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믿지 않는 美‧中 평화 우리만 기대야 하나
아무도 믿지 않는 美‧中 평화 우리만 기대야 하나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2.28 16: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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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의 Book & World: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On China)를 읽고
 

지난 2월 14일 대만 타이베이(臺北)역에서 전철(MRT)로 약 40분 떨어진 단수이(淡水)에 위치한 홍마오청(紅毛城)을 방문, 대만해협을 바라보았다.

우기(雨期) 때문인지, 날씨가 그리 쾌청하지는 않았다. 아름다운 저녁놀을 볼 수 있다는 관광안내 책자의 설명과 달리,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대만해협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산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대만에서 떠올린 '가운데 왕국'

홍마오(紅毛)는 네덜란드인을 뜻하는 단어였다. 1629년 스페인이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고 세인트도밍고성(城)이라고 명명했는데 1642년 네덜란드가 전쟁에서 승리, 이곳을 차지하게 되면서 홍마오청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대만해협의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은 정성공(鄭成功) 시대와 청나라 시대를 거쳐 1867년부터 영국 영사관 자리가 됐다. 이후 미국 대사관의 관리를 거쳐 1980년이 돼서야 대만정부의 소유로 넘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대만의 대표적 관광지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단수이로 이동하기 전 타이베이시(市) 스린(士林)역에서 보았던 데모대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숫자는 몇 명 되지 않았으며 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민들도 거의 없었다. 중국어를 모르는 필자가 이들이 외치는 구호를 이해할리도 만무했다. 필자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시위대가 들고 있는 2개의 깃발이었다.

구소련의 낫과 망치가 새겨진 붉은 깃발과 중국 오성홍기(五星紅旗)를 휘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타이베이 시내에 구소련 적기와 오성홍기가 걸려 있다니?!

옆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읽어 보았다. 한자로 ‘打倒 日本帝國主義(타도 일본제국주의), 死守 釣魚島(사수 조어도)’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다소 멍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시위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Chinese”라고 말한 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No Chinese, Taiwanese”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이번 대만여행 동안 손에 들고 다니던 책이 있다.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이다. 키신저는 서문에서 중국(中國)이란 국가명의 특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나라들은 국명에 지명이나 민족명을 사용하기 마련인데 중국은 특이하게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가운데 왕국’(Middle Kingdom) 혹은 ‘중심 나라’(Central Country)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을 따름이란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명에 지명이나 민족명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국가가 또 있었다. 구소련의 국가명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그러했다. 비록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미중관계이다. 미중외교 정상화에 대한 자신의 기여를 은근히(?) 자랑하면서 미중관계가 어떻게 변화·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소상히 서술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닉슨과 마오쩌둥 간의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중 간의 이른바 ‘유사동맹’(Quasi-Alliance)가 맺어지게 된다. 이 같은 이념과 가치를 초월한 동맹은 소련이라는 당시의 공동의 적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소상하게 서술돼 있다. 문제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부터이다. 소련의 붕괴로 미중은 공동의 적을 상실했으며 따라서 ‘유사동맹’의 기반이 붕괴되게 된 것이다.

결국 미중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으며 중국은 1996년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구소련 5개국과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를 결성, 반미전선을 결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미국이 압도적 힘의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면 대결은 될 수 있으며 피하려 노력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가 대미관계의 기본 뼈대였던 것이다.

 

헨리 키신저의 '크로우 메모'

그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입지를 살려준 사건이 2001년 9·11사태였다. 이 사태를 기점으로 미국의 대외적 관심은 중동과 이슬람권으로 집중됐으며 이로 인해 중국은 한동안 힘을 기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도 이제 종결되고 있다.

이 책의 논조는 대체로 중국에 대해 부드럽다.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거듭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친중 로비스트’로서의 키신저의 희망사항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전략가’로서의 키신저의 냉혹한 현실분석과 도처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에필로그: 역사는 반복하는가? 크로우 메모(The Crowe Memorandum)’이다. 결론도 아닌 에필로그란 이름으로 ’크로우 메모‘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크로우 메모’란 영국 외교관 크로우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영국 외교관 회람용으로 작성한 메모를 일컫는 것으로서 독일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 메모에서 크로우는 독일 지도부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구도변화(structural change)인데 1871년 독일 통일로 인해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구축됐던 유럽 평화체제인 ‘비엔나 체제’(일명 메테르니히 체제)가 붕괴됐다는 것이다.

즉 기존에 유지되던 힘의 균형이 붕괴되면서 독일의 ‘구조적 헤게모니’ 추구가 시작되고 심지어 독일이 영국해군에 맞설 수 있는 대양해군을 양성하기 시작한 이상, 영국은 더 이상 이를 지켜만 볼 수 없다는 내용의 메모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영국과 독일의 충돌은 일부 지도자의 오판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며 따라서 필연적이라는 분석이었던 것이다.

키신저는 중국의 ‘승리주의자’(triumphalist)에 대해서도 잘 소개하고 있다.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승리주의로 나가자는 중국의 일부(?) 강경세력은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완벽한 성공(total success)이냐 굴욕적 실패(humiliating failure)냐의 문제이지, 그 중간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이러한 싸움을 당장 벌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미국과의 대결을 ‘마라톤적 경쟁’(marathon contest) 혹은 ‘세기의 결투’(duel of the century)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미중협력 체제의 유지가 세계평화의 기본이고 이를 유지시켜야 한다며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더욱 재미 있는 것은 칸트의 말을 빌려 영구평화는 2가지 방식의 의해 유지될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인간의 통찰력(human insight)이며, 둘째는 인류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갈등이나 재난이라고 적고 있는 점이다.

첫 번째 인간의 통찰력은 그렇다 치고, 두 번째는 무엇인가? 지구 종말을 가져다 줄 정도의 자연재해나 외계인의 지구침공이라고 있어야 미국과 중국 간의 평화협력체제가 유지된다는 것인데...

냉엄한 미중관계 우리의 선택은?

대만해협을 바라보면서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의 행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결국 우리의 근본문제로 돌아오게 됐다.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국이 ‘중심 나라’라고 한다면, 우리는 결국 또 다시 중국의 변방 혹은 위성 국가가 되는 것일까? 이날 대만해협의 바닷바람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무거웠다.

“북핵에 대한 너희의 대응은 무엇이냐?” “대한민국은 독자적 핵개발을 추진을 결심할 용기가 있는가?”라는 등의 외국 친구들 질문에 뭐라고 답해줘야 하는 것인지...

“대한민국이 핵개발을 결심하면 대만도 핵개발을 추진할 수 있으며 중국은 이를 용인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한 외국 친구들의 이야기가 바닷바람에 섞인 채 귀청에서 왱왱거렸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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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2014-08-15 05:57:11
Really enjoyed this blog.Thanks Again. C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