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극단적 편향 … 대선 이긴 게 신기해”
"문화계 극단적 편향 … 대선 이긴 게 신기해”
  • 이원우
  • 승인 2013.03.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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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한강의 기적> 정진수 감독
<한강의 기적> 연출가 정진수 감독

-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강의 기적> 공연이 2월 하순 끝났는데요.

<한강의 기적>은 올해 안에 재공연 계획을 가지고 서울에서 대관일정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지방공연도 준비 중이고요.

이 작품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새 정부 출범에 맞춰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2011년에 5‧16 50주년 역사 기록극으로 기획된 겁니다.

- 민중극단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2010년에는 이승만 관련 연극을 진행한 적도 있으시죠.

2010년에 6‧25 60주년 기념으로 <6‧25전쟁과 이승만>이라는 작품을 공연했습니다. 그때는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와 공동 주최했고 한팩 대극장(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했어요.

<한강의 기적>이 박정희 집권 18년을 커버하는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무렵의 이승만을 다뤘습니다.

2010년 한팩과 공동주최한 연극 <6.25 전쟁과 이승만>

이승만을 친미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시 미국은 빨리 휴전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발을 빼려고 하는 상황이었고, 이승만은 미국을 계속 압박함으로써 망명 시절부터 미국으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존재였어요.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일본을 우방으로 생각했지 한반도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반공포로 석방사건 등을 통해서 한미상호 방위조약 체결을 유도했죠. 이런 내용을 연극으로 다루고자 했던 겁니다.

-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면이 많은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박정희도 마찬가지 같은데요. <한강의 기적>도 시기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재상연 하신 것 아니었나요?

<한강의 기적>을 올해 초에 하려던 계획은 원래 없었어요. 올해는 민중극단 창단 50주년의 해인데, 당초에는 다른 작품을 공연하려고 지난 연말에 문화체육관광부에 대관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승인이 떨어진 걸 보니까 날짜가 2월로 결정된 거예요. 불과 두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새 작품을 하기는 시간적으로 무리였어요. 그래서 단시간에 준비할 수 있는 작품을 찾는 과정에서 재작년에 공연한 <한강의 기적> 얘기가 나온 거죠.

일부러 하려는 의도는 아예 없었고, 다만 새 정부가 마침 출범을 하는 시점이니 우연한 계기로 더 큰 의미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죠. 50년 전인 1963년은 민중극단이 창단된 해이자 박정희의 제3공화국이 출범한 해이기도 하니까요.

- 하지만 그러면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왜냐하면 작품이 바뀌던 시기가 2012년을 불과 며칠 앞둔 연말이었거든요. 한팩 측에서도 빨리 할 일을 마치고 정리를 해야 하는데, 작품을 바꾸겠다고 신청하니까 실무자가 골치가 아파진 거예요.

그러다 담당부장 선에서 나온 얘기가 어차피 민중극단이 공연하기로 한 건데 뭘 공연하든 관여할 게 뭐냐, 작품변경하면 결재선이 복잡해지니 제목만 변경된 걸로 해서 전결 처리를 하자는 거였어요.

엄밀히 말하면 편법이지만 종전에도 그랬던 사례가 있는 모양이고, 오히려 민중극단 대표가 한팩 쪽에 그래도 되는 거냐고 물었어요. 그런데도 그쪽에서 괜찮다고 하니까 우린 하란 대로 하고 연습만 열심히 한 거죠.

- 한팩이 대관 취소를 통보하기까지는 어떤 정황이 있었습니까.

공연이 예정돼 있으니까 한팩 정기간행물에 예고가 실렸는데 연극 내용이 인터넷으로도 알려지면서 일부 좌파 성향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했어요. 어떤 예술인이 아주 격앙된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고요. (※이는 연극연출가 이경성이 1월 28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것을 의미한다.)

그거야 그럴 수 있죠. 어떤 작품이든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잖아요. 취향과 이념이 안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예술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아무리 내 생각과 취향과 달라도 비판을 했으면 했지 실정법에 위배되는 내용도 아닌데 공연을 아예 못하게 하는 건 문제 아니냐고요. 그런데 일부 언론이 그런 문제제기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점점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어요.

또 한 가지 문제는 한참 논란되던 그 시점이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사무처장, 담당공연부장 등 3명의 임기가 만료돼서 결재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공석인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련의 사무 처리를 총괄팀장이라는 직원이 대행을 한 건데 이 사람은 전혀 결정권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대관취소라는 극단적인 처분에 대해서는 더더욱 결정권이 없죠.

그런데도 여론의 압박이 들어오니까 문화부에 문의를 한 거예요. 그런데 문화부에서 안 된다고 얘길 하면서 공연 1주일 전에 대관 취소공문이 메일로 날아온 거죠.

- 주요 담당자들이 공석이었다는 시기적 특수성이 맞물리면서 이 작품에 대한 문화부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알게 된 셈이군요.

지난 2월에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손 숙씨가 <어머니>란 연극을 했어요. 첫날 리셉션에 장관 이하 각계각층 사람들이 다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팩 홍보물에 찍힌 <한강의 기적> 얘기가 나오면서 부정적으로 의견이 모아졌던 모양이에요. 문화부 공연과장은 상부에 뜻을 따라서 대관취소를 한 셈이죠.

일이 커진 뒤에 최치림 한팩 前이사장을 만났어요. 중앙대 교수를 지낸 연출가고 개인적으로 극단 일도 같이 한 친구예요. 그런데 이미 사퇴하고 물러난 이사장이 찾아와서 회유를 하더군요. 민감한 시기에 이런 공연을 하면 여론도 안 좋고 새 정부에도 부담이 된다는 거죠.

- 이런 식으로 대관 취소되는 게 흔한 일인가요?

대관 취소라는 게 공연 1주일 앞두고 되는 건 전례가 없는 경우예요. 뭐가 무서워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문화부에서 (대관 취소를) 처리한 걸로 저희는 보고 있어요.

대관 절차에 문제가 있었으니까 명분은 있는 셈이지만 저희도 나름대로 실무자하고 대화하고 이메일 주고받은 것이며 녹취록까지 다 보관하고 있어요. 이걸 바탕으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편법 제목변경은 그쪽에서 요청을 한 거고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는 우리 쪽에서 물었어요. 하지만 결국 절차문제는 명목일 뿐이고 진짜 속사정은 다르게 돌아간다고 봐야죠.

-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의 공격도 상당히 거셌는데요.

<한강의 기적>은 이미 2011년에도 상연된 바 있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게 한겨레 기사였죠. 2월 1일자 기사로 서울연극협회 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국민정서에 맞지 않을뿐더러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라고 표현했어요.

그 회장 박장렬이라는 사람은 지난 대선 때 연극인들 수백 명을 모아서 문재인 지지선언을 한 인물이긴 해요. 정치적인 성향으로 봐서 그쪽(진보 성향)이니까 부정적인 의견을 가질 수 있죠.

하지만 그래도 연극협회장이라는 직위에서 기대되는 행동은 회원단체들을 보호하는 것이지 편들고 공격하는 건 있을 수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가 간접적으로 박장렬 회장과 접촉을 해서 그런 말 한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런 적이 없다는 거예요.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고 코멘트한 정도라는 거죠. 그러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 확인서를 써 달라고 요청을 해서 그 사인을 제가 직접 받았어요.

이걸 근거로 언론중재위원회에 한겨레를 제소하면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요청했습니다. 중간에 손해배상은 철회했지만 3월 5일자로 인터넷 한겨레에 정정기사가 떴어요.

그렇게 한겨레를 상대로는 이긴 셈이고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심판청구, 민사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냥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끝까지 해볼 생각이에요.

- 연극판의 이념적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어느 정도인가요.

저희가 준비한 <6‧25전쟁과 이승만>, <한강의 기적> 등에 대해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하반기 지원신청을 하는데 번번이 떨어졌어요.

연극 쪽은 평론가 중심으로 심의위원회가 심사를 해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들이 떨어트리는 거죠. 물론 생각과 관점이야 다를 수 있는 거지만 민중극단은 5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고, 저만 해도 연극계에서는 어찌됐든 중진급인데 계속 떨어트리는 건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 여기에 덧붙여 언론의 역풍까지 맞으면서 일하시는 고충이 크실 텐데요.

이번에 문제가 된 한겨레 같은 언론사만 그런 게 아니라 조중동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예요. 그들도 절대로 나서서 편들어 주는 일은 없습니다.

논설위원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경우에 따라서 서포트하지만 데스크에서는 철저히 무시해요. 주로 좌파 성향 사람들하고만 어울린다는 면에서 조중동은 이미 보수매체가 아니에요. 문화부라는 조직 자체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거치면서 성향이 많이 편향됐고 MB정권은 전혀 그걸 바꾸지 못했어요.

또 상당수의 사람들 사이에선 아예 이런 문제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보신주의가 횡행하죠. 전교조 비롯해서 조직력 있는 단체들이 서로 보호해 주다 보면 편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 새 정부도 들어섰는데 문화부 장관 포함한 새 인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

장차관급 인사로 문제를 교정하기엔 그들은 그저 ‘손님들’이에요. 왔다가 떠나가는 이들일 뿐이지 칼자루 뽑아 전면에 나서서 싸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에도 문화 쪽에는 별로 기대를 하기가 힘든 상황이에요. 유진룡 장관 후보자,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등이 지명됐지만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 일각에선 문화부 폐지론까지 나오는 모양새인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문화부가 예산을 계속 늘리는 게 결국엔 좌파 운동자금으로 나가고 있어요.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이 거대한 조직을 거느리고 있고 세종문화회관 역시 편향적인 구석이 많죠.

이렇게 엄청난 자금이 풀뿌리까지 흘러가는데도 (그들이) 선거에서 진 게 참 신기할 정도예요. 박대통령도 어지간히 해서 될 일은 아니에요. 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치 독립운동과도 같은 시민사회운동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인터뷰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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