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에너지문제 목 밑에까지 찼다”
“한국 에너지문제 목 밑에까지 찼다”
  • 이원우
  • 승인 2013.03.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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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前지식경제부 차관 김정관 서울대 초빙교수


새 정부 출범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정부 구성의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언론과 미디어의 모든 관심은 여야 간의 정쟁, 4월 재·보선 등 정치 이슈로 집중된 형국이다.

한편으로는 북핵문제가 점점 중차대한 문제로 비화되는 가운데 한반도 유사상황 발생 시 엄청난 에너지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엄중한 경고는 잘 부각되지 않고 있다.

이에 <미래한국>은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개발본부 본부장, 에너지자원실 실장을 거쳐 2011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역임한 김정관(金正寬) 서울대 초빙교수를 만나 한국 에너지 문제의 현황과 미래의 지향점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 우선 한국의 에너지문제가 어느 정도 엄중한지 듣고 싶은데요.

상황이 대단히 어렵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얘기지만,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개선되지 않는 고질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 규모는 경제 규모보다 큰데 심지어 에너지 수요도 계속 늘고 있어요.

우리의 산업구조 자체가 석유, 철강, 시멘트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구조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부가가치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도 OECD 국가의 1.7~1.8배 수준입니다.

국내에 부존자원이 없으면 해외확보자원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마저도 미미하죠. 나아가 온실가스 쪽에서 보면 지난 2009년에 정부는 2020년까지 BAU (Business As Usual) 대비 3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국제적으로 발표한 상황이에요. 이것은 IPCC라고 하는 국제기구에서 개발도상국에 주는 가장 큰 감축 수준입니다.

이 목표를 이행하려면 결국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서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쪽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요. 한국의 상황은 신재생에너지를 대량으로 보급할 여건이 안 됩니다. 풍력은 이미 다 들어섰고 태양광은 엄청난 면적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무리가 있죠. 원자력도 후쿠시마 원전사태에 한국수력원자력 비리문제가 터지면서 국민적 인식이 안 좋아졌습니다.

김정관 서울대학교 초빙교수 (前지식경제부 차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소비량

- 현재 상황도 빠듯한데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군요.

지금 당장은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비상시에 버틸 여력이 없습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1, 2차 석유파동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에너지로 인해 큰 곤란을 겪은 적이 없었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1978년에 설립한 동력자원부 시절에 재원을 많이 확보해서 비축시설, 가스 공급 배관망, 발전소 등 인프라를 많이 구축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재로 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소비량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름과 겨울마다 대규모 정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해외의존도는 96%에 달하죠. 석유·가스의 자주 개발률(자주 개발 물량/에너지 수입량)도 선진국들이 50% 수준인데 반해 우리는 10% 수준에 불과해요.

특히 우리가 석유를 공급받는 중동이 언제든 정치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에너지안보에 너무나도 소홀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죠.

-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의 규모도 너무 작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78년 생긴 동력자원부는 1993년 YS정부 출범과 함께 상공자원부로 합쳐졌습니다. 그것이 산업자원부-통상산업부-지식경제부를 거쳐 이번에 산업통상자원부로 바뀌게 됐죠. 동력자원부 시절엔 석유국 차원에서 석유정책을 다뤘는데 부처가 통폐합된 이후에는 에너지 문제가 부 단위에서 실 단위로,

그러니까 자원정책실이라는 실장 단위의 조직으로 축소됐어요. 당연히 중요도도 작아졌습니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제대로 위상을 찾지 못하는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정부조직 내의 비중에서 오는 문제도 있다는 지적이 가능합니다.

- 해외의 사례는 어떻습니까.

미국의 경우에는 DOE(Department of Energy)라는 게 있고 영국은 에너지 기후변화부라는 걸 2008년에 만들어 에너지와 기후변화를 묶어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 에너지 생산국은 관련 부처가 많지만 소비국 차원에선 미국, 영국, 덴마크 정도를 제외하면 관련 부처가 크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려운 여건을 고려할 때 에너지 정책을 독립적으로 펴는 부처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MB정부 이전에는 국가에너지위원회 조직에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어요. 그리고 각 부처 장관과 민간전문가들이 위원을 맡으면서 에너지정책이 꽤 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MB정부 들어 녹색성장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에너지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장관급으로 격하됐어요. 즉, 에너지 문제가 대통령 어젠다에서 장관급 어젠다로 변경된 셈이죠.

녹색성장은 워낙 광범위한 개념이기 때문에 이 안에 에너지정책이 독립적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가 않아요. 이전의 국가에너지위원회와 같은 강력한 거버넌스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습니다.

녹색성장, 방향은 정확

- 말씀하셨듯이 MB정부는 녹색성장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는데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이 부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재생에너지는 다소 뒤로 밀린 감도 있는데요.

MB정부가 포착한 방향은 맞았다고 봅니다. 2008년 당시에는 기후변화협약에 의해 2012년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문제 때문에 관련 논의가 대단히 활발했어요. 그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향후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탄력을 받았고 실제로도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녹색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정부의 가격정책에서 모순이 존재했습니다.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재정으로 보조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보조하는 양이 지나치게 컸던 거죠.

여기에 전기요금이 단기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가격이 원가 밑에 있다 보니 심각한 왜곡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보급 인센티브나 경쟁력도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고, 결국은 보급 속도가 느려진 거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정부가 평균 3.5% 정도 신재생 분야를 성장시키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2.6% 정도밖에 못 했어요. 방향도 맞고 의지도 있었지만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 뒷받침되지 않은 바람에 큰 성과는 없었다고 봅니다.

- 미국 셰일가스가 한국의 에너지 수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셰일가스가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의 경제성 측면, 그리고 공급량 측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건 틀림없습니다. 다만 셰일가스를 직접 생산하는 미국이 받는 영향과 그걸 일부 수입하는 한국이 받는 영향은 상당히 다르죠.

지금 우리가 LNG를 도입하는 평균 가격이 13~14달러 정도인데요. 2017년부터 미국에서 셰일가스를 액화시켜 도입하면 11~12달러 정도로 가격이 다운됩니다. 이것은 곧 가스 공급에 15~20% 정도 가격 안정성이 생겨남을 의미하죠. 중동에서 공급받던 것이 북미로까지 확장되면서 공급선도 다변화되고요.

다만 그 물량 자체가 그리 크진 않습니다. 한국이 1년에 사용하는 3500만 톤 중에서 셰일가스로 도입할 수 있는 양은 20% 정도로 추산되는데요. 가격이 15~20% 저렴한 물량이 20%를 바꾼다고 하면 전체적으로는 3~4%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죠.

셰일가스 혁명이 분명 한국에도 플러스이긴 하지만 그게 우리나라의 에너지 믹스를 바꿀 만큼, 그러니까 석유와 석탄을 대체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요금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요?

경제학의 대원칙이 공짜가 없다는 것이듯 적자보는 기업은 영속할 수 없다는 게 정답이겠죠. 지금 상황이 별 문제 없는 것 같지만 누가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겁니다.

2008년에 기획재정부 주도로 청와대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동결하면서 재정으로 보조금을 준 적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국민 세금으로 전기요금을 보전한 거고 이는 좋은 정책이라 볼 수 없죠. 전기요금을 낮게 가져간다는 건 결국 국민이 그걸 보조한다는 얘기가 되죠. 지금 세대가 안 낸다면 후세대가 대가를 치러야 해요.

금년 1월에 4% 오르긴 했지만 아직도 전기요금은 원가보다 낮습니다. 다만 이 체제가 영속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현재 사회적으로 많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물가정책을 어떻게 가져갈지 모르지만 전체 에너지와 미래 전력수급 상황을 감안할 때 언젠가는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지혜롭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스마트그리드, 에너지문제 해결 열쇠

- 한편 새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서 창조경제라는 키워드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에너지 정책과는 어떤 접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일단 미래창조과학부의 성격은 IT와 과학기술부를 합친 것으로 보이는데요. 에너지 쪽에서 창조과학을 접목한다면 개념상 가장 가까운 것은 역시 스마트그리드 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력에 IT를 결합시킨 것이니까요.

사실 스마트그리드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거시적인 방안이기도 합니다. 한국 내부적으로 전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전력시스템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기반도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이와 관련해서 법도 만들고 기초를 닦았는데 아까 말씀드린 전기요금 문제나 전력산업 구조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현재 다소 주춤한 상태입니다. 이런 부분을 미래창조과학부 쪽에서 관심을 가져준다면 에너지산업 뿐 아니라 전체 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한편 새 정부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사용후 핵연료 처리문제가 있을 텐데요.

언젠가는 정책이 결정돼야 할 텐데 지금까지는 많이 미뤄지고 있었죠. 사안의 폭발력으로 봐서 어느 정부도 쉽게 공론화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시급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이고 그 시기가 거의 목 밑에까지 찼죠.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가 계속 쌓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늦어도 2024년에는 새 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결과인데 이를 위해서는 당장 공론화가 돼야 해요.

이 문제는 사실 그동안 우리가 전기를 싸게 써 온 대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전체 전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원자력을 많이 가동함으로써 현재의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이니까요.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짓자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해야 됩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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