제파괴 세력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결과로 이어집니다. 예전에 레닌이 말한 ‘쓸모 있는 바보’(useful idiot)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 5년 전에 여쭤봤던 같은 질문을 오늘 또 여쭤보고 싶은데요. 다음 대선에서도 우파가 승리할 수 있을까요?

5년 전에 예측했던 것 보다는 상대적으로 힘겨운 승부가 될 것입니다. 만약 좌파가 조금만 더 머리를 잘 쓴다면 5년 후에는 다시 좌파정권이 출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현 시점에서 5년 후 우파 승리 가능성을 50%, 좌파 승리 가능성을 4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분발이 더욱 필요한 것이죠.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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