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양성화 취지 좋지만 부작용 우려”
“지하경제 양성화 취지 좋지만 부작용 우려”
  • 이원우
  • 승인 2013.04.1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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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최 광 前 보건복지부 장관, 조세연구원장
안종석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세연구본부장
사 회│한정석 본지 편집위원

발단은 TV토론이었다. 2012년 12월 10일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는 2차 TV토론에 출연해 ‘지하경제 활성화’를 언급했다. ‘활성화’가 맞는지 ‘양성화’가 맞는지를 놓고 SNS에서는 열띤 공방이 오갔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를 세수 증대 방안으로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은 취임 이후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새 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은 각 지방 조사국에 세무조사 전문 인력 400여명을 증원하는 인력 재배치를 단행했다. 지난 4월 1일에는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 기획단’을 발족했다. 대기업 및 대재산가, 금융권 등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 또한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지하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호기심은 계속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미래한국>은 최광(崔洸) 前 보건복지부 장관과 안종석(安鍾錫)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초청해 지하경제 양성화의 취지와 목적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사회 : 우선은 지하경제의 본질에 대해서부터 말씀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지하경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종석 : 근본적으로는 각종 규제를 포함해 정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지하경제의 핵심입니다. 넓게 봐서 세금도 하나의 규제라 한다면 이걸 피하기 위해 지하로 숨는 것이죠. 피했을 때의 이득이 피하지 않고 감당하는 비용보다 컸을 때 지하경제가 발생합니다.

최광 : 정부의 규제, 세금, 복지제도, 이 세 가지는 정부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그런 한편 이 세 가지가 지하경제의 요인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정부가 없으면 지하경제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국민의 안전문제나 세금 징수 등에서 정부의 역할은 필요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겁니다.

한국, 세금 회피하는 분위기 강해

사회 :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지하경제 비중이 유독 높다는 얘기도 들리는데요. 특별한 원인이 있습니까?

최광 : 포괄적인 관점에서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한국인들의 법질서 의식입니다. 공권력이 공권력으로서 존중을 못 받는 상황인 것이죠. 규제나 복지, 국민의 의무와 관련된 부분에서 국가의 권위가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게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한국의 세 부담, 특히 개인소득세 부담이 유럽에 비해 높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도 항상 세금이 문제로 거론되는 건 과세당국이나 국민들 모두가 ‘원칙’에 입각해서 떳떳한 절차를 통과하고 있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탈세를 하다가 적발된 사람에 대해 동정을 하는 분위기만 봐도 그렇죠. 이런 분위기가 결국엔 국민들로 하여금 세금을 피하는 행위에 감정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고 지하경제를 키운다는 생각입니다.

안종석 : 세무행정 문제를 부연하면, 한국의 세무조사 비율은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쉽게 말해 ‘잘 안 걸린다’는 의미죠. 그렇기 때문에 적발된 사람은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생긴 면이 있습니다.

제도적 측면에도 불합리한 부분이 있어요. 저소득층에 대한 간이과세제를 예로 들면 그 제도의 취지는 저소득층이 편리하게 납세하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부자라도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아예 조사 자체를 안 받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건 지하경제 문제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

사회 : 일각에선 자영업 비중이 높아 지하경제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최광 : 그게 본질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영업자가 많은 게 문제라기보다는 세무행정과 질서의 문제로 보여요. 서구에서 세금의 역사를 보면 그건 곧 왕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빼앗느냐 지키느냐의 싸움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해 개선되는 것이 세금의 역사죠.

한국의 경우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지배자한테는 세금을 안 내고 피하는 게 애국인 것처럼 인식된 부분이 있어요. 지금은 국민이 스스로 대표를 뽑아 법적 근거를 통해 세금을 징수하는 만큼 조세 저항과 애국은 관계가 없어졌지만, 이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안한 것이 결과적으로 지하경제 번성에 근거를 제공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 : 정부와 국세청은 대기업과 대자산가,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지하경제 양성화의 주된 대상으로 보는 입장인데요. 식당에서 현금결제하면 금액을 할인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탈세가 더 크다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한 견해는 어떠십니까?

안종석 : 어느 쪽이 더 큰지는 사실 ‘모른다’는 게 정답이겠죠. 다만 한 나라의 경제라는 게 소득에 따라 별개로 운영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 연관돼 있죠. 누구에 대해서든 세금부담이 늘어나면 가격이 올라가고 거래가 위축되는 등의 영향은 있을 겁니다.

이 연계된 메커니즘을 무시하고 “소득에 따라 다르게 대응해도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겠죠. 또한 최근의 지하경제 논의는 과거의 탈세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느낌이 큰데요. 지하경제 양성화는 앞을 봐야 할 문제입니다. 앞으로의 거래를 투명하게 유도하는 양성화가 진행돼야 한단 거죠.

간결한 원칙으로 엄정하게 조세 집행해야

최광 : 지하경제 양성화 문제를 대기업이나 대자산가에 대한 관점으로 접근을 하기 때문에 세제는 세제대로 망가지고 탈세는 지속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영원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죠. 지하경제 양성화는 소득과 관계없이 하는 겁니다. 보여주기 위주로 가선 안 돼요.

가끔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 또는 완화하겠다 하는 얘기가 들리는데요. 매우 심각한 어폐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는 건 월권을 하겠다는 말이고 완화하겠다는 건 직무유기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요? 법에 근거해서 과학적으로 하면 되는 겁니다. 국세청의 업무는 세법에 정한대로 징수하는 게 기본이고, 그 과정에서 탈세나 범법은 ‘언젠가는 적발되므로 하면 안 된다’는 시그널을 주는 데 있을 뿐입니다.

사회=미국인들은 “죽음과 세금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농담을 한다는데요. 한국인들에게 세금은 잘 하면 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효과적인 조세정책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최광 : 큰 관점에서는 재정의 전반적 운용에 대해 지도자와 국민이 이해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왜 우리가 세금을 내야 하는지의 개념 정립이 필요해요.

재정학 교과서를 보면 세금을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활동을 하기 위해 사(私)경제로부터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재화 또는 화폐’로 정의하는데요. 이 개념을 가지고 운용해선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국방이나 대중교통 등 국가의 긍정적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돼요. 복지나 정부규제, 조세제도의 본질에 대해 전체적으로 납세자와 운용자들이 모두 적절한 교육을 받는 게 필요합니다.

국세청은 ‘서비스’하는 곳

안종석 : 과거에 초등학교 교사들과 국세청 협조 하에 교과서를 집필하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세금의 용도를 서술한 부분을 읽어봤더니 “세금은 우리 학교에도 사용됩니다”라는 식으로 ‘보조 수단’의 뉘앙스가 강하더군요. 사실은 급여부터 시설까지 학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세금인데도 말이죠. 인식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에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도의 간결화인데요. 조세제도를 단순화·투명화하고 피하기 까다롭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다룬 논문들을 읽어보면 소득세보다는 소비세 비중을 높이는 게 지하경제 양성화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많은데 일면 타당성 있는 얘기라고 봅니다.

불법적인 행동으로 돈을 번 사람이 소득세는 피했을지 몰라도 결국 소비시장엔 나오게 될 테니까요. 양성화 측면에선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납세자의 소득별로 세제를 분화시키려는 현재의 시도는 결국 세금을 피하는 시나리오를 더 다양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어요. 그건 좋지 않죠. 비교적 낮은 세율로, 모두가 같은 원리에 입각해 세금을 냄으로써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을 달성하는 게 옳은 길이라는 입장입니다.

최광 : 우리나라 국세공무원이 4만 명 정도인데요. 그들에게 세무행정의 정의와 목적을 물었을 때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직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다는 거죠.

세무행정이라는 건 납세자가 세법대로 세금을 납부하는 걸 ‘돕는’ 역할입니다. 영어로 하면 service이지 administration이 아니라는 거죠. 이 과정에서 납부 의무를 게을리 하는 사람을 벌하는(punish) 활동까지 더하면 세무행정의 정의와 목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제는 최대한 단순해야

그런데 현재로서는 ‘도와주면서 제재한다’는 개념보다는 윽박지르고 가져온다는 뉘앙스가 강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기관의 명칭에서 나오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요. 국세청의 영문표기가 NTS(Natinal Tax Service)로 정해진 것이 DJ정부 후반입니다만 제가 오랫동안 주장하는 것은 한국어 명칭도 ‘국세납부지원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완전히 철학이 바뀌게 되죠. 설령 사업자에게 찾아가더라도 명분은 그들을 도우러 가는 것이 되니까요. 그 과정에서 법대로 세금을 내고 범법행위는 제재하면 되죠. 명료한 문제예요.

사회 : 한편 조세제도 간명화의 연장선에서 단일세 논의도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우가 단일세 제도로 큰 효과를 본 나라로 꼽히는데요.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이른 얘기인가요?

안종석 : 지하경제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세제 효율화 관점에서 중요한 문제인데요. 여러 가지 논점이 있지만 큰 틀에서 ‘낮은 세율-넓은 세원’ 원칙과 부합하는 면이 큽니다. 특정한 집단이나 계층에 집중되는 혜택도 적고 단순하니 형평성에도 부합하고요. 지하경제 양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세 정책에 대해서 얘기할 때 효율성과 형평성 척도를 주로 적용하는데요. 여기에서 효율성은 경제에 성장에 미치는 영향, 즉 사람들이 세금을 피하려는 노력 때문에 성장이 저해되는 비중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를 의미합니다. 단일세는 형평성뿐만이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도 부합하는 제도로 보입니다.

최광 : 1983년 무렵 KDI에서 연구할 때 한국에도 단일세를 도입하자는 논문을 쓴 일이 있습니다. 다만 지금 다소 생각이 바뀐 것은 북유럽의 이원소득세제(Dual income tax)에 대한 고려인데요. 이들은 소득을 크게 자본소득, 근로소득으로 나눠 각각 2-3단계의 누진세율을 적용합니다.

저는 약 5년 전부터 이 두 가지를 합쳐 이원단일세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한 바 있는데요. 근로소득의 20%와 자본소득의 15%를 일괄적으로 과세하고 끝내자는 주장이죠.

물론 이 제도가 한국에서 도입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회의적입니다. (웃음) 다만 적어도 세제를 단순하게 적용한다는 정신만큼은 정책입안자들이 염두에 두고 현행세제를 다듬었으면 좋겠어요. 효율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지금보다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장기적 문제

사회 :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지하경제를 강조한 만큼 현 정부의 정책입안자들 역시 이 문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가야 할지 마지막으로 정리해 주시면 어떨까요.

안종석 : 지하경제 양성화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새 정부의 방향 자체는 좋다고 봐요. 다만 이 문제는 아주 긴 시간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세무행정 측면에만 핀트를 맞춘다면 단기적 처방에 그칠 가능성이 높겠고요. 이를테면 정부의 규제가 탈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거예요.

예를 들어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영업방식이 매우 투명한 대형마트를 규제한다는 건 사실 정부가 나서서 투명성 제고에 악영향을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이런 문제들이 결국 지하경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부처가 다르면 서로 관계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정책을 쓰든 영향은 종합적으로 발휘된다는 점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어요.

최광 : 사실 지하경제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항상 말만 나오다가 들어가고 실제로 양성화된 적은 없어요. 피해갈 재주가 없는 사람만 덤터기 쓰고 끝나는 격인데 안 위원님 말씀처럼 종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최근에 이 문제가 불거진 게 복지재원 조달의 맥락에서 나왔는데요. 생각대로 되면 참 좋겠지만 지하경제를 복지재원과 연결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오히려 부작용이 많이 생길 겁니다. 복지재원은 지하경제 양성화의 결과로 확보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오히려 지하경제를 더 크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정리/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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