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9억명이 굶고 있습니다
지금도 9억명이 굶고 있습니다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03.19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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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임형준 한국사무소장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임형준 한국사무소장

1961년 유엔기구로 설립된 세계식량계획(WFP. World Food Programme)은 세계 식량원조의 55%를 담당하는 가장 큰 규모의 인도주의(humanitarian) 기관이다.

폐쇄 국가인 북한에도 상주사무소를 설치하고 임형준 WFP 한국사무소 소장과 만나 WFP의 활동에 대해 경청하는 자리를 가졌다.

- WFP의 주요활동은 무엇인가요?

아이티 대지진, 파키스탄 홍수와 같은 상황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직접 식량을 제공하며 생명을 구하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WFP는 재난 시 긴급구호뿐만 아니라 다양한 개발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 인프라 건설 등 다양한 개발사업도

평시에 WFP는 식량 지원을 매개로 교육, 인프라 건설 등 여러 사업을 병행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서 보건소에 오라면 잘 안오지만 식량을 준다면 검진.백신 접종이나 교육도 받으러 옵니다.

개도국에서는 강물을 그냥 떠마시다가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잦은데요, 그런 사람들에겐 위생교육만 해도 병을 많이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학교급식 사업에도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밥을 주면 출석률과 등록률이 올라갑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집에 먹을 게 없는데 학교에 보내면 한 끼 걱정이라도 덜게 되죠.

특히 여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에 여성 진학률 상승과 양성평등에 도움을 줍니다.

또한 우리는 사람의 일생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식량을 지원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1000 day 프로그램'이라는 게 그것인데요, 임신 직후부터 만 2세까지의 영유아에게 식량을 지원합니다.

이 시기에 영양이 부족하면 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손상될 수 있으며 나중에 회복이 어렵습니다. 그러면 지능이 떨어져 학업 능력이 저하되고 직장도 못 구하게 되고 다시 또 그런 아이를 낳는 악순환이 이어지죠.

- 과거 한국이 빈곤했던 시절에 WFP가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WFP는 유엔 기구들 중에서 한국을 두 번째로 많이 도와줬습니다. 6.25 때 설립된 유엔한국재건단(UNKRA)이 많은 도움을 줬고 그 다음이 WFP입니다. 6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1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서 2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현재 한국은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Food for Work'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기에 한국 새마을운동의 경험을 접목해 ‘Food for New Village’ 라는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현재 르완다와 네팔에서 2년째 시범사업을 하고 있고 올해부터 방글라데시와 탄자니아도 포함될 예정입니다.

- WFP 한국사무소는 어떤 일을 하나요?

2005년에 문을 연 WFP 한국사무소는 전세계적 기아문제를 알리고 모금활동을 합니다. 모금은 주로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만 개인기부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영화배우 장동건 씨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죠.

또한 정부 및 기업과 파트너십을 진행합니다. 가난한 나라들을 돕도록 길을 만들어 주죠.

5만원이면 한 아이 1년간 학교급식 가능

- 일각에서는 '한국 내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부터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사실입니다만, 과거 한국에 큰 도움을 준 나라들도 자국 사정이 완벽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 돈 250원이면 배고픈 사람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5만원이면 한 아이가 1년간 학교 급식을 받아요. 적은 돈이라도 외국으로 나가면 실제로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유엔 구호기관으로서 WFP가 가진 특징과 장점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기아의 최전방에 있는 기구입니다. 긴급구호 상황이 발생하면 48시간 내에 가장 깊은 곳으로 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WFP가 운영하는 비행기 60대, 선박 40척, 트럭 5천대가 지구촌의 가장 가난하고 배고픈 곳에 도움의 손길을 주기 위해 움직입니다.

많은 기구들이 해당 국가의 수도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오지까지 직접 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라오스에서 근무할 때 어떤 마을은 이틀을 걸려야 갈 수 있었습니다.

깊은 산속에 가기도 합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오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현장 위주(field-oriented)의 기구입니다. 최근 캐나다와 호주에서 국제기구 평가를 했는데 저희가 1등을 했습니다. 효율적이면서도 가장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도움을 주는 기구입니다.

또한 WFP는 긴급구호를 할 때 유엔의 수송과 정보통신 분야의 클러스트 리더입니다. 긴급구호 상황에서 수송시스템을 먼저 깔고 여러 인적 기구들과 코디네이션을 하죠. 전화‧인터넷‧통신 등의 설비들을 확보하고 구축하는 일도 합니다.

- 북한에서도 WFP가 식량구호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에서의 활동을 소개해주신다면?

2세 이하 영유아 및 임산부‧수유부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1000 day 프로그램' 위주로 지원을 합니다. 이러한 지원은 유치원, 고아원, 탁아소, 소아병원 등 기관을 중심으로 합니다.

현재 식량취약도가 높은 82개군, 200만명 취약계층 지원을 목표로 구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에 보릿고개가 있습니다. 5월에 시작되는데 저희가 목표로 하는 모금액이 부족해 상당히 시급한 상황이므로 도움이 필요합니다. 작년 6,7월에도 북한에 큰 홍수가 나서 긴급 지원을 했습니다.

- 분배의 투명성 확보는 대북지원의 뜨거운 감자인데요. WFP는 어떤 방식으로 북한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지요?

'No Access, No Food'가 저희의 철칙입니다. 모니터링을 못하게 하면 식량 지원을 안한다는 입장이죠.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떤 곳은 식량취약도가 심해도 식량 지원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원칙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요원이 모니터링을 위해 활동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식량분배 상황을 물어볼 수 있으므로 큰 도움이 됩니다.

시장 방문도 하고 아이들의 팔뚝 두께를 줄자로 측정하고 눈으로 영양상태 개선을 확인하는 방법의 모니터링도 합니다. 2011년 모니터링 요건이 대폭 개선되면서 이게 가능해졌습니다.

모니터링 안 되면 대북 식량지원 안해

현재 평양에 상주사무소가 있고 지역사무소가 함흥, 청진, 원산에 있습니다. 이들 사무소에서는 광케이블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현지 상황을 보고할 수 있습니다.

보통 다른 기구들은 모니터링을 하려면 1주일 전에 (북한당국에) 통보를 합니다. 저희는 24시간 전에 통보하면 모니터링이 가능했고, 최근 합의한 MOU에 따라서 모니터링 요청 시 즉시 승인을 받아 모니터링을 할 수 있습니다. 작년 한해에만 북한 내에서 90만km를 다니며 모니터링을 했습니다.

- 대북지원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정권을 돕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돕는 사람들은 북한 내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영유아 및 임산부, 수유부입니다. 저희는 정치와 무관하게 오직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 위주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임형준 소장은 20대 때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3년 동안 80여 개국 배낭여행을 했다. 배낭여행 중 가난한 국가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만난 후 이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유엔에 입사했다.

2001년 외교부 주관 JPO(국제기구 초급전문가) 시험에 합격해 2002년부터 WFP에서 일했다.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현장 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현재 한국 사무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 많은 학생들이 국제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국제구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요. 이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막연하게 국제기구라면 환상을 가질 수도 있는데 정말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WFP에서 10년을 일했는데 2년마다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안정적으로 한 곳에서 살고 싶다면 좋은 직장은 아닙니다. 오지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한다는 생각 없이 막연한 환상만 가지면 크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게 정말 내 길이다' 싶으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능력.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로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아랍어 중 한 개를 구사해야 합니다. 여기에 보통 석사학위 정도를 요구합니다.

두번째로 직무와 관련된 경험(relevance)이 필요합니다. 특정 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면 연관 단체에서 자원봉사도 해보고 일도 해보며 관련 경력을 쌓아야 합니다.

세번째는 태도입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굳은 사명감이 필요합니다. 이런 세 가지를 겸비하면 국제기구에 갈 수 있는 요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국인들의 참여 기회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WFP 한국사무소를 대표해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9억명이 배고픔 때문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같이 오늘 어떻게 배를 채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죠. 한쪽에선 비만을 걱정하고 음식쓰레기를 버리고 있는데 말이죠.

기아를 '조용한 쓰나미(silent tsunami)'라고 합니다. 기아문제가 정말 심각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고 관심도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기아를 당장 끝낼 수 있는 충분한 식량, 기술, 인프라가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관심과 의지입니다.

인터뷰 //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 전해솔 기자 nkrefug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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