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보수주의자들과 펀드레이징을 공부하다
세계 보수주의자들과 펀드레이징을 공부하다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4.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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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의 Book & World: 브루스 에벌리의 <정치 다이렉트 메일 펀드레이징>을 읽고
 

웰컴 투 콘닌테른”(Welcome to Conintern) 지난 3월 26일 영국 런던 근교에 위치한 웰링턴 칼리지(Wellington College)에 도착하자 미국에서 온 한 청년이 장난기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환대했다.

코닌테른이란 국제공산당을 일컫는 ‘코민테른’(Comintern, Communist International의 약칭)에 빗대 만들어 낸 용어로서 보수주의 인터내셔널(Conservative International)이란 뜻이다. 물론 실재하는 조직은 아니다.

단지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운동가 훈련기관인 리더십 인스티튜트(Leadership Institute) 주최로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4박5일 동안 열린 ‘펀드레이징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Fundraising)에 참가하기 위해 26개국으로부터 100여명의 보수주의 활동가들이 이곳에 모이자 이를 재미 있게 풍자한 표현인 것이다. 이 청년은 가슴에 코카콜라 선전 포스터를 모방한 ‘enjoy Capitalism’이란 배지를 달고 있었다.

“웰컴투, 콘닌테른, 엔조이 캐피털리즘”

웰링턴 칼리지는 1859년 워터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웰링턴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설립한 기숙사립학교로서 이튼 칼리지, 럭비 칼리지 등과 함께 영국 최고의 명문학교이다.

첫 날은 이 학교 견학으로부터 시작됐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 자랑이 각종 전쟁에서 전사한 재학생 및 졸업생에 관한 기념물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숙사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는데 전사한 선배들의 사진과 훈장, 그리고 어떻게 전사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이 곳곳에 진열돼 있었다. 교육 내용을 소개할 때도 스포츠와 도덕 교육이 강조됐다.

이는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조국을 수호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영국에서 명문 기숙사립학교는 ‘public school’로 불리는데 이는 ‘공공’(public)을 위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미국식 영어로 public school은 공립학교)

이곳에서의 일정은 만만하지 않았다. 아침 7시30분 예배로 시작됐다. 예배 참석 여부는 선택이었지만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눠져 예배를 보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소수였는데 이들은 리버테리안(libertarian)들이었다. 이들은 교육 기간 내내 다소 왕따(?) 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숫자가 많이 않아 별도의 예배를 준비할 수 없었던 정교회 계열 신도들은 개신교와 함께 예배를 보았다.

이번 교육의 주된 주제는 ‘펀드레이징’이었다. 이번에 주교재로 사용한 <정치 다이렉트 메일 펀드레이징>(Political Direct Mail Fund Raising) 저자인 브루스 에벌리 등이 와서 직접 강의했다.

에벌리는 1960년대 대학생 시절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Young Americans for Freedom, YAF)을 통해 미국 보수주의 학생운동에 참여한 뒤 보수주의 운동단체 지원 펀드레이징 사업을 벌여 지난 30여 년 동안 30억 달러가 넘는 액수를 모금해 여러 보수주의 운동단체를 지원한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운동 펀드레이저(fundraiser)이다.

에벌리는 자신의 30년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강의했다. 풍부한 사례를 통한 그의 강의는 명쾌하면서도 재미 있었다.

펀드레이징 편지를 쓰는 법에서부터 펀드레이징 파티를 개최하는 법, 그리고 주요 기부자들을 관리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그의 강의를 듣고 있으려니 펀드레이징도 독립학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교재에 나오지 않은 다양하고 디테일한 기술에 대해서도 프린트물과 강의를 통해 전수해 줬다.

펀드레이징은 친구 만들기

서점에서 공개적으로 판매되는 교재에 담을 수 없는 비밀(?)도 풀어 놓았다. 왜 그러한 비밀들은 책에 적어 놓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적들도 책을 사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펀드레이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technic)이 아니라 철학(philosophy)이라는 것이 에벌리 뿐만 아니라 리더십 인스티튜트 대표인 몰튼 블랙웰(Morton Blackwell)을 비롯한 다른 여러 강사들의 통일된 견해였다. 그럼 어떤 철학이 필요한가?

첫째, 펀드레이징은 친구만들기(friend raising)다. 기부자는 결코 필요하면 언제든지 돈을 꺼낼 수 있는 자동현금인출기(ATM)가 아니다. 또 펀드레이징은 결코 구걸(begging)이어서는 안 된다.

펀드레이징은 운동가와 기부자 간의 파트너십을 형성해내는 과정이다. 즉 운동가는 아이디어와 전문기술 및 지식을 제공하고 기부자는 자금을 제공해 공동 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이다. 즉 구걸과 동정이 아닌 윈-윈(win-win) 관계여야 한다.

둘째, 펀드레이징도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입으로는 자유시장경제를 이야기하면서도 펀드레이징은 그렇지 않은 문제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펀드레이징도 기부자의 니즈(needs)을 찾아내고 또 충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진행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 기부자들이 답답해하는 문제에 니즈가 존재한다. 바로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또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할 때 펀드레이징이 일어난다.

셋째, 구체적 계획과 이에 따른 구체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흔히 돈 내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불평불만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돈을 내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돈을 요구하는 개인이나 조직의 투자 대비 효율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땀과 노력을 통해 돈을 벌었다. 이러한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 보수주의 금전 철학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투자한 돈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를 원한다. 돈을 주고 싶어도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모르는 숨은 보수주의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넷째, 펀드레이징은 ‘일대일 의사소통’(one-to-one communication) 형태로 진행돼야 한다. 펀드레이징 편지는 ‘개인적’(personal)이어야 한다. 다량의 편지나 email를 보내더라도 기부자 바로 개인에게 호소하는 형태이어야 하며 최소한 그렇게 느껴지도록 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 ‘여러분’과 같은 표현은 가급적 삼가고 구체적 개인 이름과 직함을 사용하여야 하며 개인이 개인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개인적일 때 기부자는 ‘참여의식’을 느끼고 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잠재 기부자는 제3자적 방관자 입장에서 지켜보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다섯째, 펀드레이징은 1회적 사업이어서는 안 된다. 기부자들과의 끊임없는 접촉 속에서만 가능하다. 기부자에게는 48시간 이내에 email, 편지, 전화 등으로 반드시 감사를 표시해야 하며 가능하면 1달에 한 번 정도 뉴스레터 등을 통해 활동 상황을 알리고 참여의식을 고취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기부자 리스트가 바로 운동의 힘이며 자산인 것이다. 다시 말해 펀드레이징 과정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대의를 확산시키고 강화시키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쌍방 소통 형태로 진행돼야 한다.

기부자와의 지속적인 접촉 필요

이번 교육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중의 하나는 다이렉트 메일 펀드레이징의 원조가 사도 바울이었다는 사실이다. 고린도 후서 8장과 9장에 나타난 고난당하는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해 모금을 호소하는 바울의 편지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펀드레이징 편지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또 “운동은 개종(convert)시키는 것보다 기존의 지지자들을 찾아내 결집시키고 동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자학적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모금이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라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었다. 좌우간 “영관급은 전략과 전술을 고민하고 장성급은 병참과 보급을 먼저 걱정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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