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자유화 없이는 평화도 없다
북한 자유화 없이는 평화도 없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4.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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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임마뉴엘 칸트 <영구 평화론>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하면서 한편으로 영원한 평화를 갈구해왔다. 고대인들은 전쟁을 불가피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숱한 세월 동안 반복된 전쟁의 역사가 만들어낸 귀납적 체념이었다.

그나마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와서야 전쟁을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게 됐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또한 인간 이성의 희구와 무관하게 쉼 없는 전쟁의 발발을 그대로 노정했다.

그렇게 참혹한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도 인간의 어리석은 도발은 반복되고 있다. 이성의 시대인 현대에 이르러서도 전쟁의 필연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정말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1795)은 우리의 이런 고민에 대한 철학적 응답을 준다. 칸트는 전쟁의 비극과 고통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평화체제의 구상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살았던 18세기 역시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전쟁 등 전 세계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칸트는 휴전과 같은 일시적 평화가 아닌 영구적 평화를 희구했다.

그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영원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단지 규범적 이상을 제시하기보다 구체적인 제도적 조건과 모델을 탐색했다.

칸트는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 위해 범해서는 안 될 금기조항을 담은 예비조항과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 확정짓는 조항, 영구 평화를 위한 보증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 확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조항은 3개 항목이다. 그 가운데 제1의 확정 조건은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체제는 공화정체이어야 한다”이다.

공화정체에서는 전쟁 선포가 국민적 동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쟁 억제에 유리한 반면, 전제정체는 지배자의 독단적 전쟁 결정이 지극히 손쉽다는 점에서 영구 평화를 위해서는 공화정체의 구현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현대 국제정치학에서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를 ‘칸트적 평화(Kantian Peace)’라고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나머지 2개 항목은 국가 간의 전쟁 도발을 억제시키는 법적 구속력으로서의 국제법의 필요성, 보편적 우호의 조건을 갖춘 세계 시민법의 뒷받침을 요구하고 있다. 칸트의 <영구 평화론>은 영원한 평화를 향한 거대한 철학적 이상이다.

특히 칸트는 평화를 만들어 낼 기본 조건으로 공화적 정부와 계몽된 시민을 전제하고 있다. 그는 평화의 달성을 인간의 도덕적 책무로 까지 확대하고자 한 듯싶다. 그의 영구 평화에 대한 열망은 세계를 계몽시켰고, 불완전하게나마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이라는 ‘평화 연맹(foedus pacificum)’체제를 만들어 낸 중요한 철학적 근거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전 세계에는 평화를 위협하는 전제적 국가가 수없이 많다. 또한 이념과 종교의 갈등과 반목이 가시지 않고 있고, 영토의 쟁탈을 둘러싼 국가 간 대립과 충돌도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악조건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이성과 자연의 섭리를 시험하고 있다. 영구 평화를 위한 도덕적 동기와 이성을 자극하고 명예로운 평화를 추구해 나가도록 현명한 설계도를 제시한 칸트의 참뜻을 끊임없이 반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칸트가 통찰해 낸 영구 평화의 조건에 비춰 볼 때,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맞서 있는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쟁의 위협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한반도의 영구 평화와 통일의 제1 조건은 북한 공산당 1당지배의 전체주의가 소멸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칸트가 영구 평화의 조건으로 주문한 것처럼 우리가 북한체제 변동을 위해 폭력적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선택할 방책이 협소해진다.

북한에 스스로 자유로운 공화정체로 거듭나는 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칸트적 평화(Kantian Peace)’와 자유통일은 요원한 것인가?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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