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한탕주의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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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3.04.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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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재현 前에너지자원협력대사
신재현(申載賢) 前에너지자원협력대사

신재현(申載賢) 전 에너지자원협력대사는 국내 대표적인 ‘이란통’이다. 2010년 9월 정부가 미국의 對이란 경제제재에 참여함으로써 한국과 이란 간 경제교류가 올스톱될 위기에 빠지자 테헤란으로 날아가 양국간 협력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지난 4년간 이란만 26차례 다녀왔다. 그는 지난해 3월 에너지자원협력대사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한국-이란경제인협회를 만들어 이란과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대형 로펌인 김앤장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이기도 한 신재현 전 대사가 자원부국 이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에너지자원협력대사를 맡고 나서부터다.

비록 자원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이란이 장기적으로 무한한 기회의 땅이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0일 광화문 소재 한국이란경제인협회 사무실에서 신재현 전 대사를 만나 자원외교 일선에서 느낀, 다소 거칠지만 솔직한 소회를 들어봤다.

- 에너지자원협력대사라는 직함이 낯섭니다. 정부에 그전에도 있던 직책인가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대통령이 관심 있다고 하니 특임 대사로 에너지자원협력대사를 만든 것으로 압니다. 외교부 내에도 상근 공무원으로 에너지자원대사직을 만들었지만 서로 협력을 하거나 그런 관계는 아니었죠.

- 에너지자원협력대사라는 이름이 좀 거창한데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지난 정부에서 UAE원전이나 태국수자원 개발 협력 등 여러 성과가 있다는 자체 평가도 있었는데요.

쉽게 말해 몽고, 터키, 우즈베키스탄, 아이슬란드 등 각국을 돌면서 자원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입니다. 4년 동안 한 35개국을 다녔습니다. 후진국 가면 그 나라 정상을 만나고 여의치 않으면 담당자도 만나면서 일을 했습니다.

예컨대 2011년 여름 그린란드에 갔다 와서 대기업에 자료를 넘겨주고 참여를 제안하는 식이죠. 그린란드에는 전 세계 자원회사가 다 모여 있는데 한국만 없는 상황입니다.

그 나라에 석유, 천연가스, 금, 특수 광물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대기업들이 다들 무리라고 거절했어요. 임원들 본인이 그런 데 가서 고생하기 싫은 것이죠.

국내 대표적인 ‘이란通’

신재현 전 대사는 현재 한국-이란경제인협회 회장으로 이란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이란 정부와 기업체들이 한국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신 전대사부터 찾고 있는 상황이다.

사재를 털어가며 이란과의 인맥관계를 유지한 덕분이다. 최근 있었던 딸의 결혼식에 주한 이란대사가 부인과 아들과 함께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축하할 정도로 신뢰가 돈독하다.

- 역시 이란에 대한 자원외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너지자원협력대사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이란과의 교류를 유지한 것이겠죠?

2010년 이란에 대한 제재로 달러 송금이 금지되면서 양국 간 경제, 자원교류가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때 원화 계좌를 만들어서 석유대금을 원화로 결제해 여기 두고, 그 돈으로 이란에 물품을 파는 데 또 결제하는 식으로 해결책을 마련했어요.

내가 테헤란에 가서 밤샘 설득하고 이란의 중앙은행 부총재가 한국에 방문해서 일을 해결했죠. 그런데 한국계 미국인 브로커가 이를 악용해 거액의 자금을 빼돌린 바람에 지금은 중개무역이 중단된 상태예요. 그래서 테헤란 주재 우리 중소기업과 종합상사들이 엄청나게 피해를 보고 있어요.


신 대사에 따르면 이란 국민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매우 좋은 편이다. ‘대장금’ ‘해신’ ‘주몽’ 등 우리나라 드라마도 방송만 되면 시청률 90%를 넘을 정도로 인기다. 국민소득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연간 원유 수출로 10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정부가 지원금을 주기 때문에 국민들의 소비 수준은 의외로 높다고 한다.

- 이란이라는 나라가 신 대사님이 전력을 쏟을 정도로 우리나라 자원 외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나요. 혹시 이전에 이란과 업무상으로 관련이 있으셨는지요.

이란과 그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에너지자원협력대사가 되고 어디를 가서 자원을 구해오나 하고 세계지도를 보고 고민했는데, 다들 선진국이 선점해서 갈 곳이 없었어요. 그나마 이란이 서방의 제재 때문에 빈 땅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단 가 본거죠.

이란은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나라입니다. 석유, 석탄, 철, 동, 우라늄 등 엄청난 자원 부국이거든요. 이란이 잘 나갈 때는 우리에게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정말 공을 들였습니다.

4년 간 26차례 갔는데 한번 가면 1주일에서 10일 정도 있었어요. 테헤란이고 지방이고 기사를 옆에 태우고 제가 직접 운전해서 다녔어요. 덕분에 이란 정부 고위층을 포함해 인맥 형성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사업 기회를 엮어주려 해도 미국 눈치나 보면서 편하게 가려고 해요. 장기적인 안목이 없는 것이죠. 나중에 잘돼봤자 본인 회사 아니니 관심 없는 것 아니겠어요.

앞으로 서방의 경제제재가 풀렸을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란과의 협력관계를 지금부터 유지해야지, 거대한 무역국을 우리가 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재현 에너지자원협력대사가 통싱 탐마봉 라오스총리와 만나고 있다.

현재의 자원외교, ‘큰 그림’ 없어

- 선진국들은 미래를 위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일선에서 뛰었던 경험에 비춰 우리나라 자원외교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일례로 아프리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각축전도 뜨거운데요.

아프리카 자원외교전도 그렇고 사실 우리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대기업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작은 기업은 경쟁이 되지 않죠.

정부 차원에서 보면 중국은 정부가 전체 그림을 그려 움직이는데 반해, 우리는 지식경제부 내의 부서 하나 정도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1970~1980년대 동력자원부처럼 전담해야 하는데, 이게 맥이 끊겨서 지금은 정부 내에 제대로 된 에너지자원 전문가가 없는 실정이죠.

그러다보니 장기적인 프로그램이나 조직이 없는 상황이에요. 사실 나를 임명만 해놓고 뭐 지원해준 게 없었어요. 내가 일 안하면 그만이었던 상황이었죠.

기업과 정부가 팀워크를 이뤄야 하는데 이것도 없었고요. 대통령이 한다고 하니 권력 실세들이 다 각자 한 건 하려고 제 각각 뛰어다닌 셈이에요. 정부 차원의 장기 그림 없이 각자 한 건 하려다 사고 친 게 많아요.

- 그렇다면 우리나라 자원외교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원외교는 일종의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권력실세가 너무 세부적으로 개입하면 반드시 사기꾼이 꼬이고 사고가 터집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왔다고 난리였는데 결국 2억5000만 달러 사기를 당했고 이명박 정부의 쿠르드 유전개발도 실패였죠. 권력실세가 인수위 때부터 만나고 그러더니 결국 9억 달러를 날린 셈이 됐죠.

기업이라는 게 정부를 이용하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은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간접지원만 해야 합니다. 물론 기업들의 기업가 정신도 절실한 부분입니다.

- 지난해 박영준 전 차관의 민간인 불법 사찰의 대상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는데요. 실제로 권력실세들과의 관계는 어떠셨는지요.

2008년 가을에 제가 한국전력 이사회 의장이 됐어요. 그 전 3년간 사외이사를 하면서 보니 처장 1급이 되면 전부 밖으로 나가서 줄을 대려고 하는 거예요. 이런 것 잘한 사람이 전무가 되고 안에서 일 잘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임원 인사추천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한전 이사회 의장이 돼서 인사 청탁을 딱 막았어요.

당시 실제로 권력실세들이 명단을 내려 보내더라고요. 하나같이 내가 볼 때는 깜이 아닌 인물들인데, 그래서 그런 오더를 다 쳐냈죠. 8개월 하고 그만뒀는데 그 이후로 한전 임원 인사가 정상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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