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원래 보수정당, 정체성 찾아야 산다”
“민주당은 원래 보수정당, 정체성 찾아야 산다”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03.2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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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韓和甲) 전 민주당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동교동계의 핵심이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 직후인 98년 원내총무로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었고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2002년 하반기부터는 민주당의 대표로서 당을 이끌며 대선을 관리했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세력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자 그는 이에 반발해 민주당에 남았다.

이후 9년 뒤인 2012년 12월 대선에서 그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미래한국>은 한 전 대표를 찾아 정통야당으로서의 민주당의 의미와 정국 전망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 요새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요즘엔 정치활동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10년 전인 2003년에 ‘동서협력재단’이라는 사단법인을 외교통상부에 등록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운영이 잘 안 됐어요. 이번에 이걸 다시 제대로 운영해 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우선 남북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및 해외동포를 포함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아닌 박근혜를 지지한 이유

-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셨는데요, 상당히 고심 끝에 내리신 결단이셨을 것 같습니다. 당시 심정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신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저는 아무 당에도 소속돼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라도 사람인데 지난 대선에는 전라도 출신 주자가 없었습니다.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어차피 경상도 출신 후보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문재인은 정치적으로 날 축출한 노무현 세력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분은 과거 청와대에 있으면서 전라도 사람들을 차별한 경력이 있습니다.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만 봐도 저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기 어려웠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친노세력이 만들어낸 후보였고, 자신의 힘으로 탄생한 후보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박근혜는 노력으로 후보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보다는 노력한 사람이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으로서 한나라당을 여러 차례 구해낸 경력이 있습니다. 또 여성이 IT시대에 남자보다 더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 오랫동안 민주당 중진으로서 정치를 하셨습니다. 과거 민주당은 정통 야당으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죠. 하지만 최근엔 민주당 내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사실상 해방 이후 민주당은 지주세력을 중심으로 태동한 정당입니다. 그때는 이승만 대통령과 손잡고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선 사실이 있습니다.

다만 부산 정치파동을 경험하면서 민주당을 만든 분들이 이승만 대통령과 갈라선 것입니다. 그리고 4·19 때까지 야당이던 민주당의 성격은 보수성향이었습니다. 그리고 5·16 이후 정당이 여러 개 생기면서 부침을 거듭한 끝에 양당체제가 고착됐죠. 5·16 이후까지도 보수 야당이었습니다.

다만 1987년 6·29선언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그때부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사상공세가 시작됐고, 평민당을 좌익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좌익이 아니었고 진보적 성향도 아니었습니다. 가난하고 약자를 돌보는 점에선 누구보다 앞장섰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이념은 중도보수에 가까웠다고 제가 규정하고 싶습니다.

아무도 대변 안한 노동자와 농민들을 대변하다 보니 좌익으로 몰렸고, 1971년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진보적 대북정책(평화통일, 3단계 통일, 4강 외교 등)을 내놓으면서 통일방안에 있어서 연방제와 같다는 식으로 매도당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진보세력으로 오도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창당한 평민당은 중도세력이 분명했습니다.

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친노파들이 당권을 잡아 민주당은 그들의 독무대가 돼 있습니다. 게다가 연합공천 등으로 야권을 연대해서 끌고 가는 바람에 야권 전체가 진보색채를 띠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 때만 해도 연합공천을 하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았습니까? 민주당이 앞으로 활로를 찾으려면 정체성 확립이 가장 중요합니다.

- 2003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세력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 합류하지 않으신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전 현재 민주당원도 새누리당원도 아니고, 정당을 떠나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대의원 직접선거에 의해 내가 대표를 지냈습니다. 그랬던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좌향좌로 갔습니다.

여기에 계파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다 보니 상대 계파를 쳐내는 일이 비일비재해졌고, 내가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사실상 제가 밀려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DJ는 확대지향적 vs 盧는 축소지향적”

- 대표님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김대중 전 대통령인 것 같습니다. 대표님은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셨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당을 함께 하셨습니다. 두 분 대통령이 노선이나 캐릭터에서 가장 대비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우선 김대중 대통령은 정적들을 다 포용했습니다.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을 재야에서 수혈했습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해서 말살의 대상으로 삼고 코드에 맞는 사람만 기용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확대지향적 리더십의 소유자였던 반면에. 노무현은 축소지향적 리더십을 가졌죠. 노무현 대통령과 저는 2002년 대선 당시 각각 대선후보와 당대표 신분이었지만 끝까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독 저만 대선 이후 탄압받은 것이라고 봅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된 결정적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2002년 하반기 후보단일화 논란 때문입니다. 노무현 당시 후보 의 주장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경합을 벌일 때 왜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여당 대표 입장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걸 가지고 친노파는 내가 ‘정몽준 편’ 이었다고 규정하고 날 공격했죠.

- 최근 안철수 후보가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후보단일화를 위한 무공천 방침이 확정됐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민주당의 딜레마입니다. 공천을 했다가 당선이 안 되면 국민 지지가 없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고, 공천을 안하고 안철수를 밀면 정당의 존립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2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죠? 그때부터 민주당은 내리막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정치싸움에는 명분과 실리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고도 이기는 싸움이 있고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있습니다.

민주당이 후보를 안내는 건 자신들의 선택이지만 그건 정당으로서 스스로를 흔드는 선택을 하는 겁니다. 선거 끝나고 안철수 후보가 당선된 후 민주당에 입당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분란을 스스로 만드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다당제가 바람직”

-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에는 다당제가 좋다는 발언을 하셨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안철수 후보를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정치의 새로운 패턴 정립을 위해 안철수 씨가 신당 창당하기를 바랍니다. 과거엔 야당이 분열하면 ‘1:1로 여당과 싸워야지 왜 분열하냐’고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두 가지 현상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당권을 잡은 사람들이 자파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고 공천 때는 자파 공천을 위해 개혁공천이라는 이름하에 당내 원로들과 다선의원들을 숙청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정치지도력이 축적되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여야협상이나 대국민 관계에서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면 ‘한계지도력 체감의 법칙’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건 한국 정당들이 자초한 사태입니다. 선거 때마다 국민들이 최선 대신 차선을 택하는 게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죠. 다당제가 돼야 국민들의 선택의 폭이 확대됩니다. 국회 운영에서도 다당제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례로 1988년 총선 이후 출범한 제13대 국회는 2년간 4당 체제였습니다. 당시 어느 정당도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협상이 계속 이뤄졌죠. 제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190여건의 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3건을 제외하고 전부 만장일치였습니다.

그런데 3당 합당을 하면서 원내 3분의2가 넘는 거대 여당이 탄생했고, 국회는 언제나 파행이었습니다. 협상 없이 힘으로 밀어붙였으니까요.

- 안철수 신당과 관련해서 일각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안철수 후보를 앞세워 좌파 신당을 창당하고 정통 민주당 세력을 배제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하고 있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 분명한 건 이렇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될 때 안철수 후보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안철수 후보가 정치를 하려면 박원순 시장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합니다. 그만큼 위치가 변했습니다. 그땐 안철수 후보가 유력 대권주자였지만, 지금의 박원순 시장은 차기 주자이면서 시장으로서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박원순과 안철수가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대결하더라도 박원순의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안철수 씨를 포용하려고는 하겠지만 전폭적으로 밀어줄 생각까지는 안할 것이고 안철수 씨도 그건 알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상상에 불과하고 누구든지 자신이 1등을 하는 시나리오를 원합니다.

- 대한민국에서 호남의 역할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호남은 애국의 보루입니다. 호남에서 시작된 조선말 동학혁명은 천민들이 양반세계와 정면대결을 하고 제도적 개혁과 평등을 주장한 사건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했습니다. 호남만 왜군에 점령되지 않고 군수물자를 전부 조달했기 때문입니다. 전라도는 곡창지대라 식량 걱정이 없었고 전라도 나무로 배 짓고 군인들도 전라도 사람들로 충당했습니다. 나라를 구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일제 광주학생사건과 3·15부정선거 규탄대회도 광주에서 마산보다 더 먼저 시작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으로 민주화의 성지가 됐습니다.

- 정부조직법 개편과 관련된 이번 여야 협상 과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협상 과정을 보면서 실망스러웠던 게, 민주당에서 자꾸 여당에 재량권을 주라고 한 부분입니다. 지금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모두 여야 다 경험을 해 봤습니다. 서로 입장을 알면서도 그 입장이 되면 다 까맣게 잊어버리는 듯합니다.

우선 새누리당에 한마디 하자면요, 지금 장관 청문회 중인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낙마한 장관과 총리들이 아주 많습니다. 김종필 총리의 인준을 6개월간 안한 게 당시 한나라당입니다. 이걸 생각하면 지금 민주당보고 너무 섭섭하다고 할 입장은 아니죠.

“민주당은 평생 야당할 생각만 하는 듯 ”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당 경험도 있는 사람들이 왜 양보를 안합니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지 못하고 평생 야당을 할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번에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왜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만 하느냐”고 항의를 했는데, 여당이라는 건 항상 청와대와 조율해서 정책을 같이 하는 게 생리입니다. 즉 청와대의 국정 방향을 국회에서 실현시키는 게 여당의 역할이죠. 노무현 정권 당시 열린우리당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종합유선방송 인가권 논란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게 미래과학부로 가느냐 방송통신위원회로 가느냐가 그리 중요한가요. 장관 임명은 어차피 대통령이 합니다. 방송통신위원장도 야당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합니다.

방통위엔 야당이 추천한 위원이 있지만 과반수에 미달되죠. 그러니까 대통령의 영향권 내에 어차피 다 있으니, 어디로 가든 결과는 똑같다는 겁니다. 정권 초반에 어차피 봐줄거 화끈하게 봐주면 왜 안 됩니까.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여야 간에 또 싸움이 날 겁니다. 정부조직법과 무관한 다른 문제로 뭘 얻어보자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국면을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벗어나기 위한 협상을 했기 때문이죠.

-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갈등이 심한 이슈 중 하나는 대북정책인 듯합니다. 대표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저는 현실적으로 햇볕정책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신뢰 프로세스’를 밀고 가야 합니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튼튼한 안보를 전제로 삼고 있는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과 유사합니다.

최근 민주당이 남북 대립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북대화를 제안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야당 지도부를 초청했는데 거절했죠? 이 난리통에 남북대화를 요청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대화를 거절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청와대에 가서 설득하면 되는 거죠.

-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고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한다고 선언하는 상황에서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시작전권 전환을 연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습니다.

한미연합사는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 위상을 생각하면 해체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반도에서 혹시 전쟁이 터지면 연합사가 없어졌을 때 주한미군이 있더라도 미국이 즉각 개입할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커버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연합사가 유리합니다. 

인터뷰/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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